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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인권위 '권력형 성폭력 근절' 사명감으로 직권조사 임해야

송고시간2020-07-30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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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국가인권위원회가 30일 상임위원회를 열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전직 비서 성추행 의혹에 관해 직권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사회적으로 엄청난 논란을 불러온 사안의 심각성에 비춰볼 때 당연한 결정이다. 피해자를 돕고 있는 여성단체들이 직권조사를 요청한 지 이틀 만에 상임위원들이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은 데 주목한다. 이번 사건에 실린 무게를 그만큼 깊이 인식하고 있어서일 거라고 믿는다. 인권위는 "제삼자가 낸 진정사건과 관련해 피해자와 소통하던 중 직권조사를 요청해옴에 따라 요건 등을 검토해 직권조사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여론을 의식한 게 아니라 직권조사 요건에 부합한다는 주체적 판단에 따른 결정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진정이 없더라도 인권침해나 차별행위가 있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고 그 내용이 중대하다고 인정되면 직권으로 조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인권위는 이번 사건을 위해 별도의 직권조사팀을 꾸릴 방침인데 조사 내용과 대상이 방대한 만큼 적절한 판단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조사 대상은 박 전 시장에 의한 성희롱·성추행과 서울시 관계자의 묵인·방조 의혹, 서울시의 피해자 구제 절차 미이행, 고소 사실 누설 경위 등이다. 나아가 2차 가해에 대한 국가·지자체의 조치와 공공부문 기관장 비서 채용 과정의 성차별적 요소에 관한 실태조사, 선출직 공무원의 성범죄 사건 처리 실태에 대한 조사도 불가피하다. 이런 문제에 대한 진상조사를 토대로 전반적인 제도 개선 권고안을 마련하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피해자 쪽이 인권위 진정이 아니라 직권조사 요청이라는 방식을 택한 것도 피해자가 주장하는 범위를 넘어 문제를 폭넓게 조사하고 제도 개선을 적극적으로 권고하라는 취지라는 점을 가볍게 넘겨선 안 된다.

하지만 직권조사 여건은 결코 녹록지 않다. 인권위는 수사권이 없어 강제수단을 동원한 조사가 불가능하다. 조사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관련자들이 내용을 부인하거나 조사에 협조하지 않아도 뾰족한 방법이 없다. 인권위가 내놓는 직권조사 결과가 명확하지 않고 두루뭉술한 경우가 종종 있는 것도 그래서다. 조사가 벽에 막혀 아예 중단되기도 한다. 박 전 시장의 측근을 비롯한 서울시 관계자들이 비협조적 태도로 나올 가능성이 큰 상황이라 조사의 실효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또 2년 전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의 성추행 의혹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의 '미투' 사건에서 인권위가 보인 태도를 보면 이번 사건도 반드시 명쾌한 진상 규명이 이뤄지리라고 장담하기는 힘들다. 당시 인권위는 진정 접수 직후 브리핑까지 열어 검찰 전반의 성폭력 문제를 직권조사한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지만 다섯 달 뒤 서 검사의 진정을 각하하고 조용히 조사를 접었다. 조사 종결 사실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뒤늦게 공개됐는데 각하 이유는 '수사나 재판, 그 밖의 권리구제 절차가 진행 중이거나 종결된 경우'라는 것이었다. 인권위는 이번 사건이 또다시 '태산명동 서일필' 식으로 흐지부지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직권조사 결정으로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 전반에 대한 진상 규명이 인권위 몫으로 넘겨졌다. 인권 전담 국가기관이자 준사법기구로서 법적 독립성을 보장받는 인권위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과 성폭력을 뿌리 뽑는 계기가 되도록 조사에 만전을 기할 것을 촉구한다. 현실적 어려움이 적지 않겠지만 좌고우면하지 말고 조사 대상에 성역이 없도록 해야 한다. 특히 고소 사실 유출 의혹과 관련해 경찰·검찰뿐 아니라 청와대 국정상황실, 현역 국회의원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인권위 조사와는 별개로 관련 고발 사건을 수사 중인 검·경도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되풀이되는 권력형 성범죄를 근절하려면 공동체 구성원의 관심이 없어선 불가능하다.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성폭력에 맞서 다 함께 손을 맞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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