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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동행] 배곯아 시작한 기부…20년간 쌀밥 16만그릇 나눠

송고시간2019-12-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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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임형노·공양덕씨 부부, 땀 흘려 농사지은 쌀 800㎏씩 내놔

"젊은시절 우리처럼 어려운 사람 힘내도록…" 태풍에도 약속 이행

기부할 쌀가마니 준비한 임형노 씨
기부할 쌀가마니 준비한 임형노 씨

(화순=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전남 화순군 이양면 초방마을에서 2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쌀 등을 불우이웃에 기부해 온 임형노 씨가 올해 기부할 쌀가마니 앞에 서 있다. 2019.12.14 iny@yna.co.kr

(화순=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배곯는 설움과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 나누는 거죠."

전남 화순군 이양면 초방리에 사는 임형노(69)·공양덕(64)씨 부부는 올해로 20년째 불우이웃을 위해 땀 흘려 농사지은 쌀을 내놓고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바뀔만한 세월이라지만, 이 부부의 선행은 강산이 2번 바뀌는 동안 한 해도 거른 적이 없다.

지독히도 가난했던 젊은날의 기억이 부부를 '기부 천사'로 만들었다.

부부는 신혼 때부터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생활고에 허덕였다.

6남매 중 장남인 임씨는 부모를 여읜 뒤 1979년 광주로 나가 택시 운전대를 잡았다. 몇 푼 안 되는 수입으로 아내와 두 자녀, 그리고 고향에 남은 어린 동생들과 할머니를 부양해야 하는 힘겨운 나날이었다.

타고난 성실성을 밑천 삼아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택시를 끌며 근근이 입에 풀칠해 나가던 중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영화 '택시 운전사'에서 비친 광주의 택시 운전사들처럼 그도 적극 시위에 참여했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셋째 동생은 군경에 붙잡혀가 목숨을 잃었고, 그도 도망치듯이 광주에서 멀리 떨어진 전남 고흥의 처가 마을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택시운전대를 잡은 지 1년 만의 일이다.

낯선 고흥에서 겨우 운수회사 일자리를 구했지만, 얼마 안 가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그는 6개월 치 월급을 받지 못한 채 또다시 거리로 내몰렸다.

그는 이때부터 10년간 하루 한 끼만 먹었고, 이후 사정이 조금 나아지면서 하루 두끼를 먹었다. 세끼를 꼬박 챙겨 먹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년이 안 된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그는 얼마 뒤 가족을 데리고 일자리가 많다고 소문난 전남 여수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그곳 생활도 궁핍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밥 지을 쌀을 구하기 위해 땅에 떨어진 오동나무 열매를 주워 모을 정도로 처절한 생활이 이어졌다.

당시 사글셋방에서 3㎞ 떨어진 오동도를 오가며 주워 모은 열매 한 자루를 내다 팔면 보리쌀 한 되를 살 수 있었다.

이 보리쌀로 밥을 지으면 정확히 두 그릇이 나왔다.

한 그릇은 어린 자녀 둘이서 싹싹 비웠고, 남은 한 그릇을 놓고 부부는 서로에게 양보하며 미루다가 결국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든 날이 허다했다.

20년째 기부 임형노·공양덕씨 부부
20년째 기부 임형노·공양덕씨 부부

(화순=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전남 화순군 이양면 초방마을에서 2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쌀 등을 불우이웃에 기부해 온 임형노·공양덕씨 부부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9.12.14 iny@yna.co.kr

보리쌀마저 떨어지는 날엔 라면 한 봉지로 네 식구 끼니를 때워야 했다.

얼마나 자주 라면을 먹었던지 코흘리개 아들은 부부가 라면 봉지만 집어 들어도 '먹기 싫다'고 울면서 도망 다녔다.

배곯는 설움에 눈물짓던 부부는 "앞으로 여유가 생기면 나보다 못한 이웃에게 밥이라도 배불리 먹이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러면서 부부는 가난의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몸이 부서져라 일을 했다.

임씨는 토막잠을 자면서 공사장 막노동, 연탄 장사, 운전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고, 부인 공씨도 식당 허드렛일부터 세차장, 공장을 찾아다니면서 돈 되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았다.

어린 자녀를 허리춤에 매달고 다니면서 겪은 설움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공씨는 "굶어죽지 않으려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면 닥치는 대로 했다. 고단함에 지쳐 코피를 쏟은 날도 허다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 무렵 부부에게는 따뜻한 밥 한그릇도 호사였다. 끼니를 거르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10원짜리 하나 허투루 쓰는 법 없이 자린고비 생활을 이어갔고, 얼마간의 쌈짓돈이 모아지면 고향 집 주변에 야금야금 논밭을 샀다.

부부에게 쌀과 밥이 특별했던 만큼 농사지을 땅이 갖는 의미도 남달랐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돌볼 겨를 없이 억척스럽던 삶은 오래 지나지 않아 임씨의 건강 이상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부부는 고향을 떠난 지 21년 만에 지친 몸을 이끌고 낙향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맨몸으로 떠났던 과거와 달리 넉넉지는 않지만 농사 지을 아담한 땅이 생긴 점이다.

부부는 이 땅과 더불어 주변의 놀고 있는 땅까지 빌려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타고난 부지런함은 들녘이라고 다를 게 없어 부부는 이웃한테서 '일벌레' 소리를 들어가면서 이를 악물었다.

동트기 전 논밭에 나갔고, 어둠이 내리면 자동차 라이트를 켜놓은 채 일을 했다.

농작물이 자라지 않는 논밭두렁까지 일궈 콩과 팥을 심을 정도로 자투리땅 하나 그냥 묵히는 법이 없었다.

소중한 첫 수확의 기쁨을 맛본 부부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불우이웃을 위한 나눔을 행동에 옮겼다.

배곯던 시절 다짐한 두 사람의 약속을 이행한 것이다.

임씨는 "당시는 복지정책이 지금처럼 잘되지 않아 밥 굶는 사람이 많았다"며 "젊은시절 우리처럼 힘든 처지에 놓인 이웃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먹여주기 위해 기부를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기부품 전달하는 임형노씨 부부(왼쪽 두번째·세번째)
기부품 전달하는 임형노씨 부부(왼쪽 두번째·세번째)

[화순군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그렇게 첫해 농사로 수확한 쌀 40포대, 800㎏을 이웃과 나눴다.

크게 내놓지 못하는 게 부끄러워 새벽시간 면사무소 주차장에 슬그머니 쌀 포대를 가져다 놓는 것으로 부부의 20년 나눔이 시작됐다.

그러나 이들의 '얼굴 없는 기부'는 오래 지나지 않았다. 옆 짚 숟가락 수까지 공유하는 시골이다 보니 몇해 지나지 않아 면사무소 쌀 기부자의 신원이 입에서 입으로 전파된 것이다, 이후 부부는 농사지은 쌀은 도정하는 첫날 드러내놓고 면사무소 복지팀에 쌀을 전달한다.

몇 년 뒤부터는 쌀 포대와 함께 직접 농사지은 고구마 등도 기부물품에 넣었다.

멧돼지 피해 때문에 고구마 수확이 시원치 않을 때는 라면 40∼50상자를 대신 구매해 면사무소를 찾기도 했다.

고구마와 라면은 부부를 굶어 죽지 않게 한 '생존 음식'이나 다름없다.

태풍 등 자연재해도 부부의 기부를 막지 못했다.

10여년 전 강력한 태풍이 훑고 가면서 농경지가 쑥대밭으로 변했을 때 이웃들은 "피해가 너무 크니, 올해는 그냥 넘어가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부부는 "이런저런 핑계로 건너뛰면 결국 나누려는 결심이 흐트러진다"면서 수확량과 상관없이 그간 해온 대로 쌀 40포대를 내놨다.

이렇게 20년간 부부가 내놓은 쌀은 자그마치 1만6천㎏에 달한다. 형편이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쌀밥 16만 그릇을 대접한 셈이다.

부부는 면사무소에 농작물을 전달하는 것 말고도 딱한 처지의 이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호주머니에 든 현금이나 쌀 등을 아낌 없이 챙겨준다.

임씨는 "나눔은 여유가 있어서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부족한 것을 나눌 때 행복이 더 커진다"고 강조했다.

부부는 3년 전 정부가 선정한 '생활 속 작은 영웅'에 이름을 올렸다. 근면성실한 생활 속에서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는 주인공에게 주는 값진 상이다.

임씨는 올해 비로소 아내와 다짐했던 '20년 기부' 약속을 달성했다. 내년부터는 농사도, 기부도 아들에게 물려줄 예정이다.

그는 "이웃에 온정을 베풀면서 하는 일마다 술술 풀렸다"며 "이제는 아들에게 나눔의 가치와 그 즐거움을 알려줄 계획"이라고 넉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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