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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헌법준수' 언명한 일왕…개헌에 교묘히 이용하는 아베

송고시간2019-10-22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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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히토 "전쟁 없도록 마음에 새겨야"…아베 '전쟁 가능국' 추진

레이와 시대 축하 분위기 조성하며 "시대에 맞게 헌법 고치자" 강조

궁내청, 아베가 일왕에게 정세 보고하는 사진 공개해 논란 일으키기도

(도쿄 AFP=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2일 오후 도쿄 고쿄(皇居)에서 열린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 선언 행사 도중 나루히토 일왕 근처에서 이동하고 있다.2019.10.22

(도쿄 AFP=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2일 오후 도쿄 고쿄(皇居)에서 열린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 선언 행사 도중 나루히토 일왕 근처에서 이동하고 있다.2019.10.22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나루히토(德仁) 일왕이 즉위를 선언하면서 세계 평화와 헌법 준수를 언명했지만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개헌을 위해 30년 만의 왕위 교체를 교묘히 활용하는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세계 각국 인사를 초청한 가운데 22일 도쿄에서 열린 일왕의 즉위 선언 행사에서는 "국민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항상 바라며 국민에 다가서면서 헌법에 따라 일본국과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임무를 다할 것을 맹세한다"는 나루히토 일왕의 발언이 단연 눈길을 끌었다.

전후 세대로는 처음 즉위한 나루히토 일왕이 부친 아키히토(明仁) 일왕에 이어 세계 평화에 대한 염원과 헌법 준수 의지를 국제사회에 천명한 셈이기 때문이다.

패전 74년이 지난 일본 사회에서 전쟁의 참화에 대한 기억이 흐려지면서 헌법을 개정해 일본도 군대를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가운데 나온 메시지다.

아키히토·나루히토 부자가 그간 보여준 행보로 인해 평화에 대한 이들의 염원은 간절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측면이 있다.

1933년생인 아키히토 상왕은 유년 시절에 전쟁을 겪었으며 일찍부터 참화를 겪은 지역을 도는 이른바 '위령의 여행'을 반복했다.

도쿄 지요다구의 고쿄(皇居) 내 규덴(宮殿) 전경. [교도=연합뉴스 자료사진]

도쿄 지요다구의 고쿄(皇居) 내 규덴(宮殿) 전경. [교도=연합뉴스 자료사진]

왕세자 시절인 1975년 아키히토 부부가 태평양 전쟁 때 일본에서 유일하게 지상전이 벌어진 오키나와를 방문했을 때 왕실의 전쟁 책임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수 미터(m) 앞에 화염병을 내던지는 사건이 있었지만, 이들은 이후에도 오키나와를 반복해 찾아갔다.

이들은 2005년 미국령 사이판섬에서 한국인 전몰자 위령지인 '한국평화기념탑'을 참배하기도 했다.

부친과 마찬가지로 각지를 돌며 전쟁의 역사를 되새겨온 나루히토 일왕 역시 평화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NHK에 따르면 나루히토 일왕은 왕세자 시절인 2001년 "전쟁의 비참함이나 평화의 소중함에 관해" 아키히토(明仁) 당시 일왕 부부에게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들었으며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전쟁이 다시는 반복되는 일이 없도록 마음에 새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일본 사회가 이런 메시지대로 움직일지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일왕은 실권이 없는 상징적 존재이며 일본 헌법에 의해 정치 행위가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2019년 4월 1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이 총리관저에서 일본의 새 연호 '레이와'(令和)를 발표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2019년 4월 1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이 총리관저에서 일본의 새 연호 '레이와'(令和)를 발표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아베 총리는 22일 일왕이 내놓은 메시지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밝혔으나 왕위 교체를 개헌을 위한 소재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는 이달 4일 국회 소신표명 연설에서 "레이와(令和·2019년 5월부터 사용된 일본의 연호) 시대에 새로운 나라 만들기를 함께 추진해보지 않겠냐. 그 길잡이가 헌법"이라며 개헌 논의를 촉구했다.

아베 총리는 그간 일본 헌법이 제정 70년이 넘도록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아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이런 목소리를 내는 와중에 이뤄진 일왕 교체와 연호 변경이 '시대가 변했다'는 주장을 부각하는 재료가 된 셈이다.

일본 정부는 축제 분위기를 조성하고 각국 사절과 아베 총리의 외교를 강조하는 등 일련의 행사를 정권의 지지율을 올리는 소재로도 활용하고 있다.

태풍 피해로 늦추기는 했으나 일본 정부는 다음 달 10일 나루히토 일왕의 퍼레이드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일본 정부는 즉위 행사를 계기로 아베 총리가 각국 대표와 회담하는 것을 일종의 성과로 내세우고 있다.

이에 관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레이와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은 일본에 대한 각국 요인의 이해를 한층 심화하고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 국제사회와 손을 잡고 여러 과제 해결을 위해 대응하는 우리나라(일본)의 생각을 공유하는 좋은 기회"라고 21일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2018년 10월 1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 사이타마(埼玉)현 소재 육상자위대 아사카(朝霞) 훈련장에서 열린 사열 행사에서 자위대원의 경례를 받고 있다. 근처에서 자위대원이 욱일기를 들고 있다.[교도=연합뉴스 자료사진]

2018년 10월 1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 사이타마(埼玉)현 소재 육상자위대 아사카(朝霞) 훈련장에서 열린 사열 행사에서 자위대원의 경례를 받고 있다. 근처에서 자위대원이 욱일기를 들고 있다.[교도=연합뉴스 자료사진]

당국은 아베 총리와 왕실의 긴밀한 관계를 부각하기도 했다.

왕실에 관한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인 궁내청은 올해 5월 14일 아베 총리가 국내외 정세에 관해 나루히토 일왕에게 설명하는 내주(內奏, 왕에게 은밀하게 말함)를 행했다며 사진과 영상을 공개했다.

일왕의 정치 관여 논란을 우려해 내주에 관해서는 외부에 밝히지 않는 것이 불문율인데 궁내청이 이례적 대응을 한 것이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1973년 5월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1918∼1993) 내각 때 마스하라 게이키치(增原惠吉) 당시 방위청 장관이 아키히토 일왕의 발언을 공개했다가 일왕을 정치에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고 사임하기도 했다.

궁내청이 내주 사실을 공개한 후 아베 총리가 '아키히토 일왕은 늘 앉은 채로 있었으나 이번 일왕(나루히토)은 방에서 나갈 때 문까지 배웅해줘서 매우 황송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하고 궁내청이 이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는 등 소동이 있었다.

일왕과 왕비의 즉위 예식
일왕과 왕비의 즉위 예식

(도쿄 교도=연합뉴스) 나루히토(德仁) 일왕(왼쪽)과 마사코(雅子) 왕비가 22일 오전 도쿄 왕궁의 규추산덴(宮中三殿) 중 가시코도코로(賢所)에서 열린 즉위 예식에 참석했다. [마이니치신문 대표 촬영] 2019.10.22 jebo@yna.co.kr

일본 정부는 이번 즉위 행사에서 종교적 색채가 남아 있는 의식을 어떻게 바꿀지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전례를 답습했다는 지적도 있다.

논란을 감수하고 관습을 바꾸는 대신 지지율 등을 고려해 일본인들이 수용하기 쉬운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즉위를 둘러싼 일련의 정치적 움직임에 관해 도쿄신문은 "아베 신조 총리는 (왕실의) 대가 바뀌는 것과 결부해 앞으로의 정권 운영이나 개헌 의욕을 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아베 총리의 그런 행보는 일왕이 국사에 관한 권능을 지니지 않는다고 규정한 헌법의 취지에 반하며 일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고 전하기도 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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