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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산업전사' 미명 아래 초등학생까지 강제노역

송고시간2020-08-1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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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도서관서 아동·여성 강제동원 관련 기록 공동전시·포럼

국가기록원·중앙도서관·동북아역사재단 관련 기록 발굴·연구 협력

'소년공을 부른다 - 산업전사로 충북도에서 모집', 매일신보
'소년공을 부른다 - 산업전사로 충북도에서 모집', 매일신보

일제가 만 14세 이상 20세 이하의 청소년들을 '총후의 중견산업전사'라는 명목으로 동원한다는 기사다. 특히 충청북도에서만 ○○명이 '할당'돼 있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소년공(少年工)을 부른다 - 산업전사(産業戰士)로 충북도에서 모집"

일제강점기였던 1941년 5월 2일 매일신보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기사에는 일제가 만 14세 이상 20세 이하 청소년을 '총후(銃後)의 중견 산업전사' 명목으로 동원해 일본 내 공장에 배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총후란 총의 뒤, 즉 전쟁 중 후방을 뜻한다.

국가기록원과 국립중앙도서관, 동북아역사재단은 13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쟁에 동원된 아동과 여성'을 주제로 전시와 공동 포럼을 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각 기관이 소장한 일제강점기 기록 가운데 아동·여성 강제동원 관련 기록과 강제동원을 정당화하고 선동하기 위한 신문 기사와 문헌 등 관련 기록물 35건이 공개됐다.

그동안 각 기관에서 아동·여성 강제동원과 관련한 기록물에 대한 개별 열람은 가능했지만, 관련 기록물을 한데 모아 전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군산공립중학교 학적부
군산공립중학교 학적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리는 '일제강점기 자료 공동전시'에 소개된 군산공립중학교 제17회로 졸업한 학생의 학적부. 학적부에는 학생의 이력사항, 보증인, 성적, 체격이 수록돼 있다. 인물 부분에는 근로보국대의 수료 내용도 기재돼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초등학생까지 강제동원…동원 이력 담긴 학적부 최초 공개

국가기록원 소장기록으로는 초등학생(당시 국민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노역 현장에 강제동원한 '학도동원(學徒動員)' 내용이 담긴 학적부가 눈길을 끈다.

그동안 학생 동원과 관련한 연구는 있었지만 실제 인물과 동원내용이 기재된 명부가 공개된 것은 드문 사례라고 기록원 측은 설명했다.

일제는 1938년부터 학교별로 '근로보국대'를 결성해 학생들의 근로봉사를 강제했다.

당초 동원 기간은 10일 정도였으나 전쟁이 치열해지고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기간을 1년까지 늘려 학생의 노동력을 착취했는데 학적부는 이 같은 내용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특히 근로보국대에 동원된 학생이 졸업 후 전쟁터로 끌려간 사실을 학적부(중학생)와 일선 파견부대 군인·군속 명부인 '유수명부'(留守名簿)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조선총독부가 학생들을 노동력과 병력의 원천으로 인식했음을 입증하는 구체적 사례라고 기록원 측은 설명했다.

또 '학도동원비상조치요강'(1944년 3월 18일)과 '학교별 학도동원기준'(1944년 4월 28일) 등 조선총독부가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수시 동원을 강제한 지침도 전시돼 있다.

이영도 기록원 학예연구관은 "공주의 한 국민학교와 관련한 기록을 보면 소화 19년(1944년)에 6학년 학생(12∼13세)을 부대 형태로 만들어 강제노역을 시킨 것을 찾아볼 수 있다"며 "일제는 단순히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노동력을 착취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관은 "8월에는 학생들을 동원해 소나무 껍질을 채취하도록 했다. 당시 일제는 항공유가 부족해 나무껍질에서 기름을 추출했다"면서 "한 달에 20차례나 노역에 강제동원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에는 간호부 및 여성 동원이 기록된 유수명부와 공탁서(供託書) 등 관련 문서도 소개됐다.

간호부 명부에는 적간(적십자간호부), 구간(구호간호부), 보간(보조간호부), 임간(임시간호부) 등 간호부 외에 타자수, 교환원, 세탁원 등도 동원된 내용이 들어 있다.

'나오라. 백의의 천사', 매일신보
'나오라. 백의의 천사', 매일신보

조선 주둔 일본군 군의부에서 조선인 여성을 대상으로 간호부를 모집해 육군병원에 배치하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이전까지 적십자병원을 중심으로 간호부를 양성토록 했다면 1943년 초부터는 군에서 직접 동원할 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여성 간호부 '백의의 천사'로 선전하며 전쟁터로 내몰아

조선총독부 도서관에서 이관된 도서, 신문, 잡지 등 30만여 점을 소장 중인 국립중앙도서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아동과 여성, 방공(防空) 동원과 관련된 자료를 엄선했다고 설명했다.

전시에는 조선의 아동·청소년을 '소년공', '산업전사' 등으로 부르며 동원한 문헌과 신문 자료가 포함됐다.

중일전쟁 이후 일제는 후방의 산업 노동자들도 전선의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보국(報國)한다는 논리로 산업보국운동을 시행했는데 전시된 신문에는 중학교 학생들을 광산과 공장 등에 동원하고 있는 실태가 잘 나타나 있다.

간호부 동원에 관한 신문자료는 여성 동원 실태를 보여준다.

일제는 여성 간호부들을 '백의의 천사'로 선전하며 침략전쟁의 최일선에 동원했다. 이를 위해 경성과 청진의 병원에 간호부 양성반을 설치하기도 했다. 일제는 간호부로 동원한 여성들에게 일본군 '가미카제'와 같은 자세를 요구하기도 했다.

'조선방공전람회기록'과 '언문 방공독본' 등 방공 관련 기록물도 함께 공개됐다.

전람회 기록에는 청계천 아래 대규모 지하시설을 구축해 방공호로 이용하려는 계획 등 전람회 개최 상황이 정리돼있다. 언문 방공독본은 진주만 공습 직후로, 한글 사용이 금지됐던 시기인 1941년 12월에 만들어진 것으로 가정의 공습 지침을 한글로 기재했다.

이들 문헌에는 침략전쟁 수행을 위해 방공을 명목으로 조선 사회를 전시체제로 개편하려는 일제의 의도가 잘 드러나 있다고 도서관 측은 설명했다.

학도동원비상조치요강
학도동원비상조치요강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이 각도지사와 직할학교장 앞으로 보낸 문서로, '근로가 곧 교육'이라 표방하고 있다. 이 요강에 따르면, 초등학교 4학년부터 대학생까지 동원의 대상이었다. [국가기록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조선인 미성년 동원사례, 국제기준·일본법상 명백한 불법"

전시에 이어 열린 학술포럼에서는 일제의 아동·여성 동원의 강제성과 불법성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일제강제동원 평화연구회 대표 연구위원인 정혜경 박사는 주제발표에서 "일제의 조선인 미성년 동원 사례를 보면 국제노동기구는 물론 일본 국내법 기준에도 못 미치는 명백한 불법이었다"며 당시 국제기준에 근거한 미성년 노동의 범위와 기준을 설정하고 다양한 사례를 발굴·분석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편 국가기록원 등 3개 기관은 이번 포럼과 전시를 계기로 그동안 각 기관 차원에서 진행됐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에 대한 기록 분석, 데이터베이스(DB) 구축 등 관련 사업과 연구를 공동 추진할 방침이다.

또 이번 자료 공동 전시 행사는 9월 4일까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진행된다. 일반인들도 이달 말까지 예약하면 관람할 수 있다.

이소연 국가기록원장은 "지난해부터 관련 기관이 협력을 진행해왔다. 앞으로도 각 기관이 강제동원 관련 명부와 기록을 지속해서 수집·정리·분석·공개하는 등 학계와 함께 강제동원 연구의 기반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서혜란 국립중앙도서관장은 "현재 여러 곳에 흩어져 사라지는 자료들이 많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료 수집이 어렵다"며 "그런 자료들을 수집하는 일에 예산이나 인력 등 국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관심을 호소했다.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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