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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피해자가 폭행영상 삭제해도 증거인멸죄?

송고시간2021-06-04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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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이용구 요구에 폭행영상 삭제한 혐의'로 택시기사 입건해 논란

남의 형사사건 증거없애면 피해자 신분이라도 범죄…수사개시前이라도 성립

자기사건 증거인멸 타인에 요청한 자, 원칙상 不처벌…'방어권 남용' 인정되면 예외

검찰, '이용구 폭행' 택시 영상·GPS 확보…경찰 부실수사 논란 (CG)
검찰, '이용구 폭행' 택시 영상·GPS 확보…경찰 부실수사 논란 (CG)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경찰이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에게 폭행당한 택시 기사를 증거인멸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다.

4일 경찰 등에 따르면 이 전 차관의 '택시 기사 폭행' 부실 수사 의혹을 조사 중인 서울경찰청 청문·수사 합동진상조사단은 이 전 차관의 폭행 정황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을 삭제했다는 의혹과 관련, 피해자인 택시 기사 A씨를 수사 중이다.

경찰은 이 전 차관이 A씨에게 폭행 당시의 상황이 녹화된 블랙박스 영상의 삭제를 요구했고, A씨가 이를 받아들여 실행했는지 여부를 확인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피해자인 A씨를 입건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온라인상에서는 '정권 유력인사를 곤경에 빠뜨린 데 대한 괘씸죄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이 전 차관을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 혐의로 수사하랬더니 뜬금없이 피해자인 택시 기사를 범죄자로 몰고 있다"라거나 "합의과정에서 가해자의 요청으로 영상을 삭제한 것에 불과한데 이를 위법행위로 보는 것은 수사권 남용"이라는 등의 반응이 나온다.

이에 연합뉴스는 관련 법률과 판례를 토대로 증거인멸죄의 성립 요건과 적용 범위 등을 따져봤다.

◇ 피해자가 증거 없애도 증거인멸죄 성립…수사개시 여부와 무관

많은 네티즌이 의문을 품는 대목은 실제 '피해자'가 '가해자'의 요청을 받고 증거를 없앤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법리상 증거인멸죄가 성립하느냐는 것이다.

증거인멸죄를 규정한 형법 155조는 '다른 사람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7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한다.

'다른 사람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범죄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이번 사건처럼 피해자가 가해자의 폭행 정황이 담긴 영상을 삭제한 경우에도 증거인멸죄가 성립할 수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증거인멸죄는 타인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하는 것이고, 주관적 구성요건으로 그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성립한다"며 "원론적으로 범죄의 주체에 관한 제한은 특별히 없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라고 해서 특별히 증거인멸죄의 범죄 주체에서 제외하는 법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또 일각에서는 본격 수사가 시작되기 전에 영상을 삭제했기 때문에 경찰 수사를 방해한 것은 아니므로 증거인멸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주장도 하지만, 법원 판례는 수사 개시 여부와 상관없이 증거인멸죄가 성립된다는 쪽이다.

대법원은 2013년 11월 판결에서 "인멸행위 시에 아직 수사절차가 개시되기 전이라도 장차 형사 사건이 될 수 있는 경우 증거인멸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따라서 택시 기사가 자신이 피해자인 폭행사건 발생 후 '합의 과정'에서 이 전 차관의 요구로 폭행 영상을 삭제한 것으로 확인된다면 수사 개시 전에 이뤄진 행위라 할지라도 법리적으로는 증거인멸죄가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조사 마친 이용구 차관
조사 마친 이용구 차관

(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택시기사 폭행' 사건 이후 증거인멸 교사 혐의 등으로 소환 조사를 받은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5월 31일 새벽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를 나서고 있다. 2021.5.31 mon@yna.co.kr

◇ '자기사건 증거인멸 교사'는 원칙적 처벌 불가…수사에 영향 끼쳤다면 예외적 처벌 가능

폭행 피해자인 택시 기사를 증거인멸죄로 처벌한다면 증거인멸을 요구한 이 전 차관도 증거인멸을 교사(敎唆, 범죄 의사가 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범죄를 결의해 실행하게 한 행위)한 혐의로 처벌할 수 있을까.

일단 법원은 증거인멸죄가 다른 사람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한 경우에만 성립하기 때문에 자신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하라고 교사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은 2016년 9월 '정치인이 측근을 시켜 불법정치자금을 숨긴 사건'에서 "자신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은닉을 위해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처벌되지 않는다"며 무죄 판결한 바 있다.

증거은닉과 증거인멸은 법리적으로 같은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해당 판례에 따르면 만약 택시 기사가 증거인멸죄로 처벌되더라도 이 전 차관은 '자신의 형사 사건'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증거인멸 교사죄 적용을 면하게 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법원은 2014년 4월 대법원 판결에서 "자신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하라고 교사한 행위가 방어권 남용이라고 볼 수 있을 때는 증거인멸 교사죄로 처벌할 수 있다"며 예외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뒀다.

법원은 또 이 판결에서 방어권 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인멸 행위의 태양과 내용, 범인과 행위자의 관계, 행위 당시의 구체적 상황, 형사사법작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험성의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도록 한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결국 실제로 영상을 삭제했다면 이 행위가 형사사법작용인 수사에 장애를 끼쳤거나 끼칠 정도의 행위였는지가 증거인멸교사 성립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표 수리된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사표 수리된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서울=연합뉴스) 택시 기사 폭행 논란으로 사의를 표한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의 사표가 3일 수리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 30분께 이 전 차관의 사표를 수리했다. 이 전 차관이 5월 26일 오전 경기도 과천 법무부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2021.6.3 [연합뉴스 자료사진] jeong@yna.co.kr

◇ '택시기사 불기소하고 이 전 차관만 기소'도 법리적으로 가능

한편 법조계 일각에서는 수사가 마무리되면 검찰이 증거인멸 건과 관련, 폭행 가해자인 이 전 차관만 '교사' 혐의로 재판에 넘기고 피해자인 택시 기사는 불기소처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피해자 처벌이 국민감정에 반하는 측면 뿐 아니라, 애초 택시 기사를 증거인멸 혐의로 입건한 것도 이 전 차관의 증거인멸교사 혐의를 수사하기 위한 요식적 행위였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형사법 체계상 증거인멸교사죄로 처벌하기 위해선 우선 정범(正犯, 범죄를 실제로 실행한 자의 범죄)인 증거인멸죄가 성립해야 하기 때문에 택시 기사를 불가피하게 입건한 것이지 실제 처벌을 의도한 것은 아닐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러한 전망대로 된다고 가정하면, 법리상 증거인멸죄가 성립해야하기 때문에 택시 기사에게 범죄(증거인멸) 성립을 부정하는 '혐의없음' 처분 대신, 범죄는 성립하지만 처벌하지 않겠다는 취지인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질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현직 법조인은 "증거인멸 혐의와 증거인멸교사 혐의에 대해 함께 수사가 실시된 후 정범의 증거인멸 혐의는 기소유예 처분하고 교사범의 증거인멸교사 혐의만 재판에 넘기는 방식도 법리적으로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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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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