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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호 감독 "가난으로 단련된 유전자가 한국영화 100년의 힘"②

송고시간2019-09-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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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필름 설립·대기업 진출·직배 시작이 100년사 주요 사건"

"영상 벌레가 되지 말고 인문학적인 소양을 키워야"

인터뷰하는 이장호 감독
인터뷰하는 이장호 감독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한국영화1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이장호 감독이 19일 연합뉴스 광화문 사옥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2019. 9. 19. jin90@yna.co.kr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이도연 기자 = "가난하게 시작해 단단하게 훈련된 유전자가 한국 영화 100년을 이끌어온 힘이죠."

최근 서울 광화문 연합뉴스 사옥에서 만난 이장호 감독은 한국영화 100년의 원동력을 묻자 이같이 말했다. 이 감독은 배우 장미희와 함께 한국영화1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 감독은 "그런 유전자가 천편일률적인 영화들의 등장으로 바뀌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도 "후배 감독들과 영화 꿈나무들이 새로운 미디어를 개척하게될 것"이라는 희망을 내비쳤다.

인터뷰하는 이장호 감독
인터뷰하는 이장호 감독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한국영화1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이장호 감독이 19일 연합뉴스 광화문 사옥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2019. 9. 19. jin90@yna.co.kr

다음은 이 감독과 일문일답

-- 한국 영화 100년사에서 가장 획기적이었던 것은.

▲ 가난함이 강인한 정신이 돼서 한국 영화 100년을 끌어왔다. 일제강점기, 감독이 편집에 배우까지 해야 하는 시스템이 한국에서만 특수하게 자랐다. 해방 후 바로 한국전쟁이 나서 전쟁통에 영화를 만들어야 했고 또 분단됐다. 아주 단단하게 훈련돼서 경제 성장과 함께 만개한 것이다. 이 유전자가 언젠가는 독립영화와 대안 영화에서 꽃이 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이 유전자가 바뀌고 있는 것이 걱정이다.

-- 100년사에서 주요 사건을 꼽자면.

▲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 설립이다. 충무로의 대형 영화사인 신필름의 명맥이 유지됐다면 한국 독립영화 정신이 지금까지 유지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다음은 이만희라는 천재 감독의 등장이다. 그가 연출한 '만추'는 흑백영화 시대였던 한국에서 특수한 영상을 만들어냈다. 대기업이 영화계에 진출한 것과 할리우드 영화의 직배가 시작된 것도 큰 사건이었다. 아울러 멀티플렉스가 생긴 것도 극장 문화를 변화시켰다.

-- 한국 영화가 과거보다 나아진 점은.

▲ 산업적으로 보면 아주 좋아졌다. 우리 때는 필름을 써서 촬영했기 때문에 '레디 고' 하기 전에 카메라 스위치를 누르거나 감독이 '컷' 소리보다 늦게 끄면 뒤통수를 맞았다. 그만큼 필름이 버려야하기 때문이다. 당시 감독은 앵글 안의 장면은 보지 못해 필름이 현상돼서 나오면 다 마음에 안 들어서 욕만 나왔다. 그 당시 장점이라고 하면 단순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디지털로 촬영하니까 여유도 있고 편집할 때도 편하다. 나도 '마스터 클래스의 산책'(2011)과 '시선'(2013) 때 디지털로 촬영해봤다.

-- 요즘 후배 감독들에 대한 생각은.

▲ 후배 감독들과 연대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벌새'의 김보라 감독이나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 등을 눈여겨보고 있다.

--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내가 슬럼프 기간 학교에서 학생들 가르쳤을때 "영상 벌레가 되지 말고 인문학적인 소양을 키워라"라고 조언했다. 과거에는 영화감독 하고 싶다는 학생이 많았는데 요즘엔 다들 유튜버 하고 싶다고 한다. 이들이 결국 다양한 미디어를 개척하게 될 것이다.

-- 넷플릭스와 같은 플랫폼이 전통적인 영화 산업의 위기를 가져올 것이라 보나.

▲ 아니다. 새로운 변화다. 나는 오히려 재밌는 시나리오가 있으면 젊은 감독들에게 웹드라마 형식으로 만들어보라고 조언한다. 다만 내가 할 몫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죽기 전까지 고전적인 의미의 영화를 만들 것이다.

-- 그동안의 영화 인생을 돌아본다면.

▲ 지금은 마무리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살아오는 과정에 데뷔작이 여러 개가 있다. '별들의 고향'(1974)은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만든 것이고, 정신 차리고 만든 것이 '바람 불어 좋은 날'(1980)이다. 영화와 현실과 괴리 속에서 다 포기하고 떠나겠다고 결심하고 만든 것이 '바보선언'(1983)이고, 슬럼프에 빠지면서 영혼의 문제를 다루겠다고 해서 만든 것이 '시선'이라는 기독교 영화다. 그 이후에 새로운 데뷔작은 없을 것이다.

-- 고(故) 신성일 씨 유작은 어떻게 진행 중인가.

▲ 신성일 씨가 직접 연기를 하기 위해 영화를 기획했다. 주연을 맡은 신성일 씨가 돌아가셔서, 그 캐릭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래는 사위 역할이었던 안성기 씨를 신성일 씨 역할로 놓았다. 이제 감독 위주로 만들 수 있는 여건이 됐는데,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시작하니까 고치는 작업이 힘들다.

-- 그 외에 계획·작업 중인 작품이 있다면.

▲ 서서평이라는 간호선교사 이야기를 극영화로 만들고 있다. 마지막으로 북한 선교 이야기도 만들고 싶다. 그게 내 인생의 끝이 아닐까 싶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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