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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가난한 백인 여성으로 산다는 것

송고시간2020-06-0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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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 스마시 '하틀랜드' 번역 출간

(서울=연합뉴스) 추왕훈 기자 = "풍요하기로 이름난 나라에서 가난을 겪는다는 건 가지지 못한 것을 끝없이 자각하며 사는 것과 마찬가지야. 무더운 날 마실 수 없는 차가운 저수지 옆에서 마라톤을 하는 것과 비슷하지."

미국의 언론인이자 작가이며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조앤 쇼런스틴 펠로 교수이기도 한 세라 스마시가 첫 저서 '하틀랜드'(원제 Heartland: A Memoir of Working Hard and Being Broke in the Richest Country on Earth·반비)에서 태어나지 않은 딸 오거스트에게 하는 말이다. 미국 중서부 시골에서 가난한 백인 여성으로 살아야 하는 운명의 굴레와 그것의 부당함을 자각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뛰쳐나가는 여정을 절절히 그린 책이다.

세라 스마시
세라 스마시

[sarahsmarsh.com·재판매 및 DB 금지]

저자는 미국 중서부 캔자스주의 농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책 제목의 '하틀랜드'는 사전적으로는 '중심지'라는 뜻이지만, 미국에서는 캔자스주를 비롯해 해안에 접하지 않은 내륙지대를 가리킨다. 대개 가난한 농촌 지역이고 보수적 성향이 강하며 저학력, 저소득 백인이 인구의 다수를 점하는 곳이다.

흑인 범죄 용의자가 체포되는 과정에서 백인 경찰의 무릎에 눌려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해묵은 인종 간 갈등이 재폭발하고 있지만, 미국을 갈라놓는 단층선은 흑백 인종만이 아니다. 저자의 친척들과 같은 그레이트플레인스(대평원) 지역의 농촌 주민들은 부유한 백인들에게 농사일을 하느라 햇볕에 그을린 목을 지칭하는 '레드넥(redneck)'이나 산골 촌뜨기라는 뜻의 '힐빌리(hillbilly)' 또는 이동식 주택에 사는 쓰레기라는 의미를 담은 '트레일러 트래시(trailer trash)'와 같은 경멸을 담은 이름으로 불린다.

그럴 능력이 없었는지, 아니면 그러고 싶지 않아서였는지 모르지만, 저자의 아버지와 어머니 쪽 집안은 모두 20세기 이후 미국 농촌의 퇴락과 급속한 도시화의 바람 속에서도 대대로 캔자스주 농촌 지역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과 비교할 일이 없다 보니 자신들의 삶이 얼마나 곤궁한 것인지 의식하지도 못한다. 저자 역시 어릴 때는 끼니를 굶을 정도는 아니라는 점에서 자신이 '중산층'에 속하는 것으로 막연히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10대 후반이면 임신하고 준비되지 않은 결혼에 이르게 되지만 남편의 술주정과 손찌검을 견디지 못해 집을 뛰쳐나가야 하는 인생은 가혹하다. 저자의 외할머니 베티는 열여섯살 때 처음 임신해 떠밀리듯 결혼한 뒤로 여섯 차례나 이혼한 끝에 마지막에 가서야 때리지 않는 남편을 만나 가정에 안착할 수 있었다. 저자의 친가와 외가 쪽 여자들 모두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러 세대의 친척들 가운데 아버지나 남편에게 맞지 않고 지낸 사람은 자신뿐임을 깨닫고는 문득 안도하기도 했다.

저자는 거친 자연과 고단한 일상, 애정보다는 억압이 지배하는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때로는 소소한 행복을 맛보기도 하지만 이토록 험한 인생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달아간다. 그리고 자신이 낳게 될 아이 오거스트를 상상하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러나 오거스트는 태어나서는 안 될 아이였다. 가난한 백인과 여성이라는 이중의 굴레가 다음 세대까지 이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해 악착같이 공부했고 어느 정도의 행운과 주변의 도움에 힘입어 집안을 통틀어 첫 번째로 대학 교육을 받게 된다. 그리고 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했고 대학의 교직까지 얻게 된 후에는 예전의 거칠고 가난한 삶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을 확신한다.

그것은 그동안 자신이 끊임없이 대화해온 오거스트가 태어나지 않게 됨을 의미한다. 설사 미래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그 아이는 오거스트와는 다른 존재, 다른 영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오거스트와 이별하기로 하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오거스트, 네가 캔자스의 바람이 네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걸 영영 느끼지 못하리라는 게 가슴 아파. 하지만 우리 식구들처럼 분투하며 살아야 할 필요는 없으리란 것에 감사해."

홍한별 옮김. 424쪽. 1만8천원.

미국에서 가난한 백인 여성으로 산다는 것 - 2

cwhy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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