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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통통] 중국의 참전은 '美에 맞서 北을 지원한 전쟁'

송고시간2020-06-25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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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는 군중운동 포함한 개념

반미 감정 고취·내부 결속 강조할 때 항미원조 활용하기도

6.25 전쟁 참전한 중국 인민지원군
6.25 전쟁 참전한 중국 인민지원군

[바이두 캡처.재판매 및 DB 금지]

(베이징=연합뉴스) 심재훈 특파원 = 우리나라 사람들은 1950년 6월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전쟁을 6·25 전쟁이라고 흔히 말한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미국에 맞서 북한을 지원한 전쟁이라는 의미로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이라고 부른다.

중국인들은 왜 이런 명칭을 붙였을까.

이런 의문은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검색 포털인 바이두(百度)에서 '항미원조'를 찾아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바이두에는 항미원조 전쟁이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의 일부를 지칭한다고 돼 있다.

6.25 전쟁 참전한 중국 인민지원군
6.25 전쟁 참전한 중국 인민지원군

[바이두 캡처.재판매 및 DB 금지]

이는 중국 인민지원군이 참전하는 단계를 가리킬 뿐 아니라 중국인들이 북한 사람들을 지원해 미국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군중적 운동까지 포함하고 있다. 한마디로 반제국주의 운동인 셈이다.

항미원조는 1950년 7월 10일 중국이 미국의 대만과 북한 침략에 반대하는 운동위원회를 발족하면서 시작됐다. 그해 10월에는 중국 인민지원군이 북한에 가서 참전해 항미원조 전쟁의 서막을 열었다.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 국가주석을 비롯한 당시 중국 지도부는 1950년 베이징(北京) 톈안먼(天安門)에서 2만5천명의 육해공군과 민병대대가 참여한 열병식을 치렀는데 이 열병식이 끝난 지 불과 20여일 만에 중국은 6·25 전쟁에 참전한다.

바이두는 "항미원조 전쟁에서 중국 인민지원군은 중국군과 중국 인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고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진영의 협조도 받았다"면서 "1953년 7월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항미원조는 끝이 났고 1958년 지원군은 중국으로 철수했다"고 소개했다.

6.25 전쟁 참전한 중국 인민지원군
6.25 전쟁 참전한 중국 인민지원군

[바이두 캡처.재판매 및 DB 금지]

중국은 인민지원군이 1950년 북한에 가서 첫 전투를 했던 10월 25일을 1951년부터 항미원조 기념일로 지정했다.

중국은 반미 감정을 부추기거나 내부 결속이 필요할 때마다 항미원조를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017년 8월 건군 90주년 기념 경축 대회 연설에서 "인민군대가 항미원조 전쟁과 여러 차례 변경의 작전을 승리로 이끌어 국위와 군위를 떨쳤다"고 치하했다.

당시 자신의 1인 권력 체제를 굳히는 19차 당 대회를 앞두고 있던 시진핑 주석은 이런 발언을 통해 내부 결속을 다지고 세계 최강 미국에 맞설 수 있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6.25 전쟁 참전한 중국 인민지원군
6.25 전쟁 참전한 중국 인민지원군

[바이두 캡처.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해 미중간 무역 전쟁이 치열해지자 중국에서는 항미원조가 또다시 등장했다.

중국 관영 방송인 중국중앙(CC)TV는 지난해 5월 이례적으로 중국의 6·25 전쟁 참전을 다룬 영화들을 긴급 편성해 방영했다.

이 가운데는 장진호 전투 관련 영화도 포함됐다.

이 전투는 1950년 11월 말부터 12월 중순까지 함경남도 개마고원의 저수지 장진호에서 벌어진 격전이다. 미군 1천29명이 사망하고 4천894명이 실종돼 미군 전쟁사에서 가장 고전한 전투로 기록돼있다.

president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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