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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넘치면서 부재하는 시대"에 찾아온 '사랑잡가'

송고시간2019-10-2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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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의동 보안여관서 '김기라·김형규 ×사랑'展

배우·래퍼·소리꾼 등과 협업해 다원예술적 시도

'김기라·김형규 X사랑' 전시가 진행 중인 통의동 보안여관
'김기라·김형규 X사랑' 전시가 진행 중인 통의동 보안여관

[촬영 정아란]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호젓한 경복궁 돌담길을 따라 걷던 사람들 눈길이 한 곳에 꽂혔다. 허름한 여관 앞에서 멀끔한 와이셔츠 차림 중년 남성이 확성기를 든 채 목이 터져라 "사랑합니다"를 연신 외치는 중이었다. 그 소리에 이끌려 여관을 기웃대던 이들은 소파에서 꺽꺽대며 오열하거나, 눈이 가려진 채 기둥에 묶여 몸부림치거나, 소복 차림으로 창(唱)을 하는 사람들과 마주하고서는 허둥댔다.

지난 10일 저녁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 안팎에서 펼쳐진 진풍경 정체는 '김기라·김형규 ×사랑' 전시 개막을 알리는 퍼포먼스였다. 진부하기 그지없는 사랑이 전시 화두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김기라는 "예술가랍시고 아름다운 세상만 꿈꿨는데 올 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문득 뒤를 돌아보니 사랑이란 그 명백한 진리가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더라"고 털어놓았다.

"사랑이 넘치면서 부재하는" 이 시대도 전시의 맥을 잡는 데 영향을 미쳤다.

"사랑이 과하면 정치가 되기도, 폭력이 되기도 합니다. 대립과 분노, 갈등으로 점철된 시대는 오히려 더 뜨겁고요."

'김기라·김형규 ×사랑' 전시 풍경
'김기라·김형규 ×사랑' 전시 풍경

[촬영 정아란]

작가는 전시를 준비하면서 보안여관의 지역성과 역사성을 새삼 주목했다. 1942년에 지어 60년 넘게 숙박업소로 쓴 보안여관에서는 거대사와 개인사가 종횡했다. 오래전 이곳에는 서정주, 김동리, 이중섭, 이상 등 숱한 문화예술인들이 모여들었다.

청와대와 지척인 보안여관을 들락날락하는 정치인도 많았다. 통금 시절에는 야근과 과음으로 귀가할 때를 놓친 사람들이 하룻밤을 묵었다.

1990년대 넘어 쇠락한 여관에는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여관처럼 방마다 한 사람의 사적인 이야기와 역사를 풀어내는 방식을 택했어요."

작가는 따뜻한 인류애나 뜨거운 로맨스 대신, 이중적이며 변질하는 사랑의 양상을 잡가 형식으로 풀어냈다. 그 모습은 처절하고 섬뜩하기까지 하다. 알랭 바디우 '사랑예찬', 장한몽, 춘향전, 심청전 등 사랑을 다룬 여러 텍스트가 배우, 소리꾼, 어린이, 래퍼 등의 노래, 퍼포먼스, 연기를 통해 '낯설게' 다가온다.

관람객에게 '나는 사랑을 잘 아는가' '내가 아는 사랑은 무엇인가'를 자문하게 하는 전시다. 온라인에서도 화제가 된 'X사랑' 퍼포먼스는 24일 한 차례 더 열린다.

보안여관 '김기라·김형규 X사랑' 풍경
보안여관 '김기라·김형규 X사랑' 풍경

[촬영 정아란]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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