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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동행] 반백년 재봉질 봉사…아흔살 '실버천사' 서두연 할머니

송고시간2019-12-0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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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 모아 만든 옷 2만벌 기부…"이웃에 편하고 따뜻한 옷 입히는 게 보람"

주름진 얼굴엔 행복 가득, '마산합포구 할머니 봉사대' 25년 이끈 왕언니

※[편집자 주 = '나누다'의 사전적 의미는 하나를 둘 이상으로 가른다는 뜻입니다. 나눌 경우 개인 몫은 줄어들기 마련이지만, 어떤 나눔에는 특별한 마법이 작용합니다. 기쁨과 행복을 오히려 키우는 마법입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라지만, 여전히 딱한 처지의 이웃이 적지 않습니다. 그 못지않게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나누는 온정도 넘쳐납니다. 연합뉴스는 녹록지 않은 환경에서도 묵묵히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는 이웃들의 훈훈한 이야기를 이달부터 매주 2꼭지씩 소개합니다. 이들의 사연이 더 큰 울림으로 퍼져나가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되기 바랍니다.]

(창원=연합뉴스) 한지은 기자 = "최대한 많이 베풀고 난 뒤 하늘나라 가면 좋겠다…"

재봉틀 돌리며 옷 만드는 서두연 할머니
재봉틀 돌리며 옷 만드는 서두연 할머니

[촬영 한지은]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의 한 아파트 작은방에서 분주하게 재봉틀을 돌리던 서두연(90) 할머니는 소원처럼 말했다.

"드르륵 드르륵…"

서 할머니 집에서는 하루종일 재봉틀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할머니는 52년째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에게 옷과 가방을 만들어 기부하고 있다.

틈날 때마다 재봉틀 앞에 앉는다는 그의 주름진 손을 거쳐 간 옷가지만 무려 2만 벌이 넘는다.

할머니는 올해도 고무줄 바지와 천 가방을 3천여개를 만들어 이웃에 선물했다.

그의 집 거실과 방에는 손때묻은 재봉틀이 한 개씩 놓여있고, 그 주변에는 온갖 종류의 천과 실이 상자째 가득 쌓여있다.

"아침 일찍 시작하면 하루 바지 30개는 거뜬히 만들어. 재단까지 다 해서 말이야.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죽는 날까지 이러고 살 거야."

서 할머니는 1929년 일본 규슈(九州)에서 태어나 열일곱 나던 해 창원(옛 마산)으로 왔다.

할아버지가 독립군 자금지원을 하다가 도망치듯 쫓겨 온 가족이 일본으로 갔지만 해방 후에는 조선인에 대한 핍박이 심해지자 다시 할아버지의 고향인 창원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우리 말을 전혀 못 하는 상태로 한국에 온 할머니는 그해 중매로 결혼을 했다.

그러나 젊은시절 생활은 끼니조차 잇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다. 당연히 옷 한 벌 제대로 지어 입을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어려운 이웃들이 편하고 따뜻한 옷을 입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재봉질을 시작했다.

가위로 재단하는 서두연 할머니의 거친 손
가위로 재단하는 서두연 할머니의 거친 손

[촬영 한지은]

슬하에 6남 2녀를 둔 그는 30여년 전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뒤 재봉틀을 벗 삼아 외로움을 달랬다.

손자 손녀가 한 명씩 늘어가는 긴 세월을 언제나 재봉틀 앞에 앉아서 보냈다.

"애들이 전화로 안부 물으면 그냥 누워있다고 해. 그만큼 했으면 됐지 뭘 자꾸 하냐구 싫어하거든. 그래도 나는 재봉질할 때가 제일 좋아."

옷과 가방을 만들 원단은 할머니가 용돈을 모아 직접 구입한다. 조금이나마 좋은 원단을 싼값에 구하기 위해 멀리 대구까지 오가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가방 안에 덧대는 현수막은 인근 공장에서 받아온다. 예전에는 헌 옷 수거함에서 천을 구하고, 폐현수막을 씻어 말려 쓰기도 했지만 요즘은 모두 새것만 사용한다.

그렇게 아끼고 절약해도 고무줄 바지 하나 만들려면 1만3천원가량의 제법 큰 돈이 든다.

"애들이 주는 용돈과 연금을 조금씩 모아서 쓰는 거야. 늙은이 혼자 먹고사는 데 그리 큰돈 들어갈 일은 없잖아."

꼼꼼하게 재봉질해 탄생시킨 '서 할머니표 바지'는 그의 자부심이다.

"시중에서 파는 바지는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고 허술한 반면, 내가 만든 옷은 몸에 착 달라붙는다고 좋아해. 입어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너무 편하다고 칭찬하지."

자신의 솜씨를 자랑하는 그의 주름 가득한 얼굴은 금세 소녀처럼 화사해졌다.

만든 옷과 가방을 정리하는 서두연 할머니
만든 옷과 가방을 정리하는 서두연 할머니

[촬영 한지은]

그렇게 그녀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옷가지와 가방이 어느덧 2만여개. 마산합포구에서는 서 할머니 가방 안 든 사람은 간첩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할머니가 기부하는 옷과 가방은 단순한 물건 이상의 가치가 있다.

요양원, 경로당, 장애인센터 등에서 그의 선물을 받고 감격의 눈물 쏟는 사람도 있다.

"보잘 것 없는 선물인데두 사람들이 막 울고 그래. 왜 우냐 물으면 가족조차 찾지 않는 데, 정성 담긴 선물이 고마워서 그런다더군. 내가 이 일을 멈출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지."

아흔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할머니는 여전히 건강하고 밝다.

오랜 재봉질로 손은 거칠어져 엉망이 됐지만, 아직 시력도 나쁘지 않고 어깨나 허리도 견딜 만하다고 자랑한다.

몸이 뻐근하다가도 재봉틀 앞에만 앉으면 이상스럽게 아프지 않다고도 했다.

서 할머니는 1968년 농촌지도소 자원봉사를 시작으로 52년째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1995년 결성한 '마산합포구 할머니 봉사대'도 아직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 단체에서 그는 '왕언니'로 불린다. 25년간 맡던 회장직을 지난 3월 내려놨지만, 회원들은 여전히 그의 집에 모여 옷을 만든다.

서 할머니는 올해 2월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그동안 받은 경남도 자원봉사대상에서부터 대통령 표창까지 그의 집 거실은 각종 상장과 트로피가 넘쳐난다.

그만큼 자신을 인정해준 사람들의 관심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봉사를 해야 한다고 그는 다짐했다.

"힘들거나 아깝다고 생각하면 못하지. 나는 이렇게 하는 게 즐거워. 내가 조금 고생해서 베풀면 이웃들이 그만큼 행복해지잖아."

할머니가 재봉틀에 앉아 박음질하는 건 옷감이 아니라 따뜻한 사랑이었다.

소녀처럼 환하게 웃는 서두연 할머니
소녀처럼 환하게 웃는 서두연 할머니

[촬영 한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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