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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동행] "친정엄마 마음으로…구수한 한국 손맛 가르쳐요"

송고시간2019-12-2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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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생활개선회 신현숙씨, 20여년째 배움 나눔 '봉사 바이러스' 전파,

"봉사 통해 얻는 게 오히려 많아" 직접 만든 여성용품 케냐 지원 시작

(포천=연합뉴스) 최재훈 기자 = 무심한듯하면서도 능숙한 손놀림이 고추장과 마늘, 간장 등을 그릇에 넣고 쓱쓱 버무린다. 다문화 이주 여성들의 눈이 작은 움직임이라도 놓칠세라 열심히 손을 쫓는다. 30초도 안 되는 사이 먹음직스러운 양념장이 뚝딱 만들어진다.

다문화 여성들에게 전통음식에 대해 교육봉사 하는 신현숙씨(왼쪽 가운데)
다문화 여성들에게 전통음식에 대해 교육봉사 하는 신현숙씨(왼쪽 가운데)

오징어와 섞으니 맛 좋은 오징어 볶음이, 고기에 버무리니 맛집에서 파는 수준의 주물럭이 금세 완성된다. 요리를 맛본 이주 여성들은 어설픈 우리말로 연신 "맛있다"를 연발한다.

이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한 중년 여성. 포천 봉사계의 '대모'로 불리는 신현숙 포천 생활개선회 회장이다.

첫눈에 봐도 내공이 느껴지는 범상치 않은 기운, 작은 체구에서도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와 에너지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회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당당하고 강인하면서도 여성스럽고 어머니 같은 따뜻함을 간직한 사람"이라고 추켜세웠다.

화답이라도 하듯이 신 회장은 "오늘 배운 음식을 밥상에 올렸더니 남편이 너무 좋아한다는 감사 인사를 받을 때 제일 뿌듯하다"고 환하게 웃음 지었다.

그가 이끄는 포천 생활개선회는 농촌에 시집와 사는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전통 발효 음식과 장류 만드는 방식 등을 전수하고 있다.

낯선 나라에서 외롭게 생활하는 이주여성들의 정착을 돕고, 그들에게 우리 전통음식의 구수한 맛을 가르치겠다는 친정엄마의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다.

신 대표는 21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좋아하고 관심 있는 음식 분야에서 재능기부를 하며 농촌 여성들에게 활기를 불어 넣고 이들의 삶의 질과 지위를 높이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김장을 하는 신 회장과 생활개선회 회원들
김장을 하는 신 회장과 생활개선회 회원들

'손맛 전수'는 포천 생활개선회가 펼치는 여러 활동 중 일부에 불과하다. 사람을 좋아하고, '맞춤형 봉사'를 추구하는 그의 봉사 스펙트럼은 생각보다 넓다.

이주여성에게는 전통음식 조리법을 가르치고, 다른 농촌 여성이나 불우이웃에게는 천연염색 기술을 전수한다.

가을이 되면 김장을 해 형편이 어려운 홀몸 노인 등에게 배달하고, 이주여성 자녀 등을 대상으로 예절교육도 한다. 포천시나 경기도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힘을 보태기도 한다.

교육생한테는 배운 것을 이웃과 나누도록 알선해 지역 구석구석에 '봉사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신 회장의 '맞춤형 봉사'는 10여년 전 냉면집을 운영할 때부터 시작됐다.

손님들이 면을 얼마나 먹는지, 어떤 반찬은 좋아하는지 꼼꼼하게 눈여겨 체크한 뒤 다시 방문하면 기호에 맞는 맞춤형 식단을 차려냈다. 손님의 입장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는 기분이어서 식당은 늘 북적였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 하는 성격 이어서 그는 냉면집을 접은 뒤에는 발효식품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경기도나 포천시가 마련한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빼놓지 않고 찾아다니면서 맛있는 고추장, 된장, 장아찌 담그는 방법을 연구했다.

어느 정도 손맛이 붙을 무렵 그는 누군가를 위해 재능을 기부하는 것에 대해 고민했고, 그러다가 봉사에 뛰어들었다.

미소짓는 포천 생활개선회 대표 신현숙씨
미소짓는 포천 생활개선회 대표 신현숙씨

인터뷰 내내 봉사의 즐거움을 강조한 그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 자체로도 보람이 크지만, 다른 봉사자와의 유대도 덤으로 얻는 즐거움"이라고 예찬론을 펼쳤다.

그는 올해 경기도 산악등반대회장에서 수천 명의 참가자 식사를 준비하는 중식 봉사를 맡았다.

닷새 동안 진행된 행사였는데, 첫날 20여명에 불과하던 참여 회원 수가 점차 늘어나더니 마지막 날은 회원의 남편들까지 봉사대열에 참여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봉사 자체가 가슴 설레는 경험이기도 하지만, 좋은 일은 다른 사람에 그대로 전파되는 해피 바이러스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열악한 환경 속 여성의 삶에 관심이 많은 그의 손길은 최근 바다 건너 낯선 땅에까지 뻗치고 있다. 생리대가 없어 어려움을 겪는 케냐 여성들을 위해 생활개선회가 직접 천연 생리대를 만들어 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사업을 시작할 때도 그의 '맞춤형 본능'이 발휘됐다.

처음 보내기로 한 생리대는 편의성 면에서 그의 눈에 들지 않았다.

기왕 보낼 거면 현지에서 편하게 쓸 수 있는 제품이어야 한다고 마음먹은 그는 곧바로 서울 동대문시장으로 달려가 부직포 등을 샀다.

그리고는 사용하기 좋도록 표본 설계도를 직접 그려놓고 며칠 밤 천을 자르고 붙이면서 수백개의 생리대를 만들었다.

함께 참여했던 회원들조차 혀를 내두르게 한 '사건'이다

[신현숙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신현숙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케냐에서는 생리대가 부족해 여학생들이 1년에 약 60일 넘게 학교에 못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자칫 여성의 교육 기회 박탈로 이어진다는 생각에 생리대 지원 사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내년 목표는 교육 나눔을 위한 전문성 확보다.

바른 식생활 자격증과 천연 염색 관련 자격증을 따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을 베풂에 쓰고 싶다는 포부다.

신 회장은 "각 분야 재능기부에 대한 회원들의 뜨거운 열정이 우리의 무기"라며 "재능 기부가 열악한 농촌 여성들의 삶의 질 개선에 기여한다는 믿음으로 봉사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jhch79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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