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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동행] "500원 동전은 돼지밥"…17년째 이웃돕는 '풀빵 아줌마'

송고시간2020-01-1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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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중앙시장 앞 노점상 이문희씨…"소녀 가장 때 받은 도움 갚고파"

겨울 장사 뒤 60만원꼴 내놔…돈 보면 욕심 생길까 봐 저금통째 전달

(영동=연합뉴스) 변우열 기자 = "제가 무슨 대단한 일을 했다고 기자님이 여기까지 찾아오셨어요. 남들이 보면 별것도 아닌데 수선 떤다고 흉봐요"

17년째 이웃돕기 하는 '풀빵 아줌마'
17년째 이웃돕기 하는 '풀빵 아줌마'

(영동=연합뉴스) 변우열 기자 = 충북 영동군 영동읍 중앙시장 입구 노점에서 풀빵을 팔며 동전을 모아 17년째 이웃돕기를 한 이문희(58·영동군 양강면 묵정리) 씨. 2020.1.11

충북 영동군 영동읍 중앙시장 입구 노점에서 풀빵을 팔며 동전을 모아 17년째 이웃돕기를 해온 이문희(58·영동군 양강면 묵정리) 씨는 11일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한사코 거부했다.

사전 동의를 얻지 않고 불쑥 노점을 찾아간 기자에게 그는 "날도 추운데, 몸이 나 녹이고 가라"면서 갓구운 풀빵과 따뜻한 어묵 국물을 내밀었다.

마침 한 손님이 풀빵 5개를 사면서 2천500원을 건네자 지폐 2장을 앞치마 주머니에 넣고, 500원짜리 동전은 점포 한쪽에 있는 그릇에 따로 담았다.

"왜 500원짜리 동전을 모으냐"고 묻자 "집에 가서 돼지에게 줄 밥"이라며 빙그레 웃었다.

이 말을 시작으로 어렵게 대화가 이어지면서 그의 인생역정과 이웃돕기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이씨는 2003년부터 매년 12월 말 영동읍사무소나 양강면사무소에 동전이 가득 찬 돼지저금통을 기부했다.

손바닥만 한 노점에서 2개에 1천원 하는 풀빵을 팔면서 손님이 낸 500원짜리 동전을 매일 모은 것이다.

이웃돕기를 위해 모은 500원짜리 동전
이웃돕기를 위해 모은 500원짜리 동전

(영동=연합뉴스) 변우열 기자 = 충북 영동군 영동읍 중앙시장 입구에서 풀빵 노점을 하는 이문희(58·영동군 양강면 묵정리) 씨가 이웃돕기를 위해 모은 500원짜리 동전. 2020.1.11

저금통을 통째로 전달하는 탓에 본인도 정확한 기부액을 모른다. 대략 60만원 내외의 동전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동전 모으는 재미도 쏠쏠하다. 혹시 돈을 보면 욕심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아 저금통을 뜯지 않고 통째로 면사무소에 전달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는 장사가 시원치 않아 20만원을 별도로 보태 저금통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가 기탁한 돈은 저소득층에게 지원된다.

양강면사무소 관계자는 "이 여사가 10여년 전부터 동전이 든 저금통을 기탁해왔다"며 "기탁금은 충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가정형편이 어려운 지역의 저소득층에게 전달된다"고 말했다.

그가 '아름다운 기부'에 나선 것은 어린 시절 받았던 도움의 손길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남동생을 돌보는 소녀 가장 역할을 했다. 세끼를 모두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다. 당시 주위에서 준 라면, 봉지 쌀 등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그때 부자가 되면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으로 보은(報恩)하겠다는 결심했다"고 회상했다.

환하게 웃는 기부 천사 '풀빵 아줌마'
환하게 웃는 기부 천사 '풀빵 아줌마'

(영동=연합뉴스) 변우열 기자 = 충북 영동군 영동읍 중앙시장 입구 노점에서 풀빵을 팔며 동전을 모아 17년째 이웃돕기를 한 이문희(58·영동군 양강면 묵정리) 씨. 2020.1.11

서울이 고향인 그는 친구를 만나러 영동에 왔다가 농사를 짓는 남편과 인연을 맺어 결혼했다. 그러나 생활은 여전히 팍팍했다.

1남 2녀 자녀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1999년부터 농사일이 없는 10월부터 이듬해 5월 초까지 풀빵 장사를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는 2월 말까지만 장사를 하고 있다.

이씨는 "아이들을 가르치며 먹고 살기가 힘들었다. 풀빵 장사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주머니에 넣을 돈이 생겨 어릴 때 결심했던 이웃돕기를 하기로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몇 년 동안은 누구를 어떤 방법으로 도와야 할지 몰라 마트에서 직접 쌀과 라면을 구입해 혼자 사는 노인이나 조손 가정 등에 전달했다.

2003년부터는 동전을 모아 기탁했다.

"제 형편으로는 목돈을 마련해 누굴 돕는 것이 힘들잖아요. 그래서 기준을 정했어요. 장사하면서 손님이 500원짜리 동전을 내면 무조건 돼지저금통에 넣기로 했어요"

그는 이렇게 동전을 모은 돼지저금통을 익명으로 영동읍 사무소에 전달했다. 3∼4년이 지나면서 그의 존재를 알게 된 읍사무소의 직원이 한 방송국에 이런 사실을 제보해 이씨의 선행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의 따뜻한 마음이 큰 울림을 주면서 2008년에는 선행 시민으로 추천돼 서울 보신각에서 제야의 종을 타종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기부 천사 '풀빵 아줌마'가 만든 풀빵
기부 천사 '풀빵 아줌마'가 만든 풀빵

(영동=연합뉴스) 변우열 기자 = 충북 영동군 영동읍 중앙시장 입구 노점에서 풀빵을 팔며 동전을 모아 17년째 이웃돕기를 한 이문희(58·영동군 양강면 묵정리) 씨가 만든 풀빵. 2020.1.11

온종일 서서 풀빵을 만들어 팔고, 집으로 돌아가면 다리가 부을 정도로 힘들지만, 그는 눈이 오든 비가 오든 장사를 쉬지 않는다.

이씨가 이렇게 풀빵 장사를 거르지 않는 이유 역시 어려운 처지의 손님들 때문이다.

"가끔 2천∼3천원어치의 풀빵으로 한 끼를 때우러 오는 손님들이 있다"며 풀빵 장사는 이 손님들과의 약속이라고 생각해 궂은날에도 장사한다.

자식들이 모두 성장해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정 형편도 좋아졌지만, 여전히 풀빵 장사를 포기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이야기 중에 소주가 담긴 봉투를 들고 온 한 노인이 어묵을 주문하자 "몇 명이 같이 드실 거냐"고 물은 뒤 술잔으로 사용할 일회용 컵까지 챙겨주며 "국물이 뜨거우니 조심해서 드세요"라는 살뜰한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20년 넘게 장사를 하다 보니 척 보면 손님이 뭘 원하는지 알게 됐다. 저 어르신은 친구들과 소주 한잔하러 가시는 길"이라고 살짝 귀띔했다.

언제까지 풀빵 장사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 "살아오면서 돈이 있던 날보다 없었던 날이 더 많았지만, 희망을 잃은 적은 없다. 힘들다는 얘기보다는 희망을 주는 얘기로 이웃의 기를 살려주고 싶다"며 즉답을 피한 채 환하게 웃었다.

bw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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