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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자가 본 영화 '남산의 부장들'

송고시간2020-01-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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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식 교수 "80%는 팩트, 20%는 영화적 허구…존중한다"

"원고지 한칸 한칸이 낭떠러지, 송사 피하려 팩트 위주로 집필"

남산의 부장들' 쓴 김충식 교수
남산의 부장들' 쓴 김충식 교수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원작을 쓴 김충식 가천대 교수가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서 열린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1.24 scape@yna.co.kr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해석보다는 군더더기 없는 사실 기록을, 미사여구보다는 증언과 자료의 리얼리티를 중시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원작자 김충식 가천대 교수가 서문에 쓴 말이다.

영화는 김 교수가 기자 시절인 1990년 8월부터 2년 2개월 동안 동아일보에 연재한 기획 기사를 한데 묶은 동명 논픽션 베스트셀러를 밑그림으로 했다. 박정희 정권 18년 동안 10명의 중앙정보부장이 벌인 정치공작과 비화 등을 다룬다.

원작은 880쪽에 달하지만, 영화는 10.26 사건이 벌어지기 전 40일간을 뽑아 스크린에 옮겼다. 8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를 중심으로 4대 중앙정보부장 김형욱과 차지철 경호실장 이야기가 씨줄, 날줄로 엮여있다.

최근 광화문 연합뉴스 사옥에서 만난 김 교수는 "영화의 80%는 팩트지만, 20%는 허구"라면서 "영화적 상상력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그는 원작 집필 당시 "원고지 한 칸 한 칸이 낭떠러지였다"면서 "송사를 피하기 위해 최대한 부사와 형용사를 쓰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남산의 부장들' 쓴 김충식 교수
'남산의 부장들' 쓴 김충식 교수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원작을 쓴 김충식 가천대 교수가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서 열린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1.24 scape@yna.co.kr

-- 영화를 본 소감은.

▲ 두 번 봤다. 나는 영화 마니아는 아니지만, 완성도 있게 잘 찍은 것 같더라. 배우들 연기가 좋았다.

-- 우민호 감독과는 어떻게 만났나.

▲ 우 감독이 책을 읽고 찾아와 영화를 찍고 싶다고 했다. 말론 브랜도가 주연한 '대부'(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같은 영화를 찍고 싶다고 하더라. '대부'는 폭력과 인간관계, 증오와 애정 등 인간 본질에 숨겨진 것을 잘 형상화한 영화다. 중앙정보부 역시 미행, 도청, 납치, 밀수, 암살을 자행했다. '대부'의 5대 요소를 국가 권력이 행한 것이다. 그래서 '(영화가) 되겠다' 싶었다. 2016년 판권 계약을 했다.

-- 원작과 차이점은.

▲ 제가 보기에 80%는 원작의 정신과 뼈대를 그대로 유지한 것 같다. 그 80%는 역사적 팩트다. 20%는 영화적 각색이다. 예컨대, 영화에선 김형욱과 김재규가 친구로 나오는데, 사실 연배차가 있다. 김형욱은 김종필과 육사 동기생이다. 김재규는 박정희 전 대통령보다 나이는 밑이지만, 군대 동기다. 다큐멘터리를 쓴 저로서는 역사 왜곡 시비가 일까 걱정했는데, 우 감독에 물어보니 영화적으로 두 시간 동안 몰입도를 높이려면 형식을 파괴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

김재규가 빗속에서 궁정동 안가를 월담해 도청하는 것 역시 허구다. 아울러 김재규가 5·16쿠데타 당시 한강 다리를 건넌 것으로 돼 있는데, 김재규는 한강 다리를 건너지 않았다. 김재규는 박정희의 군대 동기이자 동향이라는 인연 때문에 편입됐지, 혁명 주체는 아니었다. 극 중 로비스트로 나오는 '데보라 심'(김소진) 역시 영화적으로 설정된 인물이다. 영화임을 고려하면 20% 정도 허구는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큐가 영화의 영역에서 함부로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는 없지 않나.

영화 '남산의 부장들'
영화 '남산의 부장들'

[쇼박스 제공]

-- 김재규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데.

▲ 김재규는 나름대로 정의를 신봉한 사람이다. 그 주변을 취재해 봐도 돈이나 사생활은 비교적 깨끗했다. 결이 어긋나면 못 참는 인생을 살았다. 김재규 최후 진술을 보면 유신 체제에 대해 많은 반감을 갖고 있었다. 1979년 10.26 상황을 보면 한미 관계는 그 전부터 어긋나고 있었다. 박정희가 3선 개헌을 하고 유신체제까지 하면서 미국이 등을 돌리는 가운데 1976년 8대 정보부장이 된 김재규는 미국 대사와 언론 등을 통해 그런 상황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었다. 두 번째는 야당이 투쟁에 역학적인 가속도를 얻고 있었다. 국민도 장기 독재와 긴급조치에 염증을 느꼈다.

즉, 유신체제를 종식해야 한다는 미국의 압력 속에 야당의 투쟁이 힘을 받고,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커지는 가운데 박정희는 차지철 같은 사람을 통해 흔들리는 민심을 장악하려고 했다. 미국과 야당과 민중의 소리를 모두 듣던 김재규는 결국 "대국적으로 정치를 해 달라"고 호소하게 된다.

이는 저널리스트로서 재판에 관여한 변호인들, 당시 정치 상황을 봤던 김종필 등에게 끊임없이 '왜 총을 쏘았는가?' 질문한 결과에 대한 그분들의 결론이지, 나의 가설은 아니다. 당시 대법원 판결문을 보면 10.26 사건은 우발적이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계획적이고, 계획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우발적이라고 적혀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영화 '남산의 부장들'

[쇼박스 제공]

-- 배우들에게 어떤 조언을 했나.

▲ 촬영 전 고사를 지낼 때 이병헌에게 미국 요소, 차지철 요소, 야당의 자신감, 민심 이반 등 당시 상황과 그 속에서 나라 안팎을 들여다본 사람으로서 고뇌, 자기 나름의 의협심을 갖고 사는 김재규 입장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얘기했다. 곽도원에겐 김형욱이 가학적인 성향이 있어서 뭔가 힘을 행사하고 휘두르지 않으면 잠이 안 오는 사람이라고 전했다. 이희준이 연기한 차지철은 JP 표현을 빌리면 '특이한 얼간이'다. 성경책을 늘 끼고 다녔는데, 그에 비하면 식견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는 육사 시험에 떨어져 육사에 대한 지독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공수단 대위로서 5.16에 가담해 혁명 주체가 된 뒤 경호실장에 올라 군대를 자기 밑에 놓고 한풀이를 했다.

-- 중앙정보부에 천착한 이유는

▲ 1978년 동아일보에 입사했을 때 편집국 소파에 중앙정보부 파견관이 앉아 보도를 통제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 정치부 기자를 5년(1985∼90년) 하면서 중정 출신 국회의원들을 많이 만났다. 통틀어 30명 정도 됐다. 그분들은 국가기밀 준수 의무에서 상당히 자유로웠기에 평소 물어보고, 자료를 모으면서 나름대로 전체 지도가 축적됐다. 취재원만 200~300명 정도 됐다. 1988년부터 '남산의 부장들', KCIA라는 이름으로 기사를 쓰자고 2년 동안 줄기차게 회사에 얘기했고, 설득 끝에 90년에 채택됐다. 처음부터 쟁기로 깊이 파헤칠 생각은 아니었다. 이야기하다 보니 점점 깊어졌다.

'남산의 부장들' 쓴 김충식 교수
'남산의 부장들' 쓴 김충식 교수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원작을 쓴 김충식 가천대 교수가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서 열린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1.24 scape@yna.co.kr

-- 중앙정보부와 개인적인 인연이 있나.

▲ 1985년 외교부 출입할 때 중앙정보부에 잡혀가서 3박 4일간 고문을 당했다. 당시 중국 군용기 한 대가 전북 이리의 논바닥에 불시착했다. 그때 탑승자 가운데 한명은 망명을 희망했다. 이들에 대한 신병처리 문제가 화두였는데, 당시 외교부 당국자로부터 신병처리 방침을 듣고 단독 기사를 썼다. 그러자 중앙정보부에서 편집국장, 정치부장, 나를 잡아가서 3박 4일 동안 초주검이 되도록 팼다. 나한테는 취재원을 대라고 했고, 정치부장과 편집국장은 국가 시책에 반한 보도를 했다며 팼다. 당시 동아일보가 관련 기사를 쓰면서 우리나라 서해 방공망이 뚫렸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린 것이 문제가 됐다. 벌거벗긴 상태에서 피투성이가 되도록 두들겨 맞았다. 그들은 인격을 파탄 내고 짐승 같은 자각을 갖도록 하기 위해 내가 신던 구두를 입에 물린 뒤 떨어뜨릴 때마다 잠도 안 재우고 때렸다. 그곳에서 밥통만 한 크기의 '안티푸라민'(소염진통제)을 처음 봤다. 때리고 약을 발라주더라. 법치주의 국가에서 백주에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특종을 했다는 이유로 두들겨 맞는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이런 시스템에 대해 한번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 건조한 문체로 사실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 본래 신문사에선 형용사, 부사를 잘 쓰지 않는다. 드라이한 문장 속에서 팩트로 울려야 한다는 게 기본 원칙이다. 송사를 피하고 연재가 중단되지 않게 최대한 팩트 위주로 간명하게 쓰는 것이 자구책이기도 했다. 원고지 한 칸 한 칸이 낭떠러지였다. 집필하는 동안 구속 위기에 처할 뻔한 적도 있었다. 이 책은 역사의 '백미러(뒷거울)' 같은 것이다. 각자 스펙트럼에 따라 박정희 시대의 공과를 인정하고, 역사의 거울을 제대로 성찰할 때 제대로 된 미래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fusion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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