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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하면 더 괴로워"…2차피해에 입 다무는 성희롱 피해자들

송고시간2020-03-2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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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성인남녀 2천명 실태조사…피해신고 집단이 오히려 근속의사 낮아

"성희롱 예방·고충처리서 2차피해 예방이 핵심 목표여야"

[연합뉴스TV 제공]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장우리 기자 = "사실 저는 이런 일(성희롱)을 직장생활하는 내내 당했어요. 가벼운 식사나 술자리 제안부터 터치, 성적 제안까지…. 그래서 회사 근속 기간이 이력서에 쓰기 부끄러울 정도로 짧은 경우도 많아요."

"성희롱이 근로 지속을 못 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에요. 그런데 이걸 '작은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제대로 된 매뉴얼이 없고, 구제 절차도 없어요."

"신고를 해 봤자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오히려 2차 피해와 무수한 소문에 시달리다 보니까…. 못 참겠다 싶어 얘기를 해도 조금 나아지는 듯하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고 그러더라고요."

'미투 운동' 등을 계기로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인식에 일부 변화가 있었음에도 성희롱에 문제제기한 피해자들이 조직에서 여전히 제대로 구제받지 못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의뢰해 전국 성인 남녀 근로자 2천명(여성 1천700명, 남성 300명)을 설문하고 25명을 심층 면담한 '성희롱 구제조치 효과성 실태조사'를 진행했다고 29일 밝혔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2.5%가 직장 내 성희롱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성희롱에 어떤 식으로든 대응한 피해자가 이후 직장에서 계속 근무할 의지가 꺾이는 등 여러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나 피해자 보호와 구제가 여전히 부족함을 시사했다.

성희롱 피해를 신고한 집단 중 피해 발생 이후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응답한 비율은 28.3%, '다른 직장으로 이직하고 싶다'는 35.3%였다. 반면 피해를 참고 넘어간 집단에서 위와 같은 응답 비율은 각각 20.3%와 25.2%로 낮았다.

성희롱으로 인한 무기력이나 대인관계 문제 등 업무상 어려움도 피해 접수나 사건 처리가 이뤄진 집단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심각하다는 일관된 결과가 나왔다.

조사팀은 "성희롱을 덮어두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피해 회복이 이뤄지지 않는 실태를 추측할 수 있게 한다"며 "특히 따돌림 등 전형적 2차 피해로 인한 어려움은 사건을 신고·처리한 집단에서 한층 심각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심층 면접에 참여한 응답자 다수는 "구제 절차가 개시되면 반드시 2차 피해가 발생하고, 이것이 성희롱 피해만큼이나 근로 환경을 악화시킨다"고 말했다.

한 예로 피해자 A씨는 성희롱 사실을 즉시 신고했으나 사내 관리자로부터 "여자가 사회생활을 하는 데 이런 경험은 굉장한 흠이다", "저 사람(가해자)은 한 집의 가장이고 너는 아직 시집도 안 갔다" 등의 말을 들었다고 한다. A씨는 "그 말이 나에게는 '이거 퍼지면 너는 결혼이고 뭐고 끝장이야'라는 협박으로 들렸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기업이 성희롱 관련 고충처리 절차에서 시비를 가리는 데 집중하지 말고 피해자 보호를 1순위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가해자-피해자 간 실질적 분리조치, 고충처리 담당자의 성인지 감수성 및 역량 강화, 신고에 따른 불이익과 2차 피해 예방을 위한 제도 개선 등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연구책임자인 구미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직장 내 성희롱 구제 절차가 시작돼도 이후 발생하는 2차 피해는 오로지 피해자 개인의 몫"이라며 "성희롱 예방과 고충 처리에서 '2차 피해 예방'이 핵심 목표로 설정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녀고용평등법 관련 예규나 지침 등에 2차 피해의 구체적 양태와 예시를 추가하고, 피해자 보호를 위해 사업주가 취해야 할 조치도 더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iroow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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