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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가 완창 장문희 "소리의 본질에 닿고 싶습니다"

송고시간2019-11-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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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가' 앨범 발매…전주대사습 장원 출신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둥둥둥 내 딸, 어허 둥둥 내 딸이야. 둥 둥 둥둥 어허 둥둥, 내 딸이야."

판소리 '심청전'에서 심봉사가 딸 심청을 낳고, 기쁨에 겨워 창을 하는 대목이다. 최근 발매된 앨범 '심청가'에서 창을 하는 장문희는 구성지고, 감질나게 이 부분을 소화했다.

그는 12일 전화 인터뷰에서 "'심청가'를 오래 배웠지만 이번에 공부하는 마음으로 앨범 작업을 했다. 이번 앨범에는 '소리'라는 외길을 걷겠다는 저만의 다짐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장문희는 현재 전라북도립국악원 창극단 수석이다. 그가 '심청가' 완창 앨범에 도전하기까지는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04년 전주대사습놀이 장원 후 눈대목(판소리 한바탕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목)을 담은 앨범을 여러 차례 냈지만 완창 앨범은 이번이 처음이다.

장문희
장문희

장문희 씨 제공

2004년 제30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에서 판소리 명창 부문 장원에 최연소로 뽑히며 이름을 알린 그는 주로 장년층이 출전하는 이 대회에서 20대 나이로 참가, 심사위원 7명 전원으로부터 만점(99점)을 획득하며 장원을 차지했다.

이는 전주대사습놀이 사상 최연소, 최고점수 기록으로, 조통달·안숙선 명창 등 심사위원들로부터 '100년에 한 번씩 나올 소리꾼' '금년 대사습이 낳은 대어'라는 찬사를 받으며 일약 판소리계 기대주로 떠올랐다.

"상을 받고 나서 여기저기서 녹음하자는 제안을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저는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했죠. 평생 소리에 매진한 대가들만 받는 상인데, 저는 너무 어린 나이에 상을 받았다고 생각했어요. 상이 저에겐 너무 무거웠습니다. 아직 할 게 많았고,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명창으로서의 DNA는 있었다. 현존 최고 소리꾼으로 꼽히는 이일주(전라북도 무형문화재) 명창이 그의 이모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전주에 있던 이모 댁에 살면서 자연스럽게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엄마도 소리를 했지만 꿈을 이루진 못했어요. 어린 시절 엄마가 소리를 하라며 이모님에게 저를 맡기고, 잘 찾아보시지도 않았어요. 의지할 곳이라고는 이모님밖에 없었죠. 이모님이 저를 잘 돌봐주셨지만 소리를 교육할 때만큼은 무척 엄하셨습니다."

장문희
장문희

장문희 씨 제공

판소리 입문은 7세 때 '춘향가'부터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8시간 반에 이르는 '춘향가'를 완창했다. 중학교 때는 '심청가'를,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흥보가'와 '수궁가' 등을 완창하며 실력을 키웠다. 전주대사습에서 그에게 장원을 안긴 곡은 '춘향가'였다. 시작을 춘향가로 했고, 춘향가로 명성을 떨쳤기에 어쩌면 첫 완창 앨범으로 춘향가를 선택하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예상을 깨고 그는 '심청가'를 선택했다.

"이모님이 심청가 문화재세요. 이번에 녹음한 건 이모님에게 배운 가보 같은 소리입니다. 그걸 이으려는 마음이 컸어요. 또 최근에는 어렸을 때 느끼지 못한 심청의 마음이 더욱더 애절하게 다가오기도 했고요. 시간이 흐를수록 심청가가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는 이번 음반을 녹음하기 위해서 1년 반 정도를 준비했다. "20대 때보다는 나이를 더 먹었고, 인생을 더 살았으니 소리의 깊이가 달라지겠지"라고 기대했지만 정작 앨범에 대한 만족도는 크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60~70% 정도 만족하지만 욕심을 버리는 것도 하나의 공부가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세속적인 성공, 대중이 원하는 판소리보다는 궁극의 '소리'에 가닿고 싶다고 했다.

"이모가 걸었던 그 치열한 길을 저도 따라가고 싶습니다."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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