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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원의 헬스노트] '수술 기다리는 환자 vs 환자 기다리는 병원'

송고시간2020-11-20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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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뇌동맥류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수술하는 게 치료의 핵심입니다. 그런데도 당장 수술이 가능한 주변 병원을 제쳐두고, 소위 '빅5' 병원에서 수술받겠다면서 몇 개월씩이나 기다리는 게 정상적인 의료체계인가요?"

뇌동맥류 치료 권위자인 경희의료원 신경외과 최석근(51) 교수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민낯'을 토로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 오후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갑자기 응급의료센터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뇌동맥류 파열로 갑작스러운 두통과 의식 저하가 나타난 환자인데, 다른 병원에서 대기 예약을 걸고 치료를 기다리다가 문제가 생기자 우리 병원(경희의료원)을 찾은 것이었죠. 원래 (환자가) 다녔던 병원은 환자가 밀려있어 수술이 늦어진 겁니다. 당연히 뇌동맥류의 심각성을 알고 있는지라 밤 11시에 집에서 부랴부랴 나와 환자에게 코일 색전술을 시행했습니다."

뇌동맥류는 뇌혈관 벽 일부가 약해지면서 미세한 균열이 생기고 작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혈관 질환이다. 부풀어 오른 풍선이 얇아지듯 혈관 벽이 얇아지면서 빠르게 흐르는 피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 출혈이 발생하면, 심각한 뇌 손상은 물론 사망에까지 이르게 된다.

왼쪽 상단 박스가 파열된 뇌동맥류의 모습 [경희의료원 제공]

왼쪽 상단 박스가 파열된 뇌동맥류의 모습 [경희의료원 제공]

이 질환이 흔히 '머릿속 시한폭탄'으로 비유되는 건 파열되기 직전까지 특별한 전조증상이 없기 때문이다. 뇌동맥류가 터져 뇌출혈을 일으키게 되면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정도의 심한 두통과 함께 목덜미가 뻣뻣해지면서 구토, 마비 등 증상이 나타나고, 심하면 의식을 잃는다.

파열 환자 중 약 30%가 사망에 이르고, 생존자 중에서도 절반은 신경학적 결손이 발생해 영구장애를 겪을 수 있기 때문에 뇌혈관이 터지기 전에 진단하고 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치료법으로는 머리를 직접 절개해 치료하는 '클립결찰술'과 머리를 절개하지 않고 뇌동맥류 안에 넣은 미세한 관을 통해 코일을 넣어 치료하는 '코일색전술'이 있다.

최 교수의 응급수술로 다행히 환자는 양호하게 호전됐다. 하지만, 최 교수는 이후 이어진 보호자와의 면담에서 크게 낙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환자는 빅5 중 하나로 꼽히는 대형병원에서 외래 진료 후 뇌동맥류 진단을 받았지만 몇 개월째 치료를 기다리던 중이었다고 했습니다. 순간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 멍해졌습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고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도, 어느 병원에서는 수술까지 몇 개월을 기다려야 하고, 어떤 병원에서는 의료진들이 환자를 기다리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이런 현상에 나름의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환자가 많고, 가장 많은 경험을 하는 병원이 수술을 잘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고, 더욱이 그게 유명 대학병원이라면 치료에 대한 믿음이 더욱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 교수도 이에 동의했다.

그러나 병의 특성이 시간과 싸워야 하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조건 빅5와 같은 초대형병원만 선호했다가는 앞선 뇌동맥류 환자와 같은 위급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실제로 이웃 일본에서는 뇌동맥류 치료 분야의 최고 병원이 대학병원이 아니다. 200병상 남짓한 작은 병원이다.

오른쪽이 뇌동맥류가 파열된 영상 [경희의료원 제공]

오른쪽이 뇌동맥류가 파열된 영상 [경희의료원 제공]

문제의 해법은 무엇일까.

최 교수는 "우리도 일본처럼 작은 병원에서 환자들이 믿고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하려면 시설 투자를 활성화하고, 주요 특수병상을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고 꼬집었다. 더욱이 작으면서 유능한 이런 병원들은 코로나19 등의 감염병과 같은 국가 재난 상황에서도 유용한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게 최 교수의 지적이다.

중추신경계질환은 치료의 긴급성이 요구된다. 다른 질환은 잘못되는 경우라도 사회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크지 않지만, 뇌출혈 같은 경우에는 잘못되면 영구장애가 남아 재활, 요양 등 사회적으로 부담해야 할 비용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대형병원의 환자 쏠림 현상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좀 더 이른 시간에 시한폭탄을 제거할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이 되는데도 우리 사회가 째깍째깍 시간이 가고 있는 시한폭탄을 일부러 환자가 떠안고 있도록 하는 우(愚)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곱씹어볼 일이다.

bi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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