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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탐방] 책과 사람, 그 속에서 길을 찾다

송고시간2019-10-14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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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책박물관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송파책박물관은 조선 시대부터 현재까지 책과 사람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공간이다.

송파책박물관 미디어 라이브러리 [사진/전수영 기자]

송파책박물관 미디어 라이브러리 [사진/전수영 기자]

책이 꽂힌 책장 모양의 박물관에서는 지난 시간 속에서 책과 사람이 만나는 흥미로운 장면을 엿볼 수 있다.

가을을 맞아 책의 의미를 되새기며 박물관을 둘러보고, 책 한 권을 읽고 나오면 삶과 세상이 조금 달라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무수한 자음과 모음이 모여 글자가 되고, 글자들이 얽혀 책이 되며, 책은 사람을 만든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진다.

서울 가락동 송파책박물관 로비에 있는 미디어월에서 흘러나오는 '나를 보는 당신의 얼굴'이란 제목의 영상이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공간' ,'책과 사람을 이어주는 공간'이란 박물관의 모토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송파책박물관은 책을 통한 소통, 지식·경험의 공유, 문화·예술 체험을 목적으로 지난 4월 서울지하철 8호선 송파역 인근 주택가에 개관했다.

송파구가 설립한 책을 주제로 한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박물관으로, 외관은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형상화했다.

송파책박물관의 중심 공간은 책과 사람의 이야기로 꾸며진 2층 상설전시실이다.

이곳은 조선 시대의 독서문화를 엿볼 수 있는 '향유',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의 독서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소통', 책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창조'로 구성돼 있다.

조선 후기 독서 문화를 소개하는 공간 [사진/전수영 기자]

조선 후기 독서 문화를 소개하는 공간 [사진/전수영 기자]

◇ 선현의 책 읽는 즐거움을 엿보다

우선 조선의 독서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붓, 먹, 벼루 등을 휴대하는 데 사용한 종이 필통, 글 읽은 횟수를 접어 세는 판, 유교 경전을 적은 죽간과 보관 통, 책상, 벼루함, 먹통과 필통 등 당시 독서 관련 유물을 볼 수 있고, 천자문·명심보감·소학·사서삼경 등 필독서가 전시돼 있다.

다음은 조선의 독서광이 소개된다. "책을 공경하기를 신명같이 하고, 존중하기를 부모같이 했다"는 이황, 백번을 읽고 백번을 익히는 습관을 지켰다는 세종,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독서라고 했던 이이, 조선 후기 대표 독서가인 김득신과 늘 책을 가까이 한 이덕무 등 독서광 관련 일화와 저서를 볼 수 있다.

조선 시대 책 보관 방법도 볼 수 있다. 당시 장서(藏書)는 선비의 소양을 보여주는 지표였는데 고대광실 양반가에서는 서고를 따로 두기도 했다.

전시된 유물은 서책과 두루마리 문서를 보관하던 책장, 서책을 쌓아 보관하거나 문방용품을 놓은 사방탁자 등 가까이 두고 읽을 책을 보관하던 집기다.

당시에는 사용자의 체형이나 취향을 반영해 목가구를 제작했기 때문에 책장 모양은 모두 제각각이다.

출판이 활발하지 않았던 당시에는 책을 어떻게 수집했을까. 중국에 가서 사 오거나 왕에게 선물로 받거나 책을 빌리거나 베껴 써야 했다. 조선 지식인들은 연경(지금의 베이징)의 유리창 거리에서 책을 주로 샀다.

연암 박지원은 "지난해 이덕무 등이 이 책사(유리창)에서 책을 많이 샀다 해서 퍽 흥미 있게 이야기하더니, 이제 이곳을 지나고 보니 마치 옛 친구를 만난 듯싶다"고 감회를 밝히기도 했다.

당시 연암이 봤던 유리창의 풍경은 그림 영상으로 엿볼 수 있다. 장서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기 위한 장서 목록과 조선의 임금이 신하들에게 선물한 책들도 볼 수 있다.

마지막은 조선 후기 독서 문화를 소개한다. 이때는 책이 상품으로 인식되면서 책과 관련한 다양한 직업이 나타났다. 서적 중개상인 책쾌, 직업적인 낭독가인 전기수, 책 대여점인 세책점 등을 볼 수 있다.

김예주 학예연구사는 "당시 세책점이 인기가 높아 부녀자들은 비녀, 솥뚜껑을 맡기면서까지 책을 빌려 읽었다"며 "세책점 주인들은 돈을 벌기 위해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분권하기도 했는데, 책을 빌려 읽는 사람들이 책 뒷면에 욕을 쓰거나 그림으로 욕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실 가운데에는 소형 책자인 수진본(袖珍本)이 전시돼 있다. 소매 속에 넣어 다닐 수 있게 만든 작은 책인데 주로 사서오경, 시문, 족보, 의서, 지도, 점서 등이 수진본으로 제작됐다.

한쪽에는 방문객이 이야기꾼인 전기수가 숙향전, 임경업전 등의 주요 부분을 읽어주는 것을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이 마련돼 있고, 그 옆에서는 경서 통에서 대나무 조각을 들면 해당하는 글귀의 뜻을 설명해준다.

작가의 방 [사진/전수영 기자]

작가의 방 [사진/전수영 기자]

◇ 흥미로운 세대별 독서문화

두 번째 전시실의 주제는 '소통'이다. 일제강점기부터 현대까지의 독서문화를 식민지·전쟁 경험 세대(1910∼1959), 베이비부머·산업화 세대(1960∼1988), 디지털∼영상 세대(1989∼2014) 등으로 구분해 특징과 독서 공간, 베스트셀러를 보여준다.

세대마다 당시를 엿볼 수 있는 방을 재현한 것이 흥미롭다. 전통 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전환기에 성장한 1933년생 김영수의 방에는 붓과 벼루, 호롱불, 책상과 함께 흑백사진, 달력, 트랜지스터라디오가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격변의 시대를 경험한 1963년생 김정호는 본격적인 대중 독서 세대로 그의 방에는 흑백텔레비전과 선풍기, 미싱, 교복이 전시돼 있다.

마지막은 PC나 휴대전화로 책을 읽고 텍스트보다 이미지에 친숙한 1993년생 김유진의 방이다.

각 방의 옆에는 세대별 베스트셀러가 놓여 있다. 1세대 진열장에는 신소설과 번안 소설, 전후문학 작품, 사상계·학원·여원 등 잡지, 소설 '자유부인' 등이 있다.

2세대 진열장에는 선데이서울 등 주간지, '노동의 새벽'과 '오적' 등의 금서(禁書), 산업화의 그늘을 비판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밀리언 셀러 시대를 알린 '인간시장' 등이 있다.

3세대 진열장에선 답사 관련 책자, 학습 만화, 웹툰과 웹 소설, 자기계발서 등을 볼 수 있다.

'창조'를 주제로 하는 세 번째 전시실은 작가의 방으로 시작한다. 원고지가 날아다니는 것을 형상화한 공간에서는 연필로 글씨 쓰는 소리와 타이핑 소리가 들린다.

이곳에는 작가들이 평소 가까이 두고 사용한 물건들이 전시돼 있다. 정유정 작가가 소설을 구상하며 그린 그림과 주인공의 1년 치 스케줄, 이병률 작가의 사진기, 김훈 작가의 저울과 원고 정리함으로 쓰는 철가방 등 흥미로운 물건들이 많다.

소설, 시, 수필 등 작품을 보고 직접 종이에 적어볼 수 있는 필사 체험 책상도 갖춰 놓았다.

다음 공간은 출판 기획자와 편집자, 북 디자이너의 방이다. 기획자의 방에 들어서면 라디오 드라마로 꾸며진 작가와 기획자의 계약 과정이 흘러나온다. 출판 관련 일정으로 빼곡한 기획자의 수첩과 달력을 볼 수 있고, 기획 관련 책이 전시돼 있다.

편집자의 방에는 교열·교정본, 가제본 책자, 종이 질이 다른 인쇄물이 있다. 직접 교열·교정을 체험할 수도 있다. 위층 북 디자이너의 방에선 표지를 구성하고 글꼴과 배경을 선택해 나만의 책 만들기에 도전할 수 있다.

책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북 스튜디오, 활판인쇄기로 시의 구절을 찍어 책갈피를 만들어보는 체험 공간도 있다.

출판 기획자와 편집자, 북 디자이너의 방 [사진/전수영 기자]

출판 기획자와 편집자, 북 디자이너의 방 [사진/전수영 기자]

◇ 동화 나라 체험하는 북키움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중앙계단은 독서 공간이자 복합문화공간으로 사용되는 '어울림홀'이다. 대형 스크린이 설치된 극장식 공간으로, 자유롭게 책을 읽으며 쉴 수 있고, 매월 첫 번째 수요일에는 '책을 만드는 사람들'을 주제로 강연이 진행된다.

어울림홀과 연결된 2층 공간에는 전자책이나 오디오북, DVD 등을 볼 수 있는 미디어 라이브러리가 조성돼 있다. 이곳에 설치된 PC는 중앙도서관과 각 박물관 사이트로 연결되지만, 인터넷 검색은 할 수 없다.

어울림홀 [사진/전수영 기자]

어울림홀 [사진/전수영 기자]

1층 미디어월 오른쪽에는 북키움이 있다. '나는 동화마을에 살아요'를 주제로 하는 이곳은 미취학 아동을 위한 체험 공간이다.

사자, 고양이, 곰 등 동물 친구들이 매달린 노란색 터널을 통과하면 '헨젤과 그레텔', '백설 공주', '춤추는 빨간 구두', '잭과 콩나무' 등 명작 동화 7편으로 꾸며진 동화 나라가 펼쳐진다.

아이들은 동화 속 주인공이 되어 과자로 집을 꾸미고, 마법의 거울과 대화를 나누고, 요술 양탄자에 올라 하늘을 날며, 빨간 구두를 신고 춤을 출 수 있다. 또 벌거벗은 임금님의 옷을 입고 사진을 찍고, 콩 나무 콘셉트 놀이기구를 올라타고 다니며 뛰어놀며 동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편안하게 앉아 동화책을 읽는 '지혜의 샘', 동화 속 주인공 그림을 색칠해 스캔하면 커다란 스크린 속 동화 나라에 나타나는 '동화마을 아뜰리에'도 마련돼 있다. 인기가 높은 북키움은 시간대별 예약제로 운영하기 때문에 예약을 서둘러야 한다.

지하에는 보이는 수장고가 마련돼 있다. 오픈 스튜디오에 들어가면 1940년대 컬러 만화, 1950년대 점자 성경책, 6·25전쟁 때 발행된 교과서, 1960년대 선데이서울 등 다수의 희귀자료가 보존된 공간을 유리창 너머로 들여다볼 수 있다.

박물관 정문 앞 '기억과 인권과 평화의 정원'에는 지난 8월 특별한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됐다.

지난해 7월 오금동 보인고 학생들이 송파구청 홈페이지 '구청장에게 바란다' 코너에 "송파구에 소녀상을 세워주세요"라는 글을 올린 후 서명운동과 모금이 진행됐고, 6개월 만에 시민 성금 1억원이 모여 소녀상이 세워졌다.

이곳에는 방문객이 편하게 대화나 사색할 수 있게 석재조형물을 곳곳에 설치했고, 구민이 나무를 심을 수 있는 둔덕을 마련했다.

어린이 공간인 북키움 [사진/전수영 기자]

어린이 공간인 북키움 [사진/전수영 기자]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dkl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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