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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명장 열전] ⑨ 기성복 시대 맞춤 양복 100년 가게 도전하는 양창선 명장

송고시간2020-09-0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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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배우겠다' 18살 때 고향 떠나…부산 최고 양복점 국정사 후계자 꿰차

화재로 점포 잿더미, 천막 영업으로 위기 극복…아들과 장인정신·기술 나눔 실천

양창선 명장(오른쪽)과 아들 필석 씨
양창선 명장(오른쪽)과 아들 필석 씨

[촬영 조정호]

(부산=연합뉴스) 조정호 기자 = "꼭 국정사를 100년 넘는 가게로 만들어 달라."

고향 제주에서 혈혈단신으로 부산에 와서 양복 기술을 배운 양창선(71) 명장은 국정사 설립자가 남긴 유훈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

부산 해운대에 있는 파라다이스호텔 지하 명품관 양복점 입구에 들어서자 양복을 입는 노신사와 아들 필석씨가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양복 대가와 첫 만남에 이어 자연스럽게 매장에 전시된 남성 정장에 시선이 쏠렸다.

맞춤 양복점 국정사
맞춤 양복점 국정사

[촬영 조정호]

이곳은 맞춤 양복 전문점이다.

백화점 등에서 볼 수 있는 양복점은 사람 체형을 기준으로 대량 생산하는 기성복을 판매하는 곳이다.

맞춤 양복점인 국정사는 개인 신체에 맞춰 수작업으로 양복을 만드는 곳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 어머니에게 태어난 쌍둥이도 성격과 생김새가 다르듯이 모든 사람 체형은 각자 다릅니다. 맞춤 양복은 기성복에서 다루는 표준 범위와 허용 오차를 뛰어넘어 구매자 마음과 몸을 살펴 정교하게 표현한 '맛이 있는 옷'입니다."

양 명장은 맞춤 양복이 필요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1966년 당시 18살의 나이에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부산으로 왔다.

'기술을 배워야 굶지 않고 잘 살 수 있다'는 선친의 말을 되새기며 무작정 집을 나왔지만, 막상 갈 곳이 없었다.

당시 최고의 번화가인 광복동에 휘황찬란한 양복점들이 눈에 들어와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찾아가는 곳마다 문전박대를 당했다.

국정사 대표 양창선 명장
국정사 대표 양창선 명장

[촬영 조정호]

그는 포기하지 않고 아침 양복점 문을 열 때 도와주고 청소도 같이했다.

양복점 사장 눈에 띄어 심부름하면서 일을 배워 보라는 허락을 받아낸 양 명장은 양복 공방에서 어깨너머로 양복기술을 배우는 기회를 얻었다.

그는 새벽에 일어나 가게로 나갔고 저녁 늦게 퇴근하는 근면 성실한 청년이었다.

모든 기술자가 퇴근한 후 공방에 홀로 남아 밤늦은 시간까지 실습을 반복하며 양복 만드는 기술을 익혔다.

이러한 습관은 50년이 지난 현재도 변하지 않았다.

아들 필석씨는 "아버지는 새벽 4시에 일어나 공방에 나가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일을 시작한다"고 귀띔했다.

양복 기술자로서 자리를 잡을 무렵 국정사와 인연을 맺었다.

국정사는 1946년에 범일동 조선방직 인근에 있는 부산 최초 양복점 '태양피복사' 전신이다.

국정사 설립자 김필곤 선생은 일본 강점기 최고 양복점인 정자옥오복점과 미나카이백화점 부산지점 양복부에서 조선인 최초 재단사로 일한 인물이다.

양창선 명장
양창선 명장

[촬영 조정호]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나라가 바로 서야 한다', '바른 옷을 만들겠다'는 의미로 국정사로 명칭을 변경했다.

1981년 부산지역 양복협회 초대회장을 역임한 김필곤 선생은 국정사 철학을 계승할 사람에게 회사를 물려주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국정사 설립자는 '자네라면 100년을 이어갈 사람'이라며 양 명장을 후계자로 인정했다.

국정사를 승계한 양 명장에게 다가온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해 12월 남포동에서 화재가 발생해 거액을 투자해 인수한 양복점이 4개월 만에 잿더미로 변했다.

원단 공급회사 거래가 끊기는 등 인생 최대 위기를 겪었다.

양 명장은 화마가 지나간 자리에 천막을 치고 6개월 동안 임시영업을 했고 단골손님들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때 손님들의 얼굴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양 명장은 잠시 눈시울을 붉혔다.

양창선 양복 명장
양창선 양복 명장

[촬영 조정호]

1980년대 후반부터 대기업이 기성복을 출시하면서 맞춤 양복에 위기가 찾아왔다.

맞춤 양복은 사양 산업 취급을 받았고 상당수 기술자도 전직해 양복 기술 인력에 공백이 생겼다.

양 명장은 "과거 기성복에 많은 고객을 빼앗겼으나 다시 맞춤 옷을 선호하는 고객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며 "맞춤 양복이 시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장인 정신으로 고객 요구를 충족시키고 품질을 높이는 것 뿐"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기술자로서 최고 명예인 대한민국 명장 중에는 자격증, 특허, 논문, 석·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이 많다.

하지만 양 명장은 오로지 양복 만드는 기술 하나로 대한민국 명장의 반열에 올렸다.

더 열심히 활동하라는 의미로 생각한 그는 국정사 직원들에게 장인정신과 양복 기술을 전수해 2011년 국제 장애인 기능올림픽대회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하는 성공 신화를 만들었다.

양 명장은 칠순을 넘겨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75년 역사의 국정사를 '100년 가게'로 만들 것을 다짐한다.

양창선 명장과 아들 필석씨
양창선 명장과 아들 필석씨

[촬영 조정호]

2005년 대한민국 명장이 된 아버지를 모습을 본 아들 필석씨는 대를 이어 양복 명장이 되겠다며 13년째 함께 국정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현재 자회사를 설립해 패션 회사를 운영 중이고 대학에서 패션 디자인 강의를 하면서 국내 패션산업의 재도약을 위한 연구도 하고 있다.

양 명장이 운영하는 국정사는 '기술을 통한 나눔과 실천'이라는 슬로건으로 기술개발과 나눔 정신을 대물림하고 있다.

양 명장은 "요즘 인터넷에서 '테일러숍' 또는 '예복 전문점'이라는 이름으로 맞춤 전문점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진정한 맞춤 점이 아닌 것 같다"며 "누구나 창업을 쉽게 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제대로 배워서 하라'고 조언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c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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