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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각하된 강제징용 손배소…한일 외교노력 더욱 절실해졌다

송고시간2021-06-07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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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일본 전범 기업들을 상대로 낸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법원에 의해 각하됐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했을 때 본안 심리 없이 재판을 끝내는 결정이다. 법정 다툼도 벌여보지 못하고 재판의 입구에서 사실상 원고패소 결정이 내려진 셈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의 판결 이유는 간단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의 결과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하거나 포기됐다고 할 수는 없으나 소송으로 이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는 게 핵심이다. 원고들의 청구를 받아들여 본안 판결이 확정되고 강제집행까지 이뤄질 경우에는 국가 안전보장과 질서유지라는 헌법상 대원칙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소송 제기 이래 6년간 오늘의 결정만을 기다려왔을 원고 측이나 굴곡진 일제 강점의 역사를 직간접 체험한 우리 국민 정서에 견주어 볼 때 실망스러운 결론이다. 한일 양국 사이에 강제징용 배상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 진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소송을 통해 개인 청구권을 행사하고자 하는 자구적 노력마저 원천 차단되어서다. 특히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한 최대 규모의 손배소였기에 각하 결정은 원고 측에 심대한 타격을 안겨준 것은 물론, 향후 열릴 항소심 재판과 유사 소송의 전망까지 일거에 어둡게 하고 말았다.

이번 각하 판결은 디테일에서도 여러모로 아쉬운 구석이 있다. 먼저 한일 과거사와 관련한 소송에서 원고 측에 거푸 패배를 안겼다는 점이다. 앞서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4월 이용수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배소를 각하한 바 있다. 당시 판결은 일본 정부 배상책임을 인정한 올해 1월의 판결과 상반된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번 강제징용 판결 역시 2018년 10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 행사를 인용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뒤집기로 귀결됐다. 담당 재판부의 독립성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일 수도 있겠으나, 최근 들어 원고 측에 불리한 쪽으로 사법부 판단이 바뀌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합리적 의심을 하게 만든다. 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을 대리한 변호사가 대법원 판례에 정면으로 배치되어 매우 부당하다며 즉각 항소의 뜻을 밝힌 것은 그때그때 다른 판결 결과와 관련해 답답함을 호소한 몸부림으로 이해된다. 재판부가 애초 10일로 예정된 선고 일정을 앞당긴 것도 매끄럽지 못했다. 재판부는 법정 평온과 안정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 선고 기일을 변경하고 소송대리인들에게 전자 송달과 전화 연락 등으로 고지했다고 설명했으나, 재판의 역사성을 염두에 뒀다면 기습작전하듯 선고할 일은 아니었다고 본다. 원고들이 오랜 기간 학수고대해 온 판결이었다면 절차와 격식도 존중되어야 마땅했다.

다만, 결과론적으로 일본의 입지를 살려주는 듯한 이번 판결은 과거사 문제로 옴짝달싹 못 하는 한일 외교에는 숨 쉴 공간을 터주는 역설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우리 정부 당국자가 한일관계 등을 고려하면서 일본과 해결방안을 협의할 수 있다는 열린 자세를 보인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사법적 해결 통로가 막혔다면 양국 정부와 모든 당사자가 수용 가능한 우회적 해결방안을 외교적으로 뚫어보겠다는 뜻이다. 문제는 마주쳐 소리를 내야 할 일본의 태도다. 일본은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개인 청구권까지 한꺼번에 소멸했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뇐다. 오히려 우리 정부 쪽에 결자해지를 촉구할 정도로 청구권을 포함한 과거사 문제에서는 타협의 여지를 일절 보이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도쿄올림픽 지도에 독도를 자국 영토인 양 표기한 문제를 놓고 양국 간 갈등 전선만 넓어진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번 주 영국 런던에서 개최되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에 한때 기대감이 모이기도 했으나,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스가 총리가 올림픽 후 중의원 해산과 총선 실시를 통해 재신임을 얻으려 한다면 한일관계에서 강경 기조를 이어갈 공산이 크다. 일본이 이처럼 내부 정치 논리에 얽매여 올바른 역사 인식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한일 과거사의 법정밖 해결은 요원할 것이다. 일본 정부는 더는 늦기 전에 과거사로 인해 고통받아 온 징용 및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과의 대화에 나서야 한다. 피해자들의 짧은 여생을 생각한다면 지체할 겨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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