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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동행] 폐교위기 학교에 알록달록 희망 심는 '키다리아저씨'

송고시간2019-12-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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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김재식씨, 7년간 시골학교 50곳에 무지갯빛 사랑 선물

"산불 피해 학교서 '스마일 마크' 쓰다듬던 아이 눈에 선해"

양양 '키다리아저씨' 김재식씨
양양 '키다리아저씨' 김재식씨

[촬영 양지웅]

(양양=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출산율이 1% 아래로 떨어지면서 시골로 갈수록 어린아이 구경하기가 힘들어졌다. '지방소멸'을 우려한 언론은 수년 전부터 위기에 처한 지역을 지도 위에 붉은색으로 표시하기도 한다.

강원도 역시 예외가 아니다. 1차적으로 작은 학교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5년간 문 닫은 초등학교와 분교 수가 무려 43곳에 달한다. 교정 안에서 들리던 아이들의 재잘거림도 잦아들었다.

사람들이 사라지는 학교를 보면서 안타까워할 때, 외로이 붓을 들고 스러지는 학교에 무지갯빛 꿈을 덧칠하기 시작한 사람이 있다.

그렇게 7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의 꿈은 폐교 위기에 몰린 교정 50곳으로 번졌다. 아이들은 화사해진 학교에서 맘껏 뛰놀았다. 생기발랄한 웃음소리가 담장 너머 어른들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낡고 칙칙한 학교 건물에 마법을 부리듯 희망을 덧칠하는 김재식(43)씨의 첫인상은 영락없는 옆집 아저씨였다.

긴 곱슬머리를 말총처럼 묶고 푸근한 미소로 악수를 청하는 손은 거칠었지만, 온기로 가득했다.

이웃들은 그를 '키다리아저씨'라고 부른다.

살아가는 모습이 미국 작가 웹스터 소설에 나오는 '키다리아저씨'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첫 도색 봉사를 펼친 회룡초등학교
첫 도색 봉사를 펼친 회룡초등학교

[김재식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시골 학교가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것은 지켜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아이들의 건강한 웃음을 두고두고 간직하기 위해 희망이라는 붓을 들고 꿈을 덧칠하기 시작한 거죠."

그는 폐교 위기 학교를 찾아다니는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고향인 강원도 양양에서 페인트업체를 운영하는 그는 어느 날 언론을 통해 폐교 위기 학교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학생 수가 적다 보니 당국에 낡은 건물의 보수를 요구해도 무시당하기 일쑤라는 기사였다.

그 길로 그는 뉴스에 등장했던 양양 회룡초등학교를 찾았고, 그곳에서 맞닥뜨린 현실은 생각보다 더 암울했다.

학교 외벽은 허물을 벗듯 도색이 떨어져 나갔고, 건물 안 곳곳도 낡고 녹슬어 누더기 된 상태였다. 운동장을 가득 채우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초라해진 교정과 더불어 사라지고 있었다.

낡은 시설을 바꾸지 못해 학교가 문 닫을 위기에 내몰린 현장을 보면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깔끔하게 그려진 도색 디자인을 들고 교장실 문을 두드렸다. 그의 순수한 열정을 본 학교 측은 흔쾌히 작업을 승인했고, 며칠 뒤 칙칙하던 학교는 누더기 옷을 벗어 던졌다.

도색 전 학교(위)와 작업을 마친 학교
도색 전 학교(위)와 작업을 마친 학교

[김재식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며칠 뒤 소식을 전해 듣고 현장을 찾은 교육장은 즉석에서 흙먼지 풀풀 날리는 운동장에 잔디를 입혀주기로 약속했다. 그의 노력이 또 다른 교육시설 투자를 부른 셈이다.

그의 '작은 학교 도색 프로젝트'는 이렇게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학교 특성에 맞춘 도안 구상부터 디자인, 도색까지 직접 진행한다. 학생들에게 '깜짝 선물'을 하기 위해 주말과 휴일을 택해 작업할 때가 많다.

김씨는 "산뜻해진 학교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아이들을 보면 금세 피로가 풀린다"며 "동화 속 세상처럼 변한 학교를 보자마자 울음부터 터뜨린 여학생의 순진했던 모습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2013년 회룡초등학교를 시작으로 그는 올해까지 50개 학교를 찾아다니며 도색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영월과 동해를 뺀 강원도 16개 시·군 작은 학교에 그의 붓이 닿았다.

그는 학교 외벽을 덧칠할 때 아름다운 도안이나 화려한 색감을 넣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지역 특징과 역사 등을 그 속에 담는다.

정선 예미초등학교는 '정선아리랑'을 디자인에 담아 굽이치는 무지갯빛 선이 건물을 휘감게 한 뒤 '예미아리랑'이라고 이름 붙였다.

춘천 지촌초등학교는 교정 앞 춘천호와 연관 지어 유람선 모습으로 건물을 재탄생시켰다. 멀리서 바라보면 호수 위로 학교가 배처럼 뜬 모양새다.

대형 유람선으로 변신한 학교
대형 유람선으로 변신한 학교

[김재식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의 사무실 컴퓨터 바탕화면에는 지금껏 자신의 손을 거쳐 변신한 학교들의 모습이 폴더별로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처음에는 사진 보여주기를 머뭇거리던 그지만, 기자의 질문이 이어지자 금세 얼굴에 화색이 돌며 목소리가 빨라졌다.

지난 4월 그는 강원 동해안을 삼킨 산불로 고성 인흥초등학교가 그을렸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고성으로 향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잿더미가 된 집에 주저앉은 이재민 모습도 마음 아팠지만, 아이들의 꿈의 공간인 학교가 무엇보다 마음 쓰였다.

한달음에 찾아간 학교 모습은 걱정한 것보다 피해가 크지 않았다. 그러나 화마에 놀란 아이들이 트라우마 증상을 보인다는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붓을 들기로 결심했다.

다급한 마음에 그는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전남 나주 지인에게 도움을 청했고, 곧바로 20여 명의 도색 봉사단이 꾸려져 학교 안팎을 새로 단장했다.

봉사자의 손길이 스치면서 붉은색 계열이던 학교 복도는 금세 밝고 환한 색으로 변신했다.

아이들의 상처 입은 마음에 약을 발라준다는 생각으로 애초 계획한 복도에 그치지 않고 교실과 외벽까지 붓질이 이어졌다.

그는 가만히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노랗게 색칠된 복도 벽에 커다란 '스마일 마크'가 그려져 있고, 그 아래로 분홍색 가방을 멘 아이가 벽을 쓰다듬고 있는 장면이다. 도안작업 이튿날 학교를 둘어보다가 우연히 마주친 모습이라고 했다

산골 아이들을 향한 그의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사진이다.

스마일 마크를 끌어안은 어린이
스마일 마크를 끌어안은 어린이

[김재식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보통 학교 1곳을 색칠하는 데는 페인트값만 500만∼1천만원이 든다. 따라서 도색 프로젝트 진행하면서 그가 쓴 돈은 5억원이 넘는다.

그는 한 통에 40만원이 넘는 친환경 페인트 사용만을 고집한다. 10만원 남짓 하는 일반 제품도 있지만, 아이들의 건강을 고려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이다.

김씨는 "일각에서 봉사를 홍보 수단으로 삼는다고 헐뜯지만, 돈이 남아돌거나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게 아니다"며 "오로지 아이들의 환한 웃음을 떠올리며 이 일을 한다"고 설명했다.

7년을 쉬지 않고 허겁지겁 달려온 그는 잠시 숨 고르기를 할 계획이다.

한 해 7∼8곳의 학교를 색칠하는 과정에서 육체적·경제적으로 피로가 쌓였다고 판단해서다.

그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뒤 다시 힘을 내겠다"며 "장기적으로 봉사를 이어가려면 그래야 한다"고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텅 빈 운동장이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다시 채워지길 꿈꾸는 키다리아저씨. 붓을 든 그의 미소는 어느새 동심을 닮아 있었다.

2017년 강릉 운산분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2017년 강릉 운산분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김재식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yangd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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