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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어때] 위로의 공간, 치유의 공간

송고시간2021-08-1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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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서울=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서울 서소문 밖 네거리는 고통의 역사가 새겨진 장소다.

조선 시대 공식 참형지였던 이곳에서 권력의 폭력성과 시대적 편협성에 항거했던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땅에 새겨진 아픔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도 위로와 치유를 선사한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내 하늘광장에서 올려다본 하늘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제공]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내 하늘광장에서 올려다본 하늘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제공]

◇ 서소문 밖 네거리

조선 시대 서울에는 사대문(四大門)과 사소문(四小門)이 있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사대문은 흥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숭례문(남대문), 숙정문(북대문) 등 4개의 커다란 성문이다.

사소문은 이 사대문 사이사이에 있었던 작은 성문들이다.

동북쪽의 동소문은 혜화문, 서남쪽의 서소문은 소덕문, 동남쪽의 남소문은 광희문, 서북쪽의 북소문은 창의문으로 불렸다.

사소문 중 하나인 서소문 밖 네거리는 큰 시장이 있었던, 일상의 희로애락이 가득했던 삶의 터전이었다.

한강의 지천인 만초천이 남북으로 흘렀던 덕분에 각 지방으로 오가는 물류가 집중되고, 사람이 몰렸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서소문 밖, 약초밭이 있었던 약현을 "곡물이 폭주하고 수레가 부딪치고 사람이 어깨를 부딪치는 곳이다"라고 기록했다.

서소문공원에서 박물관으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에서 조완희 작가의 조각품인 '서소문 밖 연대기'를 볼 수 있다. 신유박해(1801), 기해박해(1839), 병인박해(1866)가 일어난 연도와 작은 십자가들로 이뤄진 칼의 형상을 통해 역사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사진/조보희 기자]

서소문공원에서 박물관으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에서 조완희 작가의 조각품인 '서소문 밖 연대기'를 볼 수 있다. 신유박해(1801), 기해박해(1839), 병인박해(1866)가 일어난 연도와 작은 십자가들로 이뤄진 칼의 형상을 통해 역사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사진/조보희 기자]

언제나 왁자지껄했던 이곳은 조선 시대 공식 참형지이기도 했다. 수많은 사람이 오갔기에 공포와 경각심을 주기에 적합했다.

조선 후기 이곳에서 공개 처형당한 이들은 주로 성리학적 통치 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인식된 이들이었다.

물론, 천주교도들도 많았다.

신유박해(1801)를 시작으로 기해박해(1839)와 병인박해(1866)를 거치며 수많은 교인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어 한국 천주교 최대의 순교성지로 불린다.

박물관 입구에 있는 이경순 작가의 '순교자의 칼'. 조선 시대 죄인들의 목에 씌웠던 칼을 형상화했다. [사진/조보희 기자]

박물관 입구에 있는 이경순 작가의 '순교자의 칼'. 조선 시대 죄인들의 목에 씌웠던 칼을 형상화했다. [사진/조보희 기자]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죽음과 고통의 역사는 잊혀 갔다.

일제가 서소문을 강제로 철거하고 경의선을 개통하면서 접근로가 차단돼 점차 사람의 발길이 끊겼기 때문이다.

1973년에는 근린공원으로 지정됐지만, 철로와 고가로 사방이 가로막혀 일상적인 통행이 어려웠고, 재활용 쓰레기 집하장과 공영 주차장 등이 공원 지하에 건설돼 시민의 휴식 공간이라기보다는 쓰레기를 처리하고 노숙인들이 기거하는 기피 공간으로 전락했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이렇게 잊혀 가던 역사적 공간을 되살리려는 기나긴 노력 끝에 2019년 개관했다.

이곳이 기피 공간으로 방치되는 것을 안타까워한 천주교 측이 2011년부터 역사 유적지 조성 사업을 추진했고, 8년 만에 결실을 봤다.

차고지가 있던 지하에 박물관이 조성되고, 지상의 공원도 새롭게 단장하면서 버려졌던 공간은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 시민이 휴식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 서소문역사공원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처형된 순교자들을 기리는 현양탑이 공원 입구에 서 있다. [사진/조보희 기자]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처형된 순교자들을 기리는 현양탑이 공원 입구에 서 있다. [사진/조보희 기자]

탐방은 지상 공원에서부터 시작된다. 서소문역사공원이라 이름 지어진 공원 입구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세 개의 탑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처형된 수많은 순교자를 기리는 현양탑이다.

여기서 생을 마감한 순교자 가운데 성인 혹은 복자의 반열에 오른 71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현양탑에서 조금만 더 가면 벤치에 누워있는 노숙인 조각상이 보인다. 담요 밖으로 삐져나온 발등에 못이 박혔던 흔적이 보인다.

티모시 슈말츠의 작품인 '노숙자 예수'가 공원 벤치에 누워있다. [사진/조보희 기자]

티모시 슈말츠의 작품인 '노숙자 예수'가 공원 벤치에 누워있다. [사진/조보희 기자]

캐나다 작가 티모시 슈말츠가 노숙인의 모습으로 예수를 표현한 '노숙자 예수'다.

이 상이 처음 어느 성당 앞에 설치됐을 때 신성모독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노숙인을 기리기 위해 이 작품을 교황청에 설치하면서 유명해졌고, 이후 세계 각지에 설치됐다고 한다.

벤치 뒤쪽에 있는 뚜께우물은 이곳이 처형장소로 사용됐을 당시 쓰였던 우물을 복원한 것이다.

평소에는 우물의 덮개를 덮어 두고 있다가 사형이 집행되면 뚜껑을 열고 피 묻은 칼을 씻었다고 전해진다.

사형 집행 후 피 묻은 칼을 씻었던 뚜께우물 [사진/조보희 기자]

사형 집행 후 피 묻은 칼을 씻었던 뚜께우물 [사진/조보희 기자]

◇ 지상에서 지하로…땅과 하늘이 만나는 곳

지상 공원에서 긴 통로를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박물관 입구가 나온다.

붉은 벽돌로 에워싸여 있는 박물관 입구 앞 '빛의 광장'에는 조선 시대 죄인들의 목을 옥죄었던 칼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서 있다.

박물관은 지상부터 지하 3층까지 판화를 파듯 땅을 파고 들어간 구조다.

경사진 통로를 따라 한층 한층 더 깊이 내려가면서 이 땅에 새겨진 역사를 마주하게 된다.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과 예술품뿐 아니라 이 장소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드라마틱하게 담아낸 건축물 자체가 큰 감동을 준다.

지하 1층 로비에는 이곳에서 처형된 순교자들의 고통을 형상화한 7개의 부조 조형물이 걸려 있다.

완만한 내리막 통로를 따라 지하 2층으로 내려가면 기해박해 때 순교한 정하상(정약용의 조카)을 추모해 만든 성 정하상 기념 경당이 나온다.

콘솔레이션 홀은 조선 시대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목숨을 잃은 모든 이들을 위로하는 공간이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제공]

콘솔레이션 홀은 조선 시대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목숨을 잃은 모든 이들을 위로하는 공간이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제공]

경당을 지나 또다시 좁은 통로를 따라 한층 더 내려가면 어두컴컴한 '콘솔레이션 홀'에 이른다.

2m 높이로 떠 있는 가로 25m, 세로 10m의 거대한 스크린으로 둘러싸인 어두운 공간 한가운데로 한 줄기 햇빛이 쏟아진다.

빛이 비치는 곳에는 이 땅에서 순교한 성인 5명의 유해가 묻혀 있다.

고구려 무용총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콘솔레이션 홀은 이름 그대로 조선 시대 이 땅에서 목숨을 다한 모든 이들을 위로하는 공간이다.

동시에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마음의 평화와 위로를 선사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4개의 벽면에서 흘러나오는 미디어 영상을 감상하며 어둠 속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마음이 저절로 차분해지고 평온해지는 것 같다.

하늘광장. 지하 3층에서 지상의 공원을 넘어 하늘까지 열려 있다. 광장 한쪽에는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순교한 성인 44명을 형상화한 '서 있는 사람들'이 놓여 있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제공]

하늘광장. 지하 3층에서 지상의 공원을 넘어 하늘까지 열려 있다. 광장 한쪽에는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순교한 성인 44명을 형상화한 '서 있는 사람들'이 놓여 있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제공]

콘솔레이션 홀에서 나오면 바로 맞은 편에 야외로 나가는 문이 있다. 문을 열고 나가면 빛이 쏟아지는 하늘 광장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땅과 하늘이 만나는 공간이다.

가로·세로 각 33m, 높이 18m의 붉은 벽돌에 둘러싸인 광장에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하늘로 향하게 된다.

무덤과도 같은 콘솔레이션 홀 건너편에 땅과 하늘이 만나는 공간을 배치해 "죽음이 곧 영원한 생명으로 옮아가는 순간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하늘광장 옆 하늘길에서는 미디어아트를 감상할 수 있다. [사진/조보희 기자]

하늘광장 옆 하늘길에서는 미디어아트를 감상할 수 있다. [사진/조보희 기자]

하늘광장은 하늘길로 이어진다. 지상을 향해 올라가는 어둡고 좁은 오르막길을 따라 미디어 아트가 펼쳐져 시선을 사로잡는다.

빛을 따라 길을 올라가다 코너를 돌면 커다란 바위를 쪼개 만든 '발아'라는 제목의 조형물이 햇빛을 받으며 놓여있다.

하늘길에 설치된 권석만 작가의 '발아' [사진/조보희 기자]

하늘길에 설치된 권석만 작가의 '발아' [사진/조보희 기자]

이제 다시 실내로 들어와 콘솔레이션 홀 옆의 상설 전시관을 관람할 차례다.

전시실로 들어서니 천장과 벽면을 가득 메운 하얀 곡선과 직선들이 눈길을 끈다.

천장에서 벽으로 이어지는 아치와 십자형 기둥이 조명과 어우러져 경건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치와 십자형 기둥이 어우러져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상설전시관 [사진/조보희 기자]

아치와 십자형 기둥이 어우러져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상설전시관 [사진/조보희 기자]

상설전시관은 조선 후기 사상계의 흐름을 다룬 제1전시실과 서소문 밖 네거리의 역사성을 담은 제2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제1전시실에서는 조선 후기 사학(邪學)으로 지목된 천주교 사상을 비롯해 동학, 실학, 성리학, 양명학 등 주요 사상이 어떻게 전개됐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주제지만, 전시장 곳곳에 배치된 예술작품 덕분에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다.

미디어아트와 유리공예가 합쳐진 손승희 작가의 '척.사.윤.음'은 1839년 헌종이 천주교의 폐해를 막기 위해 백성들에게 내린 교서인 '척사윤음'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천장에 매달려 흔들리는 수많은 유리조각과 이들이 부딪혀 내는 것 같은 효과음에서 서슬 퍼랬던 박해의 긴장감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미디어아트와 유리공예가 합쳐진 손승희 작가의 '척.사.윤.음' [사진/조보희 기자]

미디어아트와 유리공예가 합쳐진 손승희 작가의 '척.사.윤.음' [사진/조보희 기자]

천창을 통해 빛이 쏟아지는 공간에 가지런히 늘어서 있는 수십개의 사발은 신유박해 당시 '순교자의 무덤'을 표현한 최지만 작가의 작품이다.

오가작통법에 따라 다섯 가구 중 한 가구에서라도 천주교 신자가 나오면 다섯 가구를 모두 처형했기 때문에 가족이나 친지가 처형당하더라도 발각될까 두려워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이 썼던 사발에 이름을 써서 묻어놓고 도망갔다고 한다.

사발로 표현된 순교자들의 무덤 앞에는 103위 순교 성인들의 얼굴을 그린 성화가 걸려 있다.

신유박해 당시 '순교자의 무덤'을 표현한 최지만 작가의 작품 [사진/조보희 기자]

신유박해 당시 '순교자의 무덤'을 표현한 최지만 작가의 작품 [사진/조보희 기자]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8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isun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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