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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여, 계속 가, 떠나는 자에게 축복이 있으리니"

송고시간2019-10-2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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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토카르추크 대표작 '방랑자들' 국내 출간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내게는 지속성보다는 역동성이 한결 가치 있게 느껴졌다. 정지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 부패와 타락에 이르고, 결국 한 줌의 재로 사라질 수밖에 없지만, 끊임없이 움직인다면 어쩌면 영원히 지속될 수 있지 않을까."

올해 시상한 작년 몫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올가 토카르추크 대표작 '방랑자들'(원제 Flights)의 주제를 관통하는 주인공 대사다. 폴란드 최고 문학상인 니케상에 이어 작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이 소설이 도서출판 민음사를 통해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방랑자들'은 제목에서 보듯 끝없이 움직이고 이동하는 사람들 이야기다. 어딘가로 떠나고 무언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에피소드 100여편을 '유랑'이라는 한 주제 아래 유기적으로 엮어낸 역작이다.

지중해 유람선으로 인생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그리스 문명 권위자, 장애인 아들을 보살피며 힘들어하던 일상에서 탈출해 지하철역 노숙자가 된 여인, 죽어가는 첫사랑에게서 모종의 부탁을 받고 수십 년 만에 귀국한 연구원, 휴가를 떠났다가 부인과 아이를 잃은 남성, 타국에서 타계한 쇼팽의 심장을 몰래 숨기고 모국 폴란드로 돌아온 그의 누이 등 삶의 편린을 따라 떠도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어떤 에피소드는 중편 분량에 달할 만큼 길지만, 불과 10여개 문장으로 이뤄진 매우 짧은 이야기도 있다.

기행문 형식 같지만, 문장은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금언과 같다. 인간 본성을 진지하게 탐구하고 인생이 고해(苦海)인 이유를 끝없이 고민한다. 실제로 그에게 문학이란 사람 간 소통일 뿐 아니라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는 도구이자 통로다.

이런 문학관은 심리 치료사로 일하다 전업 작가로 전향한 독특한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문화인류학과 철학에도 조예가 깊고 특히 카를 구스타프 융의 사상과 불교 철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사상적 배경은 신화, 전설, 외전(外典), 비망록 등 다양한 장르가 작품에 차용되며 인간의 근원적 고독, 이율배반적 욕망 등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방랑자들' 역시 신화와 환상, 현실을 넘나드는 마술적 리얼리즘 요소가 엿보인다.

"움직여, 계속 가, 떠나는 자에게 축복이 있으리니" - 1

토카르추크는 이 소설을 통해 타성에 젖어 안주하고 순응하는 삶은 인간으로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삶이라는 점을 역설한다.

그는 다른 작품에서도 이런 주제 의식을 줄곧 설파했다. 그에게 인생은 모험을 찾아 떠나는 기나긴 여행이다.

"멈추는 자는 화석이 될 거야, 정지하는 자는 곤충처럼 박제될 거야, (중략) 움직여, 계속 가, 떠나는 자에게 축복이 있으리니."

소설 제목은 고대 러시아 정교 교파 중 하나인 '달리는 신도들'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이 교파는 정체됨을 거부하고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머무는 장소를 바꿔야만 '악'을 쫓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작품을 번역한 최성은 한국외대 폴란드어과 교수는 최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올가를 노벨상 수상 작가로 선정한 이유 중 하나가 새로운 형식이라고 본다"면서 "소소하고 미시적인 이야기들은 얼핏 보면 다른 이야기 같은데 장편으로 모이면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가 된다"고 말했다.

토카르추크는 대중성과 문학성을 모두 인정받는 폴란드 대표 작가 중 하나다.

세계 3대 문학상 중 프랑스 콩쿠르상을 제외한 나머지 둘을 석권하며 거장 반열에 올랐다. 약소국이자 유럽 변방인 폴란드에서 5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다.

1962년 폴란드 술래호프 지역에서 태어난 그는 등단 초부터 관심과 인기를 끌며 꾸준히 독자층을 넓혔고 평단으로부터도 고르게 호평받았다.

1993년 출간한 등단작 '책의 인물들의 여정'은 폴란드 출판인협회가 선정하는 '올해의 책'으로 뽑혔다. 세 번째 장편소설 '태고의 시간들'은 40대 이전 작가들에 주는 코시치엘스키 문학상을 받았고 폴란드 최고 권위 문학상인 니케 문학상 '독자들이 뽑은 최고의 작품'에도 선정됐다.

이 밖에도 니케 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야고보서', 'E. E.', '낮의 집, 밤의 집', '세상의 무덤 속 안나 인', '망자의 뼈에 쟁기를 휘둘러라' 등이 있다.

토카르추크, 2018 노벨문학상 수상 기자회견
토카르추크, 2018 노벨문학상 수상 기자회견

10 October 2019. EPA/STRINGER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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