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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동행] 몸에 밴 '헌혈 DNA'…피 한 방울로 시작한 나누는 삶

송고시간2020-01-1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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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1차례 헌혈한 이순만씨, 40년간 성인 60명분 혈액량 이웃과 나눠

헌혈의집 도우미 자처…의용소방대·연탄배달 가리지 않는 봉사왕

실천하는 헌혈왕 이순만씨
실천하는 헌혈왕 이순만씨

(춘천=연합뉴스) '헌혈 천사' 이순만(63)씨가 40년 동안 한해도 거르지 않고 헌혈하며 생명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사진은 이씨가 2005년 11월 3일 284번째 헌혈하는 모습(왼쪽)과 2019년 5월 2일 600번째 헌혈하는 모습(오른쪽). 2020.1.19

(춘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40년 동안 600차례 넘게 굵은 주삿바늘이 들락거린 팔뚝에는 제법 깊은 홈이 패 있었다.

베테랑 간호사도 영광의 흉터를 이리저리 뒤척이며 한참이나 바늘 꽂기를 망설였다. 거듭된 헌혈로 인해 얇디얇아진 혈관 찾는 게 좀처럼 쉽지 않아서다.

어렵게 바늘을 꽂은 팔뚝에서는 혈액이 나오지 않았으나 '헌혈 천사' 이순만(63)씨의 표정에는 아픔보다 아쉬움이 더 짙게 묻어 나왔다.

"혈관 찾기가 정말 힘들어요. 바늘을 잘 못 꽂을 때도 많은데, 싫은 내색 한 번 안 하시니 오히려 저희가 죄송하죠."

간호사가 미안해할 정도로 한참을 씨름한 끝에 찾아낸 혈관에서 조금씩 혈액이 나오기 시작하자 그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는 전국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실상부한 '헌혈 천사'다.

지난 40년간 헌혈 횟수가 무려 621회에 이른다.

지난해 5월 강원도에서는 처음으로 '600회 헌혈'이라는 대기록을 쓴 그지만, 남다른 헌혈 사랑은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헌혈 천사' 이순만씨
'헌혈 천사' 이순만씨

(춘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헌혈 천사' 이순만(63)씨가 강원 춘천시 헌혈의집 춘천명동센터에서 621번째 헌혈을 하고 있다. 2020.1.19

학창 시절 단체헌혈이 전부였던 그가 헌혈에 눈을 뜬 건 1980년 초다.

탄광촌에 근무할 당시 석탄 운반기계 보수작업을 하던 동료가 크게 다쳐 응급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O형 혈액이 절실히 필요했다.

급히 수혈하지 않으면 동료의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서 망설임 없이 혈액을 뽑아준 그는 이 일을 계기로 '한 사람의 헌혈로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천성이 부지런하고 베풀기를 좋아하는 그는 그 길로 무려 40년째 생명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1995년 성분헌혈 방식이 도입된 이후 한 달에 두차례씩 1년 꼬박 24회를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건설역군으로 이라크에 근무하던 1988년 한국인이 교통사고를 당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기꺼이 병원으로 달려가 피를 뽑기도 했다.

그는 꼬박꼬박 모은 헌혈증서를 백혈병 환자들에게 전달한다. 증서를 건넬 때마다 듣는 '고맙다'는 한마디가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집에다가 회사 간다고 거짓말하고 헌혈을 하러 갔어요. 그러다가 100회를 돌파했다는 소식이 신문에 나오고, 주변에서 칭찬도 하니까 가족들도 자랑스러워하더라고요."

'당신은 진정한 영웅입니다'
'당신은 진정한 영웅입니다'

(춘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헌혈 천사' 이순만(63)씨가 강원 춘천시 헌혈의집 춘천명동센터에서 621번째 헌혈을 하고 있다. 2020.1.19

꾸준한 헌혈만도 대단한데, 그는 주말 헌혈의집 춘천명동센터로 출근한다. 이곳에서 문을 열 때부터 닫을 때까지 하루 8∼10시간씩 꼬박 헌혈자 에스코트 봉사활동을 한다.

주말마다 헌혈의집 입구를 지키는 그를 알아보는 사람도 꽤 많아 안부를 묻거나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1992년에는 '피 한 방울이 세상을 사랑으로 채울 수 있다'는 뜻을 담은 '방울봉사회'를 조직, 회원들과 함께 정기적인 헌혈과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헌혈을 향한 그의 열정 덕분일까. 헌혈의집 춘천명동센터는 2018년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헌혈 기록으로 '으뜸 헌혈의집'에 뽑히기도 했다.

이씨는 헌혈 말고도 불우이웃 돕기, 의용소방대 20년 근무, 춘천연탄은행 창립 때부터 시작한 연탄배달 봉사활동, 장애인 대상 봉사활동 등 이웃을 돕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앞장선다.

600회 헌혈 '당신은 진정한 영웅입니다'
600회 헌혈 '당신은 진정한 영웅입니다'

강원지역 '헌혈 천사' 이순만(63·오른쪽)씨가 지난해 5월 2일 강원 춘천시 헌혈의집 춘천명동센터에서 600번째 헌혈을 앞두고 강원혈액원 방울봉사회로부터 행운의 열쇠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헌혈을 위해 술과 담배는 입에 대지도 않을 정도로 건강관리에도 신경 쓴다.

술친구한테서 '안주 킬러'로 불리는 것은 당연지사. 사회초년생 시절에는 상사가 강제로 술을 마시게 하는 일이 잦아 남모르게 뱉거나 마시는 척만 하다가 버리느라 진땀 뺀 적도 많다..

금주·금연의 이면에는 사업 실패 후 술에 의존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는 '절대 술을 마시지 말아야겠다'라고 다짐한 아픈 기억도 있다.

그가 40년간 다른 사람에게 나눈 혈액은 30만㎖를 훌쩍 넘는다.

성인 남성 혈액량이 5∼6ℓ인 점을 고려하면 60명 혈액을 합친 양이다.

헌혈을 자원봉사시간으로 계산하면 1회당 4시간씩 약 2천500시간이나 된다.

연탄배달과 헌혈자 에스코트 봉사 등을 합하면 모두 1만4천여 시간에 이른다.

"헌혈인이 더 많아지길…"
"헌혈인이 더 많아지길…"

(춘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헌혈 천사' 이순만(63)씨가 강원 춘천시 헌혈의집 춘천명동센터에서 헌혈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2020.1.19

누군가는 진학과 취업 등을 위해 의무적으로 하는 봉사활동이 그에게는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오히려 봉사하는 삶 속에서 생활의 활력과 즐거움을 찾는다.

"헌혈 가능한 69세까지는 지금처럼 살 겁니다. 겨울이 되면 헌혈이 급감하는 만큼, 더 많은 분들이 헌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좋겠습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헌혈과 봉사활동을 계속하겠다고 다짐하는 그의 따듯한 목소리에서는 영하의 추위를 녹이고도 남을 만한 온기가 느껴졌다.

conany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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