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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일기장 속 인간적 면모

송고시간2021-04-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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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2월∼1970년 3월…좋아하던 시·연정 담긴 글도

전태일이 쓴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내가 죽으면 사랑하는 이여'
전태일이 쓴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내가 죽으면 사랑하는 이여'

[노동자역사 한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문다영 기자 = "내가 죽으면 사랑하는 이여 / 날 위해 슬픈 노래 부르지 마세요 / 머리맡에 장미꽃도 심지 말고 / 그늘 많은 전나무도 심지 마세요…기억하고 싶거던 기억해주세요 / 잊고 싶거던 잊어버리고"(전태일이 일기장에 필사한 시)

봉제 노동자로 일하다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분신한 고(故) 전태일(1948∼1970) 열사의 친필 일기장 원본이 유족 결정으로 반세기 만에 처음 공개됐다. 일기장은 전태일이 스무 살이던 1967년 2월 시작돼 1970년 3월까지 약 3년간 쓰였으며 낙서와 그림 등을 포함해 총 170쪽 분량이다.

전태일의 일기는 전태일기념사업회가 1988년 펴낸 그의 수기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를 통해 대부분 알려졌지만, 일부 낙서와 그림, 짧은 글 등은 담기지 못했다.

30일 연합뉴스가 살펴본 친필 일기장 원본엔 미래를 고민하고 아름다운 시를 골라 필사하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모습이 남아 있다.

정경원 노동자역사 한내 사무처장은 "사랑 문제나 미래에 대한 고민 등 어린 나이에 누구나 할 법한 생각을 한다"며 "고민이 많던 평범한 청년이 가난과 사회환경 속에서 투사로 자랐다"고 말했다.

앞부분인 1967년 2월 20일 새벽 전태일은 "시간은 가지 않고 잠은 오지 않는데 시나 하나 골라 보자"며 김소월의 '산유화'를 두 번 쓰고 대나무를 그렸다. 또 김소월의 '잊었던 맘', 영국 시인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내가 죽으면 사랑하는 이여' 등의 시를 필사했다.

'금희 누나'를 떠올리며 "그대는 영원한 천사와 같이. 사랑해선 안 될 사랑 부디 행복하소서"라고 연정이 담긴 글을 쓰다가도 "부디 동심을 버리고 현실에 냉정하고 충실하라"며 스스로 다그치기도 했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일기 초반은 좋아하는 누나를 생각하는 등 상대적으로 낭만적 경향을 띤다"며 "사망한 1970년으로 갈수록 이런 경향은 차츰 줄어든다"고 했다.

전태일이 "대학 입시를 보자"고 다짐하는 일기
전태일이 "대학 입시를 보자"고 다짐하는 일기

[노동자역사 한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미래에 대한 고민과 가난에 관한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날짜가 없는 어느 일기에는 "남은 다하는데 나라고 못 할 리가 어디 있냐. 내년 3월에는 꼭 대학 입시를 보자"라며 마음을 다잡는다.

이어 "설마 3일 금식에 죽지야 않겠지. 정신 수양의 금식이야. 먹을 게 없어서가 아니다"라면서도 "조선호텔 앞에서부터 미도파 앞 그리고 국립극장 앞과 명동 뒷골목을 쓸며 담배꽁초를 주워 모아 생계를 유지할 때도 눈물을 보지 않았다"며 일상을 담담히 드러냈다.

영어를 공부한 흔적이 보이기도 한다. 전태일은 "한결같은 낙숫물이 돌을 판다(constant dropping wears away the stone)", "돈이 힘이다(money is power)" 등 영어 격언을 따라 썼다. 그는 당시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 적어 연습해보거나 유행가를 받아적기도 했다.

천정환 교수에 따르면 일기장은 분신 항거 이후 가족들이 처음 발견했다. 개인적 기록인 만큼 가족들도 몰랐던 고민과 일상이 오롯이 적혀 있었다. 열악한 노동환경을 진지하게 고민하며 습작 소설을 써보고, 기업가가 된다고 가정하고 사업계획서를 직접 만들어보는 등 다양한 면모가 엿보인다.

그러나 당시 기자들이 일기장 일부를 뜯어가 기사를 작성하기도 해 지금까지 찾지 못하고 유실된 부분도 적지 않다고 한다.

전태일의 옛 동지들은 다음 달 1일 노동절을 맞아 전태일을 기리며 청계천 전태일 다리에서 일기장 일부를 낭독할 계획이다. 보존처리 중인 일기장은 전산화를 거쳐 온라인으로 일반에도 공개된다.

전태일이 쓴 영어 격언
전태일이 쓴 영어 격언

[노동자역사 한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zer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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