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가기간뉴스 통신사 연합뉴스
국가기간뉴스 통신사 연합뉴스
댓글

[연합시론] 첫 산재 청문회…'정책 국회'로 가는 디딤돌 되길

송고시간2021-02-22 16:02

댓글

(서울=연합뉴스) 산업재해가 잦은 대기업들의 최고경영자(CEO)들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의 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과 함께 업계 실태를 짚어보고 개선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가 성사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2일 현대건설·GS건설·포스코건설, 쿠팡·CJ대한통운·롯데글로벌로지스, 포스코·현대중공업·LG디스플레이 등 9개 회사의 최고경영자(CEO)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출석한 가운데 산업재해 관련 청문회를 개최했다. 환노위는 앞서 청문회 실시계획서에서 "2018년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했지만, 여전히 발생하는 산재 현황과 문제점을 분석하고 실제 산업현장의 상황을 파악하려 한다"고 밝혔다. 환노위 관계자는 "과거 잘못에 대한 질책보다는 향후 산재에 대한 기업 차원의 예방책을 점검하고 관련 프로그램 마련을 요구할 예정"이라고 청문회의 취지를 설명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들과 정부 부처 장관, 국회의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구체적 현안을 두고 토의하는 자리는 환노위는 물론 국회 전체로 범위를 넓히더라도 흔한 사례가 아니어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야당 의원의 제안에 여당이 흔쾌히 응해 의제나 증인 채택 등에 관해 별다른 마찰음 없이 청문회가 마련될 수 있었던 점도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 이날 청문회는 '정책 국회'의 새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고 업계 최일선의 목소리를 정책과 입법에 반영하는 과정으로 기능하기에는 미흡해 보였다. 의원들의 일방적인 질책에 마지못해 국민과 산재 피해자, 유가족에게 사과하는 CEO들과 정해진 결론을 훈계조로 늘어놓으면서 증인들에게 동의를 강요하는 듯한 의원들의 모습은 국정감사 등을 통해 흔히 볼 수 있었던 장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의원의 요구에 "생각이 짧았던 것 같다"며 산재 발생에 관해 사과해야 했던 한 증인은 "생각이 짧은 게 아니라 그게 회장님 인성"이라는 인신공격에 가까운 질책을 들어야 했다. '노동자의 불안전 행동'을 산재 발생의 한 이유로 든 증인은 여야를 막론하고 의원들이 "산업재해가 노동자들의 탓이라는 말이냐"고 비난을 퍼붓자 역시 사과하고 고개를 숙여야 했다. '불안전 행동'이 어떤 의미이고 어떤 상황에서 발생하며 이것을 막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에 관한 차분한 토의는 없었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산재 발생 사업장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한 입법이 잇따르는 상황에서도 산업재해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고 있는 현실은 처벌만이 능사가 아님을 보여준다. 이 같은 문제의식에 따라 규제 법규가 강화되는데도 산재가 여전히 빈발하는 근본 이유와 산재 예방을 어렵게 만드는 구체적 장애물, 안전한 작업 환경을 만드는 데 필요한 정책이나 입법의 방향 등에 관해 기업 일선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마련된 것이 이번 청문회다. 그러나 고압적인 의원들 앞에서 기업 CEO인 증인들은 고개를 숙이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업계 관계자나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의원들과 매우 전문적인 수준의 즉문즉답을 해가며 정책 현안에 관해 토의하는 미국 등 정치 선진국들의 청문회 수준을 처음부터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청문회의 의미가 아예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한 건설사 CEO는 최근 자사의 추락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냐는 의원의 질문에 "안전을 강화한 새 비계(건축 공사 때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임시가설물) 시스템을 도입한 덕분"이라고 소개하는 등 정책에 참고할 만한 발언들도 나왔다. 일부 의원들의 '유도성' 질의가 있기는 했지만, 산재 빈발 사업장 CEO들로부터 "안전보건계획을 수립해 예산과 조직, 시설 관련 이사회에 보고하고 승인을 받겠다"라거나 "하청업체의 안전관리를 위한 지원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구체적인 약속을 받아내기도 했다. 비록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고는 해도 첫술에 배부르기는 어려운 법이다. 첫 산재 청문회에서 제기된 문제점들을 보완해 더욱 생산적인 정책 논의의 장으로 발전시켜나가는 것은 물론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청문회가 다른 상임위원회로도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핫뉴스

전체보기

포토

전체보기

댓글 많은 뉴스

이 시각 주요뉴스

포토무비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