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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의 안식처'가 된 제주 오름…"무덤 3천여기 자리"

송고시간2020-06-16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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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1033번지 해발 고도 84.5m 입산봉(笠山峰).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입산봉'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입산봉'

(제주=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16일 오후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상공에서 바라본 입산봉(笠山峰)의 모습. 입산봉엔 3천여기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2020.6.16 jihopark@yna.co.kr

입산봉은 원형의 분화구를 가진 야트막한 수중화산체다. 삿갓을 벗어놓은 듯한 모양을 닮아 삿갓오름이라 불리기도 한다.

분화구 주변의 사면엔 오름에서 태어나 오름으로 돌아가는 제주 사람들의 무덤 3천여기가 자리하고 있다.

망자의 쉼터 '입산봉'
망자의 쉼터 '입산봉'

(제주=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16일 오후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상공에서 바라본 입산봉(笠山峰)의 모습. 입산봉엔 3천여기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2020.6.16 jihopark@yna.co.kr

조선 시대 입산봉엔 봉수대가 있었다. 1894년 갑오개혁과 함께 봉화가 폐지되면서 봉수대는 사라졌고, 1910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후 입산금지령이 해제되면서 입산봉 정상에 처음으로 분묘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김녕리 주민들이 뒤따라 이곳에 묘를 쓰자 김녕리는 입산봉을 공동묘지로 지정하게 됐다.

한라산을 뒤로 한 '입산봉'
한라산을 뒤로 한 '입산봉'

(제주=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16일 오후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상공에서 바라본 입산봉(笠山峰)의 모습. 입산봉엔 3천여기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2020.6.16 jihopark@yna.co.kr

110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사면 북쪽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면에는 빼곡하게 무덤들이 자리하게 됐다.

현재 김녕리 인구가 2천863명임을 볼 때 주민 수보다 많은 마을 조상들이 터를 잡고 있는 셈이다. 일주동로를 사이에 두고 망자의 안식처와 마을이 공존하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마을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마을

(제주=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16일 오후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마을의 모습. 2020.6.16 jihopark@yna.co.kr

예로부터 분화구에는 수량이 풍부한 못이 있어 물이 귀했던 당시 사람들은 이 못을 '금훼수(禁毁水)'라 불렀다. 한때는 분화구 내부에 논이 있었다고도 한다. 지금은 사유지가 돼 비닐하우스 등 농장시설이 들어서 있다.

조선 시대 입산봉엔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봉수대인 입산봉대(笠山峰臺)가 자리했었다. 입산봉에서 서산봉, 원당봉, 사라봉을 거쳐 관덕정이 위치한 제주목 관아까지 봉화가 순차적으로 전달됐다.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의 밭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의 밭

(제주=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16일 오후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밭의 모습. 일주동로가 양쪽의 밭을 사선으로 가로지르고 있다. 2020.6.16 jihopark@yna.co.kr

뛰어난 풍수지리학적 가치와 마을로부터의 접근성 때문에 망자의 안식처가 된 입산봉. 그 풍수지리학적 가치를 높이 사 지금도 이곳에 묘를 쓰는 경우가 간혹 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화장이 일반화되면서 기존의 무덤을 이장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jiho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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