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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액티브] '돼지쌀슈퍼' 동네 주민들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송고시간2020-02-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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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촬영지였던 아현 1구역 모습
'기생충' 촬영지였던 아현 1구역 모습

[촬영 이건주·정윤경]

(서울=연합뉴스) 조성미 기자 이건주 정윤경 인턴기자 = 지난 18일 오후에 찾아간 서울 마포구 아현동 언덕배기 마을은 외지인으로 북적였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관왕을 휩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촬영지인 이 마을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동영상을 촬영하는 유튜버, 사진기를 든 대학생, 취재 나온 언론사 관계자 등 직업은 다양했지만 가파른 계단, 미로처럼 얽힌 골목, 기울어 가는 집 등 영화에서 빈부격차를 보여주는 데 활용된 장소가 주된 관심사로 보였다.

영화 속 '기택(송강호 역)네' 가족이 살고 있지는 않았지만 20일까지 사흘간 아현동을 둘러보며 아현동 고지대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 주민들로부터 영화와 비슷한 듯 다른 이야기를 들어봤다.

◇ '기택네 집'이 과장이 아닌 열악한 주거환경

영화 촬영지 근처 외 동네는 조용했다. 날이 추워서인지 돌아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집 앞을 산책하는 노인들이 간간이 보였다. 양손에 장바구니를 든 주민이 수행하듯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갔다.

골목길을 돌아다니니 한 주민이 "돼지 쌀 슈퍼 찾아왔느냐"며 "저 밑으로 내려가라"고 했다. 행여나 주민들을 구경하러 온 것처럼 보일까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주민들은 이내 경계를 풀고 정답게 맞아줬다.

아현동의 한 계단에서 사진 촬영 중인 시민들
아현동의 한 계단에서 사진 촬영 중인 시민들

[촬영 이건주]

경사진 길을 오르내리다 잠시 계단에 앉아 쉬고 있을 때 산책하고 돌아오는 이모(80) 할아버지를 만났다. 북한에서 태어나 중국에 거주하다가 한국으로 와 혼자 산 지 15년 됐다는 할아버지는 마포구를 전전하며 셋방살이를 한다고 했다.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로 5년 전 서울주택공사의 도움을 받아 아현동에 작은 전세방을 구했다.

"혼자 이렇게 돼지우리 같은 곳에 살아."

인턴기자를 집안으로 초대한 할아버지는 머쓱하게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보일러가 제대로 작동해 방 안에는 따스한 기운이 맴돌았다. 영화 속 '박 사장'(이선균 역)이 말하는 '냄새' 따위는 없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할아버지는 대답했다.

"나 같은 늙은이가 불편한 거는 다 똑같지. 골목이랑 계단이 너무 가팔라서 어딜 다니기가 힘들어. 또 콜레란가 코로나(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인가 때문에 요즘은 어디 돌아다니지도 않아. 그냥 요 앞에 왔다 갔다 하는 거지."

5년 전 장마로 고생한 일을 떠올릴 때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7월에 비가 많이 왔는데 벽지가 물에 흠뻑 젖어 버린 거야. 곰팡이도 새까맣게 피고. 벽지를 뜯어보니까 애들 오줌 싸듯이 빗물이 벽에서 바닥으로 줄줄 떨어지더라고."

반지하가 아닌 1층이지만, 가파른 계단이 집 옆에 있다 보니 폭우가 내리칠 땐 계단을 타고 쏟아지는 빗물이 집 벽으로 침투했다.

"집주인은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데 참다 참다 전화해보니까 철물점에서 산 본드를 가지고 와서 건물 바깥 벽돌 사이사이에만 바르고 그냥 가더라고." 할아버지는 집안 벽지가 썩어가는 냄새를 꼬박 3일간 견뎌야 했다.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벽지 도배를 새로 안 해주면 전셋돈을 다 빼고 나가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집주인은 그제야 도배를 새로 해줬다. "이런 데서는 입이 세지 않으면 안 돼." 할아버지는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이씨 할아버지 댁 주방 창문. 외풍을 막기 위해 환풍기를 막아놨다.
이씨 할아버지 댁 주방 창문. 외풍을 막기 위해 환풍기를 막아놨다.

[촬영 정윤경]

"근데 요즘 곰팡이가 다시 피려고 해. 볕도 잘 안 들어와. 1년에 한두 달 정도만 제대로 들어오지."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보니 하얀 벽지에 까맣게 핀 곰팡이가 눈에 들어왔다.

부엌 옆 환풍구는 종이로 꽉 막혀 있었다. 창문 앞에는 아크릴판이 붙어있었다.

할아버지가 이유를 설명했다.

"저런 데를 막아놓지 않으면 바람이 계속 들어와서 안 돼."

공덕동 주민센터에서 만난 선희정 사회복지사는 "아현동 일대는 주거환경이 매우 열악하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선 복지사는 "정화조 뚜껑이 현관 바로 앞에 있는 집도 있다"며 "비가 오면 집이 낡아 천장과 벽에서 물이 새는 집도 있고, 집 안과 밖 차단이 허술하다 보니 쥐가 들어오고 가구 틈새에 쥐똥 같은 것이 발견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이씨 할아버지와 복지사의 말이 아니어도 아현동 일대 주거환경이 열악한 것은 금방 눈에 들어왔다. 골목 곳곳에는 쓰레기가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었다. '사람 사는 집 문 앞이니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란 팻말이 붙은 집도 보였다.

담배꽁초 경고문도 남달랐다. '불이 나면 소방차 진입이 빨리 안 된다'는 이유와 함께 '모든 걸 한순간에 잃어버릴 수 있다'는 엄중한 경고문이 적혀 있었다. 한 골목은 성인 두세 명이 지나가기에도 좁았다. 고지대다 보니 계단으로 주거지가 연결된 것도 소방대 진입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었다.

담배꽁초 경고문
담배꽁초 경고문

[촬영 이건주]

◇ 재개발 앞둔 다른 시선들…환영과 아쉬움

이 동네 주위는 새로 지어진 고층 아파트가 둘러싸고 있었다.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습이 아파트에 포위돼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동네는 '아현동 재개발 1구역'이라 불린다. 1구역을 둘러싼 주변 동네는 이미 다 재개발이 끝나 아현 뉴타운이라고 불리는 아파트촌이 형성됐다. 이 지역만 재개발 추진이 20년째 지지부진한 상황.

재개발 진척은 더디지만 언젠가는 재개발이 될 거라는 생각에 집수리나 환경 정비 같은 주거환경 개선이 제때 이뤄지지 않는다. 세입자 등 주민들은 불편을 감수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고 했다.

'기생충' 열풍으로 촬영지였던 이곳에 관심이 집중되고 서울시와 마포구가 탐방 코스를 개발하겠다고 나서면서 재개발이 미뤄지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들렸다.

부동산 중개인들은 '기자라면 지긋지긋하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동네에 좀 안 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뉴스를 내고 하니 재개발되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하는 중개인도 있었다.

주민 가운데서도 재개발을 적극 지지하는 층은 영화 열풍으로 쏟아진 관심을 부담스러워했다.

아현동에 10년째 산 한 주민은 "(골목이 좁아) 주차 문제가 시급하고, 건물이 노후화돼서 집에 물이 들어오고 겨울엔 단열도 안 된다. 빨리 재개발됐으면 좋겠다"며 울상을 지었다.

그러나 재개발되면 쫓겨날 위기에 처하는 세입자는 물론 고가의 신축 아파트에 입주할 만큼 자산이 풍족하지 못한 집 주인들은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뺏긴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30년째 이곳에 거주한 장모(82) 할머니는 "여기 살기 어려워. 빨리 재개발이 되어야 해"라면서도 "나는 돈이 없으니까 아파트는 못 들어가. 이놈(집) 팔아서 어디 다른 데 가서 세나 얻어 살아야지 뭐"라고 체념한 듯 말했다.

집주인 김모(68)씨도 "여기서 있고 싶긴 하지만 돈이 없으니 나가야지.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어요"라고 했다.

이 지역 부동산 중개사는 "재개발 후 지어진 아파트에 다시 들어오기 위해서는 평균 3억∼4억원의 추가 분담금을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현 1구역 한 부동산에 붙은 재개발 관련 공지
아현 1구역 한 부동산에 붙은 재개발 관련 공지

[촬영 정윤경]

집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세입자들에게 재개발은 달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조건에 맞아 임대아파트 입주자로 선정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또다시 집을 옮겨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기 때문이다. 임대아파트 입주가 결정돼도 추가로 내야 할 돈을 마련하지 못해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16년째 이곳에 거주한다는 세입자 할머니는 "재개발되면 어디로 갈지는 몰라요. 갈 데가 없지 사실. 내 집도 아니고 세 들어서 사는 건데… 아이고 모르겠어요, 어떻게 될는지"라고 포기한 듯이 말했다.

이씨 할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집안 곳곳을 보여주던 할아버지는 재개발 얘기가 나오자 멋쩍게 웃었다.

"재개발되면 임대 아파트에 들어가려는 사람이 많아서 내가 포함될지 모르겠어. 재개발되면 쫓겨나는 거고, 안 되면 사는 데까지 살다가 죽는 거고. 안되는 게 나한테는 좋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 남은경 국장은 "재개발 지역은 보통 세입자 가구가 60%가 넘는데 법으로 정한 임대 주택의 비율은 10∼15%에 그친다"며 "이곳에 살던 세입자가 재개발된 아파트에 다시 들어가게 돼도 원래 가진 경제적인 여건에 비하면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재개발이 이뤄질 경우 아현 1구역 세입자가 당면할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설명이다.

또다시 계단과 골목을 거쳐 충정로역 6번 출구로 내려왔다. 시끌벅적한 도로변에서 아현 1구역으로 향하는 가파른 골목길을 올려다봤다. 외딴 섬처럼 조용한 곳. 각자의 욕망은 달랐고, 계획도 달랐다. 그 안에는 단순히 기생충 촬영지라고만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하게 얽힌 개인들의 삶이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cs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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