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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먹방] 세월과 함께 익어가는 술 향기

송고시간2021-08-2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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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전통술 박물관 산사원

(포천=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예로부터 물이 좋아 술 빚는 사람이 많았다는 경기도 포천의 운악산 기슭, 우리 술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평생 전통주를 빚는 데 헌신해 '누룩왕'으로 불렸던 우곡 배상면 선생의 양조 철학이 깃든 곳이다.

산사원의 증류주 숙성고인 '세월랑' [사진/조보희 기자]

산사원의 증류주 숙성고인 '세월랑' [사진/조보희 기자]

포천시 화현면 화현리에 있는 산사원은 '산사춘'과 막걸리 '느린마을'로 유명한 배상면주가가 운영하는 전통술 박물관이다.

기업에서 운영한다고 하니 자사 술을 홍보하는 홍보관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직접 방문해 둘러보면 이런 편견은 곧 사라진다.

지금은 보기 힘든 오래된 양조 도구와 관련 고서 등 3천여점을 전시한 이곳에서 굴곡진 우리 술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가양주'에 대한 설명이 들린다.

가양주는 집에서 빚은 술을 일컫는다.

전시된 양조 도구들을 살펴보니 어딘가 익숙하다. 사실 과거 술을 만들 때 썼던 도구들은 대부분 논밭에서, 혹은 부엌에서 쓰던 것들과 비슷하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집에서 술을 빚어 그 술로 손님을 접대하고, 명절을 나고, 제사를 지냈다. 술 빚는 일이 농사를 짓고 음식을 만드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누룩 [사진/조보희 기자]

누룩 [사진/조보희 기자]

우리 술을 빚을 때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누룩을 잘 만드는 것이다.

'누룩'이란 밀로 메주같이 덩어리지게 만들어 곰팡이와 효모를 번식시킨 것이다.

먼저 밀을 껍질째 거칠게 빻아 되게 반죽을 하고, 이것을 누룩 틀에 담아 발뒤꿈치로 꼭꼭 밟아 디딘 후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두고 곰팡이와 효모 씨를 앉혀 띄운다.

잘 디딘 누룩은 곰팡이가 속속들이 고루 피고 향긋한 냄새가 나게 된다. 잘 띄운 누룩에 쌀을 더해 담근 것이 밑술이다.

밑술을 담그는 쌀은 밥을 지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이 씻어야 한다. 백번 씻는다고 하여 '백세'(百洗)라는 말도 있다. 이렇게 불순물을 최대한 씻어내야 술맛이 좋아진다고 한다.

소주를 증류할 때 쓰였던 소줏고리 [사진/조보희 기자]

소주를 증류할 때 쓰였던 소줏고리 [사진/조보희 기자]

술을 빚을 쌀을 처리하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전통주 하면 흔히 시루에 쪄낸 고두밥을 떠올리지만, 생쌀 가루에 뜨거운 물을 부어 설익힌 상태로 사용하기도 하고, 백설기를 찌거나 죽을 쑤기도 했다.

쌀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술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고 한다.

전시된 물품들을 눈으로 훑으며 스치듯 관람하기보다는 벽면에 새겨진 글귀들을 함께 읽으며 찬찬히 관람해보자.

우리 술이 긴 역사 속에서 얼마나 다양하게 발전해왔는지, 또 소박하지만 찬란했던 그 전통이 얼마나 오랫동안 단절을 겪어야 했는지 알 수 있다.

박물관에 전시된 증류기 [사진/조보희 기자]

박물관에 전시된 증류기 [사진/조보희 기자]

가양주의 전통이 타격을 입은 것은 1909년 일제가 주세법을 공포하면서부터다.

허가받지 않은 이들이 술을 빚는 것을 법으로 금하면서 다양했던 전통주의 맥이 끊겼다.

1916년에는 일제가 주세령을 공포했다. 주류의 생산과 유통을 통제해 세원을 확대하기 위해서였다.

주세법 시행 첫해인 1909년 20만2천770원이었던 세수가 1916년 112만7천945원으로 6배 가까이 증가한 것은 일제가 주세를 통해 얼마만큼 치밀하게 경제 수탈을 가속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광복 이후에도 가양주는 일제의 주세법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정책에 의해 여전히 밀주 취급을 받았다.

특히 1965년 시행된 양곡관리법은 쌀로 술을 빚지 못하게 해 쌀이 주원료인 우리 술의 근간을 흔들었다.

쌀 소주 공장만 하더라도 전국에 300여개가 있던 것이 문을 닫았고, 대형자본을 등에 업은 희석식 소주 시장이 급속히 팽창했다.

자가 양조가 합법화되고, 이에 따라 집에서도 다시 술을 빚어 마실 수 있게 된 것은 90여년만인 1995년에 이르러서다.

박물관 지하에는 배상면주가의 제품을 시음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일반 매장에서 접하기 힘든 배상면주가의 다양한 제품을 자유롭게 맛볼 수 있다.

우곡기념관 벽면을 빼곡히 채운 배상면 선생의 연구 노트 [사진/조보희 기자]

우곡기념관 벽면을 빼곡히 채운 배상면 선생의 연구 노트 [사진/조보희 기자]

시음장 옆에 있는 우곡 기념관도 빼놓지 말자. 국순당을 설립한 고 배상면 회장의 기념관이다.

한평생 누룩과 양조 연구에 매달렸던 그가 손수 제작한 각종 양조 기계와 벽면을 빼곡히 채운 그의 연구 노트에서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박물관 내부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면 또 하나의 볼거리가 펼쳐진다.

4천여 평에 달하는 '산사정원' 한가운데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커다란 술독 400여개가 늘어서 있다.

세월과 함께 술이 익어가는 증류주 숙성고 '세월랑'이다.

650ℓ 용량의 항아리에는 알코올 도수 55도 정도 되는 증류주가 담겨 있다.

줄지어 서 있는 술독 사이를 느릿느릿 걸어가니 항아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긋한 내음이 마스크 안으로 스며든다.

400여개의 술독이 늘어서 있는 증류주 숙성고 '세월랑' [사진/조보희 기자]

400여개의 술독이 늘어서 있는 증류주 숙성고 '세월랑' [사진/조보희 기자]

세월랑을 위에서 보면 밭 전(田)자 모양이다.

여든 여덟개의 소나무 기둥을 휘어진 그대로 껍질만 벗겨 내고 세운 뒤 판재로 지붕을 이었을 뿐 벽은 없다.

일교차와 연교차가 큰 포천의 자연환경을 활용해 증류주 숙성에 최적의 환경을 만든 것이다.

옹기 독은 스스로 숨을 쉬는데 일교차가 크면 수축과 팽창을 거쳐 더욱 크게 숨을 쉬게 되고 여기에 담긴 술은 넘나드는 산소와 결합해 미묘한 숙성이 진행된다고 한다.

이렇게 바람이 통하는 곳에서 1년간 초기 숙성을 거친 술은 어둡고 온도가 일정한 지하 숙성고로 다시 옮겨져 중숙과정을 거치게 된다.

산사정원 한쪽에는 지금은 보기 힘든 근대 양조 기계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조보희 기자]

산사정원 한쪽에는 지금은 보기 힘든 근대 양조 기계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조보희 기자]

세월랑 옆에는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양조장에서 쓰던 낡은 기계들이 보존되어 있다.

1877년 지어진 부안의 만석꾼 집 쌀 창고를 뜯어다 세운 누룩 전시공간인 '부안동', 해인사 장경각과 병산서원 만대루를 본떠서 지은 누각인 '우곡루', 담양 소쇄원의 광풍각을 그대로 본떠서 지은 정자인 '취선각'도 있다.

시음을 한 뒤 이곳에 앉아 운악산 줄기를 바라보며 산사정원의 정취를 즐기다 보면 시음하면서 생긴 취기도 어느덧 사라져 버릴 것 같다.

산사정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우곡루 너머로 창덕궁의 낙선재를 축소해 지은 누각인 자성재가 보인다. [사진/조보희 기자]

산사정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우곡루 너머로 창덕궁의 낙선재를 축소해 지은 누각인 자성재가 보인다. [사진/조보희 기자]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8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isun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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