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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탁의 탁견] 사스의 추억 2: '시진핑 방한'의 외교학

송고시간2020-02-17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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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다"

(서울=연합뉴스) 이우탁 기자 = 2003년 7월 중국 최대도시 상하이(上海)를 상징하는 둥팡밍주(東方明珠)에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을 붉게 물들인 `붉은 악마' 대형 사진이 내걸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시 상하이시 관계자들에게 물었더니 노무현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7월 7일)을 환영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중국은 그해 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최악의 위기 상황을 겪었습니다.

중국에 체류하던 외국인들이 대거 떠나는 장면이 연일 보도됐습니다. 물론 봄이 지나고 난 뒤 사스 사태는 어느 정도 진정됐습니다. 그렇지만 국제적으로 중국의 '불안한 이미지'는 여전했습니다.

중국 시진핑 국가 주석 방한 (PG)
중국 시진핑 국가 주석 방한 (PG)

[장현경 제작] 사진합성·일러스트

이런 상황에서 노 대통령은 7월 방중을 강행했습니다. 중국은 2008년 하계올림픽 성공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사스 파문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중국을 찾은 외국 정상인 노 대통령의 방중은 '안전한 중국'을 세계에 알린 효과가 컸습니다.

그런 고마움을 담아 둥팡밍주에 한국을 상징하는 대형 걸개그림이 걸린 겁니다. 그때 상하이에서 만난 중국인들은 "이렇게 어려울 때 중국을 도와준 한국을 잊지 않겠다"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실제로 노 대통령의 방중 이후 몇 년 동안 한중관계는 최고 밀월기를 보냈습니다. 한중 관계는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됐습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서 한국이 조기에 정상화의 길로 접어든 배경에는 '중국 머니'의 힘이 컸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입니다.

요즘 얘기로 돌아와 볼까요.

최근 외교가에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의 한국과 일본 방문 문제가 관심사가 됐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갈수록 악화하는 상황에서 시 주석이 중국을 비우고 해외로 나갈 수 있겠느냐는 시각이 깔려있습니다.

17년 전 사스 사태 때와 비슷하게 다시 중국을 떠나는 외국인 행렬은 중국의 고립감을 체감적으로 전해줍니다. 인접국들은 국경을 폐쇄하고 각국이 중국 여행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외국인과 외국기업은 그냥 나가는 게 아닙니다. 그들이 갖고 있던 자산을 외화로 바꿔 나가는 겁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PG)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PG)

[장현경 제작] 일러스트

코로나19 사태는 봄을 지나 한동안 지속할 대형 악재입니다. 중국 최대 연례 정치 행사인 3월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일정이 연기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쩌면 중국 정부 스스로 시 주석 해외 일정을 연기하거나 취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다른 나라, 특히 방문 대상국에서 먼저 얘기하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한국 정부도 이를 잘 아는 눈치입니다.

뮌헨 안보 회의에 참석 중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15일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한 뒤 시 주석의 방한에 대해 "양국이 이전에 합의한 대로 상반기 중에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일 청와대에서 열린 주한 대사 신임장 제정식에서 싱하이밍 신임 주한 중국대사에게 "한국 정부는 중국 정부가 하루빨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면서 "가까운 이웃 사이에 어려움을 돕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웃 나라, 중국이 힘들어할 때 진심 어린 지원과 소통을 하는 것은 미래를 위한 전략적 투자입니다. 싱하이밍 중국 대사가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라고 (문 대통령이) 말씀하신 것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사의를 표한 것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집권 8년 차를 맞이한 시진핑 주석에게 특히 운명적인 시련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 초기 대응에 실패한 것이라는 중국 민중의 비판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해외에서도 시 주석의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시 주석의 정치적 미래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겁니다.

외교는 신중해야 합니다. 특히 시진핑 주석의 위상과 역할을 잘 헤아려야 합니다. 2003년 후진타오 주석과 지금의 시 주석 위상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중국 공산당은 2017년 10월 19차 당대회를 열어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넣었습니다. 다음 해 3월에는 헌법을 바꿔 '주석은 3회 연임할 수 없다'는 조항도 삭제했습니다. 오늘날의 중국은 '시황제'로 불리는 그를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남과 북을 떠나 한반도를 휘감는 중국의 영향력은 엄청납니다. 교착상황에 빠진 미국과 북한 간 북핵 협상이나 남북 협력사업, 미·중 갈등의 고조 등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 현안을 거론하지 않아도 알 것입니다. 중국 시장에 목매달고 있는 한국 기업들의 절박한 사정도 생각해야 합니다.

한중 외교(CG)
한중 외교(CG)

[연합뉴스TV 제공]

중국에 저자세 외교를 하라는 게 아닙니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해 한국의 전략적 국익을 극대화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 방중이 성사된 이면에는 김하중 주중대사의 역할이 주효했습니다. 노 대통령의 당시 방중을 놓고 한국 내부에서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겁니다. 특히 대통령의 안전을 고민해야 하는 보좌진들의 고민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김 대사는 노 대통령에게 '6월 말이면 사스가 종식될 테니 예정대로 7월 초 방중을 하자'는 진언을 했다고 합니다. 중국의 발전 흐름을 정확히 읽으면서, 중국인들과 마음을 열고 소통한 김 대사의 존재감이 제대로 드러났던 일화입니다. 아직 최장수 주중대사(2001년 10월-2008년 3월)로 남아있는 김 대사는 '하나님의 대사'로 유명합니다. 1995년부터 중국인 지인들을 위해 기도했다고 합니다. 탕자쉬안(唐家璇)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비롯해 외교부장, 공산당 대외연락부장 등 중국 현직 외교라인과는 막역한 사이였습니다

지금 외교 현장에 '제2의 김하중'이 있을까요. 어쨌거나 내공이 깊은 전문가들, 특히 외교관들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때입니다.

(이글은 프리미엄 북한뉴스레터 '한반도&' 에디터 칼럼입니다. 구독을 원하시면 '이메일 신청'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53679 해주세요)

lw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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