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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김태년이 재점화한 법사위 '월권논란' 실상은?

송고시간2020-05-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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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관 상임위 통과해도 법사위서 체계·자구심사 추가로 받도록 규정

타상임위 통과법안 형식만 따지게 돼 있으나 내용까지 보는 경우 있어

17~19代 166건 법사위에 묶여 폐기…전체 상임위 통과법안의 2.55%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가 국회법이 부여한 '체계·자구심사' 권한을 내세워 사실상 '상원' 내지 '게이트키퍼' 역할을 하고 있다는 논란이 다시 한번 공론의 장에 올라왔다.

국회법상 법사위는 법원 및 군사법원과 헌법재판소, 법무부와 법제처, 감사원,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대통령 등 탄핵소추와 관련된 고유업무 외에도 모든 법률안의 체계와 자구를 심사하는 권한을 갖는다.

구체적으로 국회법 86조는 '상임위는 심사가 끝난 법률안을 체계·자구심사를 위해 법사위에 회부'하도록 규정한다. 법률안이 헌법이나 다른 법률의 체계와 모순되지 않는지, 법률안에 사용된 법 문구가 명확한지 등을 법사위에서 다시 판단 받도록 한 것이다.

국회 내 법률전문가가 희소했던 1951년 '법조인이나 법학자 등으로 구성된 법사위가 법률안을 재심사해야 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제도다.

즉 소관 상임위를 통과한 법률안이라도 법사위가 체계·자구 심사를 추가로 실시한 뒤 본회의에 상정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회 상임위의 역할과 기능이 점점 세분화·전문화해가면서 체계·자구 심사 제도는 논란의 대상이 됐다.

소관 상임위가 충분한 심사과정을 거쳐 통과시킨 법률안인데도 법사위가 체계·자구를 심사한다는 명목으로 입법을 방해하고 있으니 아예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 권한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것이다.

논란은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신임 원내대표의 방송 인터뷰를 계기로 다시 수면 위로 떠 올랐다. 김 원내대표는 11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에 출연해 "(법사위를) 게이트키퍼 수단으로 악용하는 악습을 끊을 때가 됐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의 발언은 여당의 4·15 총선 공약이었던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 권한 폐지'를 재확인한 수준이었지만, 70년 가까이 이어진 제도를 없애자는 민감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파장이 작지 않았다.

특히 미래통합당 주호영 신임 원내대표가 "국회 통과 법안 중 위헌법률이 1년에 10건 넘게 나온다. 그런데 체계·자구 심사까지 없애면 매우 위험하다"는 반대입장을 표명하면서 정치 쟁점화할 조짐까지 보인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에 연합뉴스는 법사위가 게이트키퍼로 악용됐다는 김 원내대표의 발언이 법안 처리 통계와 실제 사례로 어느 정도 입증되는지 살펴봤다.

17대∼19대 국회에서 법사위 외 소관 상임위를 통과한 법률안 6천498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법사위 체계·자구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된 법률안은 총 166건(2.55%)에 달했다. 상임위 위원은 물론 상임위에 소속된 입법전문가와 소관 부처 관계자 등의 논의를 거쳐 심사를 마친 법률안 중 법사위에 막혀 입법되지 못한 것이 100건 중 2∼3건 정도인 것이다.

17대 국회에서 1천655건 중 37건(2.23%)이 소관 상임위를 통과하고도 법사위를 통과하지 못한 채 폐기됐고, 18대 국회에선 2천212건 중 95건(4.29%), 19대 국회에선 2천631건 중 34건(1.29%)이 같은 이유로 폐기 수순을 밟았다.

이런 현상은 임기종료를 16일 앞둔 20대 국회에서도 정도는 덜했지만 존재했다.

13일 현재 20대 법사위를 제외한 나머지 상임위에서 가결된 법률안 2천990건 중 34건(1.14%)이 법사위 체계·자구심사를 받는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4건은 2017년 2월에 법사위에 회부돼 3년 넘게 심사 중이었고, 11건도 같은 해 9월에 법사위로 넘어와 2년 7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심사를 받고 있다.

아직 심사가 진행 중이지만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돼 가결되긴 어려워 보인다. 체계·자구심사를 실시하는 법사위 제2 법안소위가 지난달 29일을 끝으로 사실상 마무리돼 20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는 29일부로 법사위에 계류 중인 법안들은 자동으로 폐기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끝나가는 20대 국회. 법안 처리는 언제쯤?
끝나가는 20대 국회. 법안 처리는 언제쯤?

[연합뉴스 자료사진] 제20대 국회가 한 달여 남은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각종 법안이 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2020.4.21 jeong@yna.co.kr

이처럼 법사위에 타 상임위 소관 법안이 '장기미제' 사안으로 남게 되는 경우는 두 갈래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체계·자구심사 과정에서 다른 법률과 법체계상 모순된 점이 파악되는 등 법안의 형식상 문제로 인해 심사가 중단된 사례, 즉 법에 정해진 법사위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다 심사가 늘어진 건이 적지 않다. 이럴 경우 법사위가 법률안을 문제가 없도록 정비해야 하는데, 이 작업에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정작 문제시되는 것은 체계·자구심사라는 명목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법률안의 내용을 심사하는 경우다.

임지봉 한국입법학회장(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12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법사위가 체계·자구심사를 명목으로 사실상 법률안 내용에 대한 심사를 하는 경우가 있다"며 "해당 법률안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경험이 없는 법사위가 법률안 내용까지 심사하는 것은 권한남용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권한에 없는, 법안 내용 심사를 했다'는 논란의 대상이 된 가까운 사례는 2018년 2월 소관 상임위인 해양수산위에서 가결돼 법사위로 넘어간 '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주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법률안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에 '피해자 구조 및 사체 수습 활동을 하다 사망한 잠수사' 등을 추가하는 내용이다.

해양수산위가 1년 8개월 동안 논의한 끝에 가결했지만, 정작 법사위에 넘어간 뒤에는 전체회의에서 단 한 차례 논의된 것을 끝으로 폐기될 처지에 놓였다. 2018년 3월 29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정연호 전문위원이 "경미한 자구수정을 했다"며 체계·자구심사가 불필요하다는 의견을 냈지만, 당시 자유한국당 소속인 윤상직 위원이 "잠수사의 사망 및 부상은 세월호 침몰하고 직접 관련은 없다"며 반대하고 나서면서 제동이 걸렸다.

식품위생 위반행위가 명백한 식당 등에 일시적인 '영업중지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한 '식품위생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2017년 1월 법사위에 회부된 이 법률안은 '영업중지명령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수단이 함께 규정돼야 한다'는 반대에 부딪혀 입법이 좌절된 상태다. 2017년 2월과 2019년 11월 두 차례 체계·자구심사가 실시됐지만, 김진태 당시 제2법안소위 위원장이 "완결성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반대하면서 심사가 멈췄다.

19대 국회에서 발의됐다가 법사위 체계·자구심사를 넘지 못하고 폐기된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유사한 논란의 대상이었다.

13세 이상 청소년에 대한 성범죄 중 디엔에이(DNA)증거 등 과학적 증거가 명확한 경우에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도록 한 이 법안은 소관 상임위인 여성가족부에서 별 이견 없이 가결됐지만, 법사위 반대를 넘지 못했는데 '과학적 증거'라는 문구가 불명확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결국 이 같은 통계와 실제 사례가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 제도의 전면 폐지를 필요로 할 만큼 심각한 것인지, 아니면 법사위의 '월권'을 막을 보완장치를 마련하는 것으로 충분할지 등은 토론이 필요한 사안으로 보인다. 이달 30일 개원하는 21대 국회에서 벌어질 논쟁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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