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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동행] 구청 공무원 출신 '가위손'…이발 봉사로 인생 2막

송고시간2019-12-2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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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씨, 병원·요양원 다니며 환자·노인 머리손질 8년째 봉사

40년 공직생활 마치고 이발 봉사하는 김성호씨
40년 공직생활 마치고 이발 봉사하는 김성호씨

[촬영 강종구 기자]

(인천=연합뉴스) 강종구 기자 = 가족의 병시중을 오래 하다 보면 사소한 것도 거슬릴 때가 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장기간 병마에 시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 아픈데, 그 와중에 환자의 머리카락은 삐죽삐죽 잘도 자라 보기에 영 불편하다.

'빨리 낫는 게 중요하지, 머리 손질이 대수냐'며 애써 무시하려 해도, 건강했을 때 누구보다도 세련되고 멋쟁이였던 모습을 떠올리면 지저분해진 머리만큼이나 마음도 착잡해진다.

머리 손질을 하러 이발소나 미장원을 가기에는 거동이 불편해 병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처지여서 서러움은 다시 또 차오른다.

퇴직 공무원 김성호(60)씨는 환자와 보호자의 이런 마음을 잘 헤아리며 병원과 요양원에서만 8년째 이발 봉사를 다니고 있다.

김씨가 이발 봉사를 위해 이용사 자격증을 취득한 것은 2011년이다. 쉰둘의 나이, 구청 공무원 생활을 안정적으로 하고 있을 때였다.

"공무원으로서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큼 생계를 보장받으며 국가로부터 혜택을 받은 만큼 노년에는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를 하며 살고 싶었습니다."

김성호씨의 손때 묻은 가위
김성호씨의 손때 묻은 가위

[촬영 강종구 기자]

봉사에도 여러 갈래가 있지만, 어렸을 때 동네 이발사 아저씨의 현란한 가위질에 매료됐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발 봉사를 하기로 결심했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자격증 취득을 위해 인천 백운역 근처 이용학원에 등록했지만, 가위로 종이를 자르는 법을 배우는 첫 수업부터 모든 게 어려웠다.

그래도 근무를 마치고 매일 저녁 학원에서 연습을 반복하며 실력을 키워 갔다. 상고머리, 스포츠머리 스타일을 연마하고 면도 기술도 배웠다.

결국 반년간 맹연습 끝에 이용 자격증을 따고 2012년 6월부터 서구 나은병원에서 이발 봉사를 시작했다.

솜씨 좋은 손놀림으로 머리를 손질하고 다듬어 주면 환자와 보호자의 표정도 한결 밝아지고, 그걸 바라보는 김씨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진다.

다만 가위를 함부로 다루다가 오히려 환자를 다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의 가위질은 빠르면서도 늘 신중하다.

"봉사 초기에 환자분 머리를 아래에서 위로 깎아 올리다가 귀에 상처를 낸 일이 있어요. 너무 죄송해서 그다음부턴 그런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하는 계기가 됐죠."

김씨는 봉사 시작 후 2017년 12월까지 5년 반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이발 봉사를 한 성실함 덕분에 나은병원에서는 감사장도 받았다.

김성호씨가 받은 감사장과 감사패
김성호씨가 받은 감사장과 감사패

[촬영 강종구 기자]

그는 작년부터는 남동구의 한 노인요양원으로 장소를 옮겨 매월 1회 이발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곳에서도 정성을 다해 이발 봉사를 하다 보니 요양원 사회복지사로부터 감사 문자메시지도 자주 받는다.

김씨는 작년 말 서구 검단선사박물관 관장직을 끝으로 40년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했지만 이발 봉사를 거르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 환자들 머리까지 손질해 주고 싶어서 미용 자격증 취득을 위해 작년 6월부터는 부평역 인근 학원에도 등록했다.

주로 20대 여성이 대부분인 수강생 사이에서도 배움의 열정은 누구보다도 뛰어나다.

단번에 합격해 따낸 이용 자격증과 달리 미용 자격증 시험에서는 2차례 낙방했지만 포기는 없다.

"병원과 요양원을 다니며 봉사를 하면서 여성 환자분들을 보면 전부 하나같이 남자 머리처럼 깎아 놓은 게 마음에 걸렸어요. 미용 자격증을 따서 어머님들 파마도 해드리고 싶어서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학원에서 미용기술 연습하는 김성호씨
학원에서 미용기술 연습하는 김성호씨

[촬영 강종구 기자]

태생적으로 부지런함이 베어서일까. 김씨는 올해 3월부터는 마을버스 기사로도 일하고 있다.

2016년 시청 재난관리과에서 근무할 때 갑자기 25인승 재난 지휘차량을 운전할 사람이 없어서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 아예 대형 운전면허를 따 놓은 것이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그의 인생 2막에서 마지막 꿈은 한국국제협력단 코이카(KOICA)와 함께 해외 이발 봉사를 다니는 것이다.

"가위와 빗, 바리캉만 있으면 내 기술을 활용해 어디서든 봉사할 수 있다는 점에 늘 감사한 마음이죠. 힘닿는 데까지 계속 쭉 이발 봉사를 다니고 싶습니다."

봉사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씨는 힘든 건 없고 오히려 감사한 삶을 살 수 있어 기쁘다고 답했다.

학원에서 마네킹 머리칼을 빗어 내리며 드라이 연습을 하는 그의 손놀림도 더욱더 빨라졌다.

iny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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