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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포착] 세월 지나도 아픔 여전한 대구 지하철 화재

송고시간2020-02-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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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대응 미흡·상황 오판·늑장 대처 결합한 대표적 인재(人災)

유령 같은 지하철 객차
유령 같은 지하철 객차

2003년 2월 19일 새벽 대구지하철 화재로 만신창이가 된 전동차가 월배차량기지로 진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17년 전인 2003년 2월 18일 대구에서는 잊지 못할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검게 타고 녹아내린 전동차 내외부 참혹한 모습이 아직도 많은 이의 머릿속에 생생할 것 같다. 바로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다.

오전 9시 53분께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승강장에 정차한 1079호 열차 내부에서 50대 남자가 고의로 불을 냈다. 불은 반대편 승강장에 진입한 1080호 열차에 옮겨붙었고, 두 전동차는 물론 역사 전체가 이내 아수라장이 됐다. 결과는 참혹했다. 192명이 숨지고 151명이 부상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인명피해가 컸던 철도 사고이자 세계 최악의 지하철 사고로 오명을 남겼다.

연합뉴스가 2월 19일 새벽 1시 40분에 발행한 사진 제목은 '유령 같은 지하철 객차'. 사진에는 "18일 오전 발생한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로 만신창이가 된 지하철 객차가 음산한 모습으로 19일 오전 대구지하철 월배차량기지로 들어오고 있다."란 설명이 붙어 있다.

차량기지로 진입하는 객차 외관이 공포 영화 한 장면처럼 괴기스럽다. 까맣게 타고 깨지고 녹아내린 객차에서는 처참했던 당시 상황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 순간을 포착한 연합뉴스 성연재 기자에게 당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성 기자는 서울 본사 사무실에서 CNN 속보를 통해 화재 소식을 접했다고 한다. AP 사진기자가 바로 대구로 향하는 것을 보고 큰 사건일 것이란 느낌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고가 엄청나게 커졌다. 얼마 뒤 대구로 내려가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사고 취재는 대부분 현장을 포착하기 힘들기 때문에 사고 장면을 최대한 빨리 수집하는 게 중요하죠. 현장에 도착했더니 지방지들이 이미 선점을 했더라고요. 사고 전동차 사진을 확보하는 게 낫겠다 싶어 기지창으로 향했죠."

자정이 넘은 시간, 월배차량기지로 사고 차량이 들어왔다. 관계자들이 예민한 상태여서 플래시를 터뜨려가며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다. 플래시 없이 저속으로 셔터를 눌렀다. 유령 같은 객차를 담은 사진은 이렇게 나왔다.

방화범은 당시 56세 지적장애 남성이었다. 처지를 비관해 객차 내에서 휘발유에 불을 붙였는데 화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며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그는 무기징역 형을 선고받고 진주교도소에서 복역하다 이듬해 8월 지병으로 사망했다.

사고는 초기대응 미흡, 상황 오판, 늑장 대처, 근무 태만 등이 결합한 인재(人災)였다. 1080호 기관사가 전동차 출입문 및 시동 제어 장치인 '마스콘키'를 뽑고 대피하는 바람에 아직 승객이 남아 있던 객차의 출입문이 잠겨버렸고, 열차 안전과 운행을 파악하는 종합사령팀은 불이 난 것을 알고도 1080호 열차의 역 진입을 허락했다. 승객 안전은 제쳐놓고 자신들만 대피한 기관사의 모습은 세월호 참사 당시 선장의 모습과도 중첩된다.

참사 후 전국 지하철 객차 내장재는 모두 방염처리 됐다. 또 전동차 출입문 열림 장치, 통신 장치, 객차 내·외부를 살펴볼 수 있는 폐쇄회로 장치 등이 강화됐다.

올해는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17주기다. 지난 12일 중앙로역 '기억공간'에는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 추모의 벽이 세워졌다.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여서 전동차가 괴기스럽고 흉측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사고일이 공교롭게 제 생일이었는데 특히 고향에서 일어난 사고여서 심정적으로 힘들었고 안타까웠습니다. 기자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중 하나입니다."

dkl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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