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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한만호 비망록', 이미 사법판단 이뤄졌다?

송고시간2020-05-21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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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회유 속 거짓진술' 언급 공개…검 "증거로 채택돼 사법판단 받아"

증거로 채택된 건 사실이나 판결문에 비망록 허위여부 판단은 없어

한명숙 불법정치자금 수수 사건 (PG)
한명숙 불법정치자금 수수 사건 (PG)

[김민아 제작] 사진합성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대법원에서 유죄로 확정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에서 검찰의 회유와 추가기소 압박을 못이겨 허위진술을 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담은 고(故)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 '비망록' 내용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비망록의 핵심은 '추가 기소의 두려움과 사업 재기를 도와주겠다는 검찰의 약속 때문에 검찰 수사 과정에서 한 전 총리에게 불법정치자금을 줬다고 허위로 진술했다'는 것이다.

만약 사실로 인정된다면 한 전 총리 사건에 대한 재심 청구의 단서가 될 수 있음은 물론, 수사에 관여한 전·현직 검찰 인사들의 적법 수사 논란으로 연결될 수 있기에 상당한 폭발력을 가진 사안이다.

검찰은 비망록이 이미 법원에서 사법적 판단을 통해 허위로 판명이 났기 때문에 전혀 문제 될 것 없다는 입장이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20일 입장문을 통해 "비망록이라는 서류는 한 전 총리 재판 과정에서 증거로 제출돼 엄격한 사법적 판단을 받은 문건"이라며 "법원은 1∼3심에서 이 문건을 정식 증거로 채택했고, 대법원은 이 문건과 다른 증거를 종합해 유죄를 확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검찰 주장이 사실에 정확히 부합하는지에 대해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 .

'거짓진술을 하기까지 검찰의 압박과 회유가 있었다'는 취지를 담은 비망록 내용을 법원이 이미 검증했고, 검증결과 '사실이 아니다'라는 법적 판단을 내렸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비망록 자체가 한 전 총리의 재판에서 증거로 정식 채택됐다는 주장 자체는 사실로 확인된다.

법원과 검찰에 따르면 검찰은 한 전 총리의 1심 재판 중에 비망록을 증거로 제시했고, 한 전 총리 측이 이에 동의하면서 증거로 정식 채택됐다. 통상 형사재판에서는 검찰이나 변호인 측이 제시한 증거에 대해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표현을 하지 않으면 증거로 채택된다.

한 전 총리 사건의 공판검사였던 신응석 청주지검 차장검사는 21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한씨의 비망록은 1심 재판 중에 증거로 제시됐고, 변호인 측이 반대하지 않아 증거로 채택됐다"고 설명했다.

[그래픽] '한명숙 사건' 주요 일지
[그래픽] '한명숙 사건' 주요 일지

(서울=연합뉴스) 장예진 기자 =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뇌물수수 사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20일 공식 문제제기를 하고 나서면서 재조사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jin34@yna.co.kr

그렇다면 비망록이 증거로 채택됐는데도 한 전 총리에게 유죄가 확정됐다는 점에서 비망록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이미 내려졌다고 볼 수 있을까?

법원이 한 전 총리에게 유죄를 선고한 만큼 '비망록 내용은 허위'라는 사법적 판단이 내려졌다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인데, 논쟁의 여지가 없지않다.

사실 한 전 총리 사건 뿐 아니라, 검찰에서 한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넸다고 진술했다가 재판 과정에서 번복한 데 대해 검찰이 한만호 씨를 위증죄로 기소한 사건에서 한만호씨가 유죄 판결을 받은 바도 있다. 각각 대법원까지 올라갔던 두 사건에서 '한만호 비망록'은 판사들의 판단을 바꿀 결정적 요소로 인정받지 못했던 셈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판결문으로 미뤄 사법부가 비망록을 콕 집어서 '허위'라고 판단하진 않았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일단 한 전 총리 사건 1∼3심 판결문에 비망록이 허위라는 직접적인 판단이 적시돼 있지 않다.

오히려 검찰의 부적절한 압박 흔적을 대법관들이 지적한 사실이 있다. 2015년 8월 한 전 총리의 유죄를 확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대법관 5명은 "한만호가 허위나 과장 진술을 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일단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진술을 하자 이를 기화로 검사가 한만호의 진술이 번복되지 않도록 부적절하게 애쓴 흔적이 역력한 사안"이라는 소수의견을 냈다.

또 한씨의 진술번복이 위증이라는 이유로 열린 재판에서도 비망록이 증거로 채택됐지만, 이 재판의 1∼3심 판결문에도 비망록이 허위인지에 대한 판단은 나오지 않는다.

이 때문에 법조계 일각에서는 논란이 해소되기 위해선 비망록에 대한 명확한 사법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판사들이 다양한 증거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결론을 내리는 만큼, 유죄 판결이 나왔다고 해서 개별 증거가 모두 유죄 판결과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법적 판단'이 내려졌다는 식의 속단은 무리라는 얘기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비망록이 증거로 채택됐다고 해서 비망록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이 내려진 것이라 평가할 수는 없다"며 "판결문에 구체적인 기재가 없는 이상 법원이 비망록을 한 전 총리 유죄의 근거로 활용했다거나 비망록 내용이 허위라고 판단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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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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