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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茶山) 둘째 아들의 흑산도 기행 수록된 문헌 최초 발견

송고시간2020-06-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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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한양대 교수, 정학유 흑산도 기행문 '부해기' 확인

정학유의 흑산도 기행문 '부해기'
정학유의 흑산도 기행문 '부해기'

[정민 교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고래 다섯 마리가 나와 노닐며 멀리서 거슬러 왔다. 그중 한 마리가 하늘을 향해 물을 뿜는데, 그 형세가 마치 흰 무지개 같고, 높이는 백 길 남짓이었다. 처음 입에서 물을 뿜자 물기둥이 하늘 끝까지 떠받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도리어 옥 같은 눈이 땅 위로 떨어졌다. 햇빛에 반사되어 비치자 광채가 현란하였으니, 참으로 기이한 광경이었다."('부해기' 1809년 2월 12일 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둘째 아들 정학유(丁學游, 1786∼1855)가 전남 신안 흑산도가 멀리 바라다보이는 교맥섬(흑산면에 있는 무인도) 인근에서 고래를 목격하고 쓴 글이다.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묘사가 생생하고 역동적이다.

정학유가 부친의 당부로 유배 중이던 둘째 큰아버지 정약전(丁若銓)을 만나기 위해 1809년 2월 3일부터 3월 24일까지 52일간 흑산도를 다녀온 여정을 기록한 기행 일기인 '부해기'(浮海記)가 최초로 발견됐다.

정민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다산 집안에서 간직했던 책인 '유고'(遺稿) 10책 가운데 8∼10책에 수록된 정학유의 문집 '운포유고'(耘圃遺稿)에서 '부해기'를 확인했다고 1일 밝혔다.

유고 10책은 '운포유고'를 비롯해 조선 중종 때 문신 정수강(丁壽崗)의 '월헌집'(月軒集), 다산의 부친 정재원(丁載遠)의 '하석유고'(荷石遺稿) 등 집안의 문집을 모은 책이다. '운포유고'는 시집 8권과 문집 2권으로 구성돼 있는데 '부해기'는 10책 문집 권2에 실려 있다. 현재 유고 10책은 1970년대 다산학을 주도했던 김영호 전 경북대 교수가 소장하고 있다.

'부해기'가 실린 '유고' 10책
'부해기'가 실린 '유고' 10책

[정민 교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정학유는 형 학연(學淵)과 함께 다산의 '주역심전'(周易心箋)을 정리해 완성하는 등 다산의 학문 활동을 도운 인물이다. 농가에서 매달 할 일과 풍속 등을 한글로 읊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를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해지는 글이 많지 않아 그간 그의 됨됨이나 문학세계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정학유가 흑산도에 간 것은 아버지의 당부 때문이었다. 정약전의 아들 학초(學樵)가 1807년 17세에 홀연 세상을 떠나자 다산은 유배지에서 절망에 빠진 형을 위해 1808년 봄 강진에 온 둘째 아들을 이듬해 흑산도로 보냈다.

'부해기'에 따르면 정학유는 1809년 2월 3일 강진을 출발해 영암 도씨포(현 도포리)에서 배를 타고 정개도, 목포보(목포 만호동에 있던 수군 진영), 고하도를 거쳐 팔금도와 비금도를 지나 흑산도에 도착했다. 이후 정약전과 만나 공부를 점검받는 한편 너럭바위와 소라굴 등 여러 승경을 유람하고, 정약전의 생일잔치까지 치른 뒤 강진으로 돌아왔다.

'부해기'에는 흑산도에 이르는 여정과 당시 선박 운항 방식, 흑산도의 풍경과 특산물, 풍속과 주민 생활, 중국 표류선에 대한 증언, 무리 지어 몰려다니는 개(山犬) 이야기 등 다채로운 내용이 일기 형식으로 담겨 있다.

흑산도 풍물과 풍습 읊은 '현산잡시'
흑산도 풍물과 풍습 읊은 '현산잡시'

[정민 교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운포유고'에는 흑산도 여정을 묘사한 시 12수도 따로 수록돼 있다. 바다 위에서의 하룻밤, 목포보와 고하도에서의 감흥, 고래를 만난 감회, 흑산도 풍물과 절경 등을 시에 담았다. 이 중 흑산도 풍물과 풍습을 노래한 '현산잡시'(玆山雜詩) 7수에는 해녀와 흑산도 특산 벼루, 병자 치료를 위해 무당을 찾는 풍습 등이 담겨 있다.

정민 교수는 이날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다산은 자신의 글 어디에도 정학유의 흑산도 기행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는데 아마도 국가의 죄를 입은 죄수 간에 중간에 자식을 두어 왕래했다는 혐의를 피하려고 그랬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어 "'부해기'와 시 12수는 흑산도 지역사 연구는 물론 정약전의 흑산도 유배 공간을 이해하는 데 유익한 정보를 준다"고 말했다.

한편 '운포유고' 시집 8권에는 정학유가 1808년 4월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1년 넘게 강진에 머물 당시 다산초당과 다산의 생활 및 동선(動線)을 엿볼 수 있는 시가 시간순으로 정리돼 있다. 또 '부해기'와 나란히 수록된 '온천고'(溫泉考)에는 우리나라 온천 33개소가 중국 온천과 함께 소개돼 있다.

정민 교수는 "이번에 3책 분량의 '운포유고'가 세상에 출현해 정학유에 대한 소개가 가능해졌고, 정약전의 흑산도 유배 생활도 엿볼 수 있게 됐다. 다산학 연구에 가치가 큰 자료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소라굴 등 흑산도의 아름다운 승경이 '운포유고'에는 소개됐지만, 현재 그 위치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이번 자료가 흑산도 관광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정민 교수는 다산과 정약전 사이에 오간 서간문을 번역해 이번에 확인한 자료와 함께 책으로 엮어 출간할 예정이다.

dkl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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