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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3·1운동 참여 안 하면 주최측이 방화·살인했다?

송고시간2021-03-03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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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윤모씨 "삼일운동 참여 안 하면 불 지르고 죽임" 주장

'방화·살인' 경고 격문은 존재…실제로 자행됐다는 기록은 없어

3·1운동 100주년 기념비
3·1운동 100주년 기념비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3·1운동 주최자들이 '만세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의 집에 불을 지르고, 심지어 살인까지 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다.

만화가 윤모 씨는 지난 1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삼일운동의 특징, 열심히 참여 안 하면 주최 측이 집에 불 지르고 죽임. 일본 순사보다 더 잔혹무도한 삼일운동 주최자들"이라고 썼다.

윤씨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로 당시 시위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작성된 격문과 선언서 10점을 제시했다. 이 격문 등에는 "만세를 부르지 않는다면 전멸할 것"이라거나 "불을 싸질러 그 집을 멸망시키도록 할 것", "학교 문을 열면 암살될 것임" 등의 표현이 있는데, 윤씨는 이를 방화와 살인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윤씨의 페이스북은 현재 계정이 폐쇄된 상태다.

윤씨의 글에 대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작자 미상인 격문 몇 개로 3·1운동 참여하신 분들을 전부 비하하는 발언"이라거나 "실제로 3·1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방화나 살인이 있었는지 증거를 대야 한다"는 등의 반응이 나온다.

'3·1운동 비하' 논란 만화가 윤 모씨 페이스북 게시물
'3·1운동 비하' 논란 만화가 윤 모씨 페이스북 게시물

[페이스북 캡처]

◇ 국사편찬위 DB에 '방화·살인으로 불참자 응징' 예고한 격문 등재

윤씨가 주장의 근거로 내세운 10점의 격문과 선언서는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의 '삼일운동 데이터베이스'에 등재된 '격문·선언서' 자료로 확인된다.

10점 중 7점은 3·1운동 기간 시위 참여를 독려하는 목적으로 길거리에 배포되거나 지역신문에 실린 격문이고, 2점은 3·1운동 1주년을 기념하는 단체행동에 참여하라는 격문이다. 나머지 한 점은 친일 단체인 '자성회(自省會)'에 가입한 자를 응징하겠다는 내용의 격문이다.

3·1운동 기간 중 작성된 7점의 격문에는 시위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을 상대로 방화, 살인 등을 하겠다고 경고하는 표현이 존재한다.

3·1운동 초기인 1919년 3월 14일 경기 고양군 용강면(현 서울 마포구 및 여의도 일대) 아현리에 배포된 '고시'라는 제목의 격문에는 "대한제국 독립 만만세를 부르짖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학교 선생들은 이완용과 같은 놈이라고 할 수 있다. (중략) 만약 학교 문을 열었다가는 선생들은 암살될 것임"이라는 경고성 표현이 있다.

또 같은 달 26일 경기 고양군 숭인면(현 서울 동대문구, 성북구, 강북구 일대)에 배포된 '광고'라는 제목의 격문은 "만세를 부르지 않는다면 여러 동리들은 석유 두 세 상자만 있으면 전멸할 것이다"라며 방화 가능성을 시사하는 내용을 담았다.

같은 해 4월 1일 독립단 충북지회가 발행한 신문 '충북자유보'에는 "끝내 관공서의 관리 자리를 물러나는 것을 통해서 독립운동에 호응하지 않는다면 뜻하지 않게 생명을 잃는 사태도 피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경고문이 실리기도 했다.

이외에 3월 22일 고양군 송포면(현 고양시 일산서구 일대) 면장에게 우송된 '경통'이라는 제목의 격문과 3월 23일 고양군 독도면(현 서울 광진구 일대)에 배포된 '반드시 마음에 새겨두고 조심하라는 글'이라는 제목의 격문, 3월 25일 고양군 은평면(현 서울 은평구 일대)에 배포된 '생각해 보시오. 생각해 보시오. 여러분이여!'라는 제목의 격문, 3월 26일 고양군 송포면에 배포된 '대한독립 만만세 아니 부르려면 불을 조심하시오'라는 격문에도 방화 또는 살인까지 할 수 있다는 경고 내용이 등장한다.

일단 3·1운동과 관련해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은 격문 가운데, 운동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들을 상대로 한 극단적 내용의 경고를 담은 글이 존재하는 것만큼은 사실인 셈이다.

(일제시대)-3·1운동
(일제시대)-3·1운동

3·1운동-자료-일제시대 독립운동.(본사자료)//2000.1.19. <저작권자 ⓒ 2000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윤씨 말대로 살인·방화 있었나?…격문 배포된 지역서 실제 방화·살인 자행된 기록 없어

그러나 운동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방화·살인을 예고한 격문이 존재했다는 사실과, 방화·살인이 실제 자행됐다는 사실은 엄연히 다르다. 만화가 윤씨가 주장한 것처럼 실제 방화·살인이 이뤄졌는지를 검증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국사편찬위원회의 3·1운동데이터베이스에 등재된 기록에 따르면 위와 같은 격문이 배포된 지역에서 3·1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일반 시민을 상대로 방화나 살인 같은 과격행위가 자행됐다는 기록을 찾을 수 없다.

'3·1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동네에 불을 지르겠다'는 내용의 격문이 배포된 고양군 숭인면에서는 3월 23일부터 27일까지 주민 수천 명이 참여하는 시위가 일어났지만, 관공서와 그 주위에 있던 민가 1채가 파손되고 전차 유리창이 파괴된 것 말고는 방화와 살인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3월 12일부터 26일까지 뚝도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을 주축으로 전개된 고양군 독도면 시위에서도 '만세를 부르지 않으면 뚝섬 천여 호에 불을 지르겠다'는 격문이 배포됐지만, 방화와 살인이 발생했다는 기록은 없다. 일제 헌병대의 발포에 성난 시위대 일부가 독도면사무소 집기를 부수고 면장의 집에 돌을 던졌다는 기록만 존재할 뿐이다.

또 고양군 용강면에서는 시위대가 시위 도중 추위를 피해 면사무소에 난입했다거나, 임시군용전화선을 절단했다는 등의 사소한 소요 행위까지 기록됐지만 마찬가지로 방화나 살인을 했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외에 격문이 배포된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로 방화나 살인이 자행됐다는 기록은 없다.

이들 지역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일반 시민을 상대로 한 방화나 살인이 자행됐다는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일부 시위대가 경찰서나 헌병주재소를 습격해 순사나 군인을 살해했다거나 면사무소 등 관공서나 일본인 상점을 파괴하거나 불을 질렀다는 기록들은 존재한다. 또 강원도 이천군과 평안북도 박천군에서 일제에 협력한 조선인 가옥에 3·1운동 관련자들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방화가 발생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독립운동사 권위자인 A교수는 3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당시 일제는 사소한 소요행위까지 기소해 처벌했는데,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을 테러해 기소했다는 사료는 찾을 수 없다"며 "말도 안 되는 주장까지 사학자들이 바로 잡아야 한다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3·1운동 발발 당시 지도부가 '비폭력' 강조했으나 탄압·방해 거세지면서 과격 표현 등장

아울러, 방화·살인 경고가 담긴 격문만을 근거로 3·1운동의 '비폭력 저항' 정신을 폄훼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충북자유보에 실린 경고문을 제외한 6점의 격문은 작성자가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격문은 오히려 평화적인 시위를 당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 민족대표 33인은 '3·1독립선언서'에서 "오늘날 우리의 이 행동은 정의와 인도 그리고 생존과 존엄함을 지키기 위한 민족적 요구에서 나온 것이니, 오직 자유로운 정신을 발휘할 것이며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치닫지 말라"는 공약을 내걸어 비폭력 평화시위를 선언했다.

또 3월 1일 발행된 '조선독립신문 제1호'는 "어느 해 어느 날까지라도 우리 이천만 민족이 마지막 한 사람이 남더라도 난폭한 행동이나 파괴적 행동은 결단코 하지 마시오"라는 3·1운동 민족 대표의 당부가 실리기도 했다.

초기 운동의 지도부가 비폭력을 저토록 강조했음에도 과격한 격문이 등장한 것은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하면서 일제의 탄압이 거세지고, 자성회와 같은 친일단체의 방해가 빈발한 것과 관련 있는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만화가 윤씨가 근거로 내세운 작성자 미상의 '자성회에 주의할 것을 널리 알림'이라는 격문도 3·1운동에 대한 일제의 탄압과 친일 단체의 방해가 극심한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격문은 "이완용을 본받은 놈들이나 자성회의 입회 원서에 스스로 도장을 찍을 것이다. 그러한 경우에는 반드시 암살을 하거나 불을 싸질러서 패가망신 하도록 할 것이니 충분히 주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1919년 4월 결성된 자성회는 3·1운동 참여자들 설득해 귀가시키거나 이에 불응하는 자들을 경찰에 신고하는 방식으로 3·1운동의 전국적 확산을 방해한 대표적인 친일 단체다.

국사편찬위원회 근대사 위원인 정재정 서울시립대 교수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3·1운동에 대한 일제의 탄압과 민족반역자들의 방해가 거세지자 일부 지역에서 시위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과격한 표현의 격문이 배포된 것"이라며 "일부 과격한 표현을 내세워 3·1운동 정신 전체를 비하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3·1운동시 붙잡힌 애국지사의 모습
3·1운동시 붙잡힌 애국지사의 모습

3·1운동시 붙잡힌 애국지사의 모습(연합뉴스 본사자료) 2000.2.23<저작권자 ⓒ 2000 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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