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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베를린] 무너진 장벽 교회서 예수와 부처, 남과 북이 만나다

송고시간2019-11-1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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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성마테우스 교회서 정관 스님의 사찰음식 행사 '화합의 만찬'

같은 교회서 옛 동독출신 유명 獨작가 전시…통일후 '차이·공존' 현실 담아

정관 스님 "나와 타자의 다름 인식은 자아 성찰에서 비롯"

지난 8일 베를린 성 마테우스 교회에서 열린 '화합의 만찬' 행사에서 발우에 비친 작품들 *니콜 클라우스 촬영 [베를린=연합뉴스]

지난 8일 베를린 성 마테우스 교회에서 열린 '화합의 만찬' 행사에서 발우에 비친 작품들 *니콜 클라우스 촬영 [베를린=연합뉴스]

[※편집자 주 = 열두 번째 이야기. 독일 수도 베를린은 유럽에서 가장 '힙(hip)'한 도시로 부상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과 냉전체제의 유산을 간직한 회색 도시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젊은 예술가들로 인해 자유분방한 도시로 변모했습니다. 최근엔 유럽의 새로운 IT와 정치 중심지로도 주목받습니다. 이런 복합적인 특색 탓인지 베를린의 전시·공연은 사회·정치·경제적 문제의식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힙베를린'에서는 다양한 문화적 현상을 창(窓)으로 삼아 사회적 문제를 바라봅니다.]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동서 베를린의 경계에 있던 이 교회에서 예수님과 부처님이 하나가 됐고, 남북이 하나가 됐습니다."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 전야인 지난 8일(현지시간) 베를린 장벽이 지나던 경계에 위치한 성 마테우스 교회.

교회 내 탁자 위에 놓인 발우(불교 승려들이 쓰는 그릇) 속 맑은 물에는 색감이 강렬한 잔영이 비치고 있었다. 천장에 설치된 그림들이 투사된 것이다.

정관 스님의 발우공양 행사인 '화합의 만찬'이 열린 장소였다.

정관 스님은 2015년 뉴욕타임스로부터 '철학적 요리사'라는 찬사를 받았다.

2017년에는 넷플릭스가 '셰프의 테이블 시즌3'에서는 정관 스님의 음식을 소개했고, 한국의 사찰 음식이 국제적으로 더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정관 스님이 베를린을 찾은 것은 동서독 분단 극복의 상징인 이곳에서 남과 북,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과 화합을 음식이라는 매개로 표현하고 싶어서였다.

40여명의 참석자가 발우공양을 체험하는 행사장에서 정관 스님의 옆에는 프란츠라우어베르크 교회의 알무트 벨만 목사가 앉아 있었다.

벨만 목사는 정관 스님과 함께 행사의 여성 '투톱'이었다.

그는 정관 스님이 발우공양의 절차를 하나하나 설명할 때 고개를 살짝 돌리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화합의 만찬' 행사서 만난 정관 스님(왼쪽)과 벨만 목사. 금아트프로젝트 제공 [베를린=연합뉴스]

'화합의 만찬' 행사서 만난 정관 스님(왼쪽)과 벨만 목사. 금아트프로젝트 제공 [베를린=연합뉴스]

벨만 목사는 정관 스님의 동작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다른 참석자들에 앞서 발우공양의 시범을 보였다.

정관 스님은 "정신적인 에너지와 물질적인 에너지를 연결하는 게 음식"이라면서 남북한, 종교의 화합을 기원했다. 발우공양에는 금강산 산더덕이 재료로 사용됐고 북한식 녹두전도 선보였다.

벨만 목사는 "정관 스님의 음식은 짠맛과 단맛, 신맛 등 다양한 맛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것 같아 무척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성 마테우스 교회는 주최 측인 금아트프로젝트로부터 발우공양 행사 개최를 제안받았을 때 흔쾌히 동의했다고 한다. 벨만 목사도 마찬가지다.

마침 성 마테우스 교회는 올해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맞아 '화합'과 '경계'를 주제로 연간 행사를 열고 있었다

벨만 목사가 있는 프란츠라우어베르크 교회는 옛 동베를린 지역에 있다. 동서독 분단 당시 동독 당국의 탄압을 받던 반체제 인사들을 숨겨주었던 곳이다.

벨만 목사가 음식을 통한 남북한의 화합을 기원하는 행사에 더욱 선뜻 참여한 이유이기도 하다.

행사는 남북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종교의 화합을 기원하는 성격도 띄었는데, 이날 강조된 '다름'이라는 의미도 화합을 위한 전제조건이라는 점에서 뜻깊어 보였다.

"나와 타자의 다름을 인식하는 것은 자아 성찰에서 비롯된다"는 정관 스님의 말에 벨만 목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적으로 타자와 차이가 있더라도 타자를 존중하면서 화합을 추구하자는 데에 둘은 의견을 같이했다.

발우 속에 비친 그림은 독일의 유명한 작가인 노어베르트 비스키의 작품들이다.

'화합의 만찬' 행사장 천장에 걸린 노어베르트 비스키 작품. 금아트프로젝트 제공 [베를린=연합뉴스]

'화합의 만찬' 행사장 천장에 걸린 노어베르트 비스키 작품. 금아트프로젝트 제공 [베를린=연합뉴스]

'화합의 만찬' 행사 이후 열릴 그의 전시회('Pompa')의 작품들이 미리 설치돼 있었다.

비스키는 유서 깊은 교회와 성당에 있는 천장화에 착안해 천장에 그림을 설치했다.

비스키는 옛 동독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동독 집권 세력인 사회주의통일당(SED)의 주요 인사였고 통일 이후에도 좌파정당의 거물로 활동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열 아홉살이었던 비스키는 당시 모든 것이 변하는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고 말해왔다.

그는 독일 통일 과정의 여러 사회적 현상들을 바라보면서 포착한 자신의 내면세계를 사회주의권에서 발달했던 리얼리즘 화풍으로 풀어내 환경·이민·노동자·클럽 문화 등의 소재로 변화와 차이, 증오, 공존 등을 표현해왔다.

통일 뒤 발생한 동서 간의 차이와 그로 인한 여러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두 문화가 공존하는 현실을 묘사했다.

동성애자인 그는 성 소수자 문화도 화폭에 담고 있다.

비스키는 언론을 통해 창작을 "고통스러운 과정"이라며 거친 리얼리즘적 이미지를 작품 속에 담았지만, 현재의 독일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고 말해왔다.

'화합의 만찬'이 열린 성 마테우스 교회 앞에는 한석현·김승회 작가의 '제3의 정원' 전시도 열리고 있었다. 기암괴석과 남북의 야생화로 백두대간을 표현한 작품이다.

한반도 전체를 서식지로 하거나, 남과 북으로 서식지가 나뉜 야생화를 통해 남북의 작은 차이와 동질성, 공존을 보여준다.

베를린에선 남북 간 관계가 진척을 보였던 올해 초까지만 해도 해외에서 남북 간 화합의 장면을 가장 많이 보여준 곳이다.

지난해 베를린에서의 6·15 공동선언 행사에서 정범구 주독 한국대사와 박남영 주독 북한대사가 손을 맞잡았고, 지난 1월에는 베를린에서 열린 남자 핸드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남북 단일팀이 출전해 공동응원전이 펼쳐졌다.

그러나, 북한의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 간의 협상이 장기간 교착 상태에 빠지고, 남북관계도 경색되면서 베를린에서도 북한대사관의 문은 굳게 닫혔다.

그래도 정관 스님은 장벽 붕괴 30주년을 맞아 베를린에서 남북의 화합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의 의미를 강조했다.

"베를린에서 남북, 종교의 화합을 이야기하기가 더 편한 것 같습니다. 관용과 소통의 문화가 잘 스며든 베를린의 특수성 때문인 것 같습니다."

lkbin@yna.co.kr

베를린 성 마테우스 교회 앞 '제3의 자연' 전시 [베를린=연합뉴스]

베를린 성 마테우스 교회 앞 '제3의 자연' 전시 [베를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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