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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의 글로벌시대] 한·몽 수교 30년…교류 역사 800년

송고시간2020-03-25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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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15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나담축제에서 몽골 전통 공연단이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에 참가한 각국 정상들 앞에서 공연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6년 7월 15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나담축제에서 몽골 전통 공연단이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에 참가한 각국 정상들 앞에서 공연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1990년 3월 26일 오후 이기주 외무부 제2차관보는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욘돈 몽골 외무부 차관과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의정서'에 서명했다. 공산권 국가 가운데서는 헝가리·폴란드·유고슬라비아·체코슬로바키아·불가리아에 이어 6번째였고 동유럽을 제외하면 처음이었다.

한국과 몽골의 인연은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록 몽골군의 침공이라는 불행한 역사로 시작했지만 100여 년간 두 나라는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고려는 원나라의 부마국(사위 나라)이 돼 결혼이주여성인 원나라 공주와 고려 왕 사이에서 태어난 다문화가정 왕자가 잇따라 왕위를 계승했다. 원나라 황실에 바쳐진 고려 공녀(貢女)가 황제의 총애를 받아 황후가 되고 그 아들이 황제로 등극하는 일도 있었다.

기황후는 고려 공녀 출신으로 원나라 황제 혜종의 정비가 됐고 아들도 북원의 초대 황제 소종으로 등극했다. 2013∼2014년 방송된 TV드라마 '기황후' 포스터. [MBC 제공]

기황후는 고려 공녀 출신으로 원나라 황제 혜종의 정비가 됐고 아들도 북원의 초대 황제 소종으로 등극했다. 2013∼2014년 방송된 TV드라마 '기황후' 포스터. [MBC 제공]

양국 간에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하다 보니 문화와 풍습에도 서로 많은 영향을 미쳤다. 고려에는 왕실과 귀족 등을 중심으로 이른바 몽골풍(蒙古風)이 유행했고 민간에까지 파급됐다. 전통혼례 때 신부가 머리에 쓰는 족두리와 뺨에 찍는 연지, 만두·설렁탕·소주 등의 음식, 왕과 왕비를 일컫는 '마마'나 '장사치'처럼 직업을 뜻하는 '치' 등의 어휘에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반대로 고려판 한류(韓流) 격인 고려양(高麗樣)도 있었다. 당시 고려가 원나라의 속국이었지만 수많은 고려 공녀와 환관이 끌려가 원나라 상류사회에 문물과 풍속을 전파한 데다 문화적으로도 고려가 원나라보다 앞서 고려양의 인기는 매우 높았다. 한복 특유의 풍성한 치마와 짧은 저고리, 약과 등의 고려병(高麗餠), 시루에 떡을 찌는 것, 상추에 쌈을 싸서 먹는 것 등이 퍼져 나갔고 청자·나전칠기·먹·종이 등의 수출도 활발했다.

2011년 경기도 김포시 걸포중앙공원에서 열린 제14회 김포세계인큰잔치에서 한국식 전통혼례를 치른 몽골인 부부. 신부가 머리에 쓴 족두리와 볼에 찍은 연지는 원나라에서 고려로 전해진 몽골 풍습이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1년 경기도 김포시 걸포중앙공원에서 열린 제14회 김포세계인큰잔치에서 한국식 전통혼례를 치른 몽골인 부부. 신부가 머리에 쓴 족두리와 볼에 찍은 연지는 원나라에서 고려로 전해진 몽골 풍습이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몽골족이 명나라에 밀려 북방 초원으로 쫓겨난 뒤에는 우리나라와의 관계가 끊겼다. 몽골은 17세기 청나라에 복속됐다가 1911년 신해혁명을 계기로 독립투쟁에 나서 자치권을 얻었다. 1920년 중국에 다시 자치권을 빼앗겼으나 소비에트 적군(赤軍)의 도움으로 1924년 완전한 독립을 쟁취해 소련에 이어 두 번째 공산주의 국가가 됐다.

일제강점기에 몽골은 독립운동가이자 의사 이태준을 매개로 한국과 다시 인연을 맺는다. 1883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이태준은 1911년 연세대 의대 전신인 세브란스의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중국으로 망명했다. 난징(南京) 기독회의원에서 일하던 중 몽골에 독립군 비밀군관학교를 설립하려는 사촌 처남 김규식의 권유로 몽골로 건너가 고륜(울란바토르의 옛 이름)에 '동의의국'(同義醫局)이란 이름의 병원을 차렸다.

2006년 몽골 울란바토르에 들어선 '애국지사 이태준 의사 기념공원'. 이곳에는 이태준 묘소와 기념관이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2006년 몽골 울란바토르에 들어선 '애국지사 이태준 의사 기념공원'. 이곳에는 이태준 묘소와 기념관이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의 실력은 금세 소문이 나 몽골의 마지막 왕 보그드칸 8세의 어의가 됐고 몽골에 주둔하던 중국군 사령관 가오쓰린의 주치의로도 활약했다. 특히 몽골인의 70∼80%가 감염됐다는 화류병(성병) 퇴치에 지대한 공헌을 해 '몽골의 슈바이처'로 불렸다. 1921년 11월 몽골을 방문해 여행기를 남긴 여운형에 따르면 이태준을 향한 몽골인들의 존경심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그를 '신인'(神人)이나 '극락세계에서 강림한 여래불(如來佛)'을 대하듯 했다고 한다.

동의의국은 몽골을 오가는 애국지사들의 연락사무소 겸 숙소로 쓰였다. 이태준은 김규식을 비롯한 파리강화회의 임시정부 대표단 파견 비용을 대고 레닌의 소비에트 정부가 한인사회당에 지원한 독립자금 40만 루블을 운반하는 등 독립운동에 깊이 관여했다. 헝가리인 폭탄제조 전문가 마자르를 김원봉 의열단장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러시아혁명 반대 세력인 백군(白軍)에 붙잡혀 1921년 순국했다. 울란바토르의 이태준 묘역은 이태준 기념공원으로 꾸며지고 기념관도 들어서 한국과 몽골의 우정을 상징하고 있다.

한국-몽골 수교 20주년을 기념해 2010년 7월 서울 연세대에서 열린 나담 축제에서 몽골인들이 전통 씨름 경기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국-몽골 수교 20주년을 기념해 2010년 7월 서울 연세대에서 열린 나담 축제에서 몽골인들이 전통 씨름 경기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몽골인들은 한국을 '솔롱고스'라고 부른다. '무지개가 뜨는 곳'이란 뜻이다. 대개 원어 국명을 몽골어 발음대로 부르거나 영어 국명으로 지칭하는 것과는 달리 유독 한국에만 뜻이 있는 단어를 쓴다. 그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모두 오랜 역사적 인연과 우리나라의 호감을 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수교 후 30년이 지난 2020년 1월 현재 한국에 체류하는 몽골인은 4만9천765명으로 8번째이고 유학생은 8천865명으로 4위다. 인구(328만 명) 비례로 따지면 모두 1위인데 각각 1.52%와 0.27%로 2위와 압도적인 차이를 보인다. 유학이나 취업 등으로 한국에 살다가 귀국한 몽골인은 30만 명이 넘어 인구의 10%에 이른다. 한국은 몽골의 5대 교역국이자 7번째 투자국이기도 하다.

지하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근처 서울 중구 광희동의 속칭 '몽골타운' 거리. 몽골인이 자주 찾는 업소와 몽골인 단체 등이 몰려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하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근처 서울 중구 광희동의 속칭 '몽골타운' 거리. 몽골인이 자주 찾는 업소와 몽골인 단체 등이 몰려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 중구 광희동에는 '한국 속의 몽골'로 불리는 곳이 있다. '몽골타운'이라 불리는 10층 건물 뉴금호타운에는 식당, 여행사, 탁송업체, 사진관, 휴대전화 판매점, 식료품점 등 몽골인이 주로 이용하는 40여 개 업체가 들어서 있다. 재한몽골인협회와 주한몽골여성회도 인근에 둥지를 틀었고 2008년 몽골 법당도 들어섰다.

2010년 경기도의회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돼 '다문화 정치인 1호' 기록을 세운 이라 씨와 2012년 외국인 최초로 서울시 명예부시장에 임명된 막사르자 온드라흐 씨는 몽골 출신 결혼이주여성이다. 몽골의 독립기념일인 7월 11일 전후에는 전통축제 나담을 개최한다. 씨름과 활쏘기 대회, 노래자랑 등을 펼치고 전통무용과 전통악기 연주를 선보이는가 하면 전통음식도 나눠 먹는다. 2015년에는 몽골인터넷방송도 개국했고 1월 대구에 몽골문화경제원도 들어섰다. 최근 한국에 사는 몽골인 900여 명은 한국인에게서 받은 은혜를 갚겠다며 코로나19 극복 성금을 모아 기부하기도 했다.

지난 1월 17일 대구 대봉동 대천빌딩에서 몽골문화경제원 개소식을 마치고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몽골문화경제원 제공]

지난 1월 17일 대구 대봉동 대천빌딩에서 몽골문화경제원 개소식을 마치고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몽골문화경제원 제공]

몽골에는 2018년 기준으로 2천164명의 한국 동포가 살고 있다. 2만여 명의 중국에 이어 러시아·미국·북한과 2위권을 형성한다. 몽골 국적자는 없고 모두 재외국민이다. 신년 하례식, 추석 잔치, 체육대회 등을 열고 이태준 기념공원에서 3·1절과 광복절 행사도 치른다. 몽골한인방송, KCBN 등 한국어 TV방송국도 운영되고 있다.

정부는 몽골과 러시아 수교 30주년을 맞아 신북방정책을 역점 추진하기로 하고 몽골과 철도·전력·IT(정보기술)·의료·광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올해를 '한·몽 우정의 해'로 정하고 공연과 전시 등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탓에 줄줄이 미뤄졌다.

재한 몽골인들이 만든 '코로나19 후원 캠페인' 포스터(왼쪽)와 후원자들이 SNS에 남긴 인증 사진. [페이스북 화면 캡처]

재한 몽골인들이 만든 '코로나19 후원 캠페인' 포스터(왼쪽)와 후원자들이 SNS에 남긴 인증 사진. [페이스북 화면 캡처]

몽골 속담에 "좋은 말은 타봐야 알고 좋은 친구는 사귀어봐야 안다"는 말이 있다. "물은 건너봐야 알고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는 우리말 속담과 비슷하다. 한국은 지난 30년간 몽골을 사귀어보고 겪어봤다. 몽골인들이 한국인에게 호감을 품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몽골인에게 좀 더 마음을 열어주기를 기대한다. (한민족센터 고문)

이희용 연합뉴스 한민족센터 고문

이희용 연합뉴스 한민족센터 고문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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