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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한복판에 섰던 월주…세간에서 깨달음 구한 승려

송고시간2021-07-2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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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신군부에 저항했다 수모…"불법은 세간 가운데 있어" 대중과 공존 선택

종단 개혁 앞장·사회운동 족적…총무원장 3선 무리수·'나눔의집' 사태 오점

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스님 열반
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스님 열반

(서울=연합뉴스) 불교의 대사회 운동에 매진했던 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月珠)스님이 22일 열반했다. 법랍 68년, 세수 87세. 조계종에 따르면 월주스님은 이날 오전 9시 45분께 자신이 조실(祖室)로 있는 전북 김제의 금산사에서 입적했다. 사진은 지난 1994년 11월 9일 월주 스님이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계종 총무원장 출마를 선언하는 모습. 2021.7.22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기자 = 신군부 탄압에 맞선 승려, 평생 전념한 불교의 대사회운동, 종단 개혁 등.

22일 전북 김제 금산사에서 입적한 월주스님의 행장(行狀) 중 눈에 띄는 대목을 꼽는다면 이런 일들이 아닐까.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며 살아온 스님은 세상과 종단이 어려웠을 때 그 중심에 서 함께 했던 인물로 기억된다.

조계종에 따르면 1980년 40대의 나이에 조계종 총무원장에 선출된 그는 청정 비구의 정신을 바탕으로 종단 갈등 해소와 화합에 나섰다. 30대 때부터 종단의 주요 소임을 맡아 활동했던 터라 젊은 총무원장의 행보에는 큰 관심이 쏠렸다.

정교분리의 원칙에 따라 국가 권력의 간섭을 배제했던 그는 12·12사태 등을 통해 집권한 신군부로부터 지지 선언을 요구받았으나 단박에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신 5·18민주화운동이 전개된 광주를 찾아 다친 시민을 위로하고, 희생자 넋을 기리는 추모행사를 봉행했다.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던 상황에도 자비행을 실천한 것이다.

불교계를 손볼 날을 꼽았던 신군부는 그해 10월 27일 전국 사찰 곳곳에 군홧발로 들어가 스님들을 폭행하고 잡아 가두고 고문을 가했다. 이른바 '10·27 법난'으로 기록된 신군부 탄압을 월주스님도 피해 가지 못했다.

그는 강제 연행돼 조사를 받았고, 총무원장직에서 사실상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다.

스님은 신군부 탄압에 떼밀려 떠난 해외 구도의 길에서 한국 불교의 미래를 성찰한 것으로 회고된다. 그는 여정을 통해 세간에서 불법을 찾고 대중과 공존해야 한다는 결론에 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답은 '깨달음의 사회화운동'이었다.

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스님 열반
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스님 열반

(서울=연합뉴스) 불교의 대사회 운동에 매진했던 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月珠)스님이 22일 열반했다. 법랍 68년, 세수 87세. 조계종에 따르면 월주스님은 이날 오전 9시 45분께 자신이 조실(祖室)로 있는 전북 김제의 금산사에서 입적했다. 사진은 지난 1998년 6월 3일 당시 송월주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이 프레스센터에서 국난극복을 위한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2021.7.22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그가 2016년 낸 회고록 '토끼뿔 거북털'이라는 제목에는 스님의 생각이 여실히 드러난다.

토끼뿔 거북털은 육조 혜능 대사의 육조단경에 나오는 '불법재세간(佛法在世間) 불리세간각(不離世間覺) 이세멱보리(離世覓菩提) 흡여구토각(恰如求兎角)'이란 글귀에서 따온 것이다.

불법은 세간 가운데 있으니 세간을 떠나서 깨닫지 못하고, 세간을 떠나서 깨달음을 찾는다면 마치 토끼에게서 뿔을 구하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이렇게 불교의 사회운동으로 선회한 그는 1989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를 시작으로, 불교인권위원회 공동대표(1990∼95),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1996) 등을 맡으며 운동 전면에 나섰다.

이웃종교와 함께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고자 했던 그는 당시 김수환 추기경, 강원용 목사와 함께 시대가 필요로하는 종교의 방향을 치열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1994년 의현 총무원장의 3선 연임 강행에서 비롯된 종단 폭력사태로 조계종 개혁회의가 출범하자 구성원으로 참여하고, 두 번째 총무원장에 올라 종단이 제자리에 설 수 있도록 이끌었던 일은 지금도 종종 회자되는 일이다.

불교계 단체인 신대승네트워크는 이날 낸 추모문에서 "종단이 어려울 때 종단을 바로 세우기 위해 나서길 주저하지 않았으며, 94년 종단개혁을 원만히 이끌어 종단의 민주화와 자주화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또 "깨달음의 사회화를 제창하여 보살행의 실천과 사회적 책임을 몸소 보여주신 출가수행자이기도 하다"고 돌아봤다.

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스님 열반
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스님 열반

(서울·김제=연합뉴스) 불교의 대사회 운동에 매진했던 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月珠)스님이 22일 열반했다. 법랍 68년, 세수 87세. 2021.7.22 [금산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그는 1998년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나눔의집'을 설립했고, 2004년에는 국제개발 협력단체인 지구촌공생회의 문을 열었다.

지구촌공생회는 그간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세계 10여개 국가로 활동 무대를 넓히며 식수, 교육, 지역개발사업 등을 펴오고 있다.

그는 68년을 승려로 살아오는 동안 불교계 큰스님으로 따르는 이가 많았으나, 한편으로는 행적을 두고 마뜩잖게 보는 이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3선 연임을 강행하다 쫓겨난 전임 총무원장의 전철을 밟듯 스님은 1998년 3선 연임에 나섰다가 종단 폭력사태의 빌미가 되며 자신은 물론 종단에 큰 오점을 남겼다.

자신이 설립해 20년 넘게 이사장을 맡아 활동했던 '나눔의집' 후원금 유용 논란은 노승을 뒷방으로 물러나게 만든 계기가 됐다. 그의 관련성 여부를 떠나 나눔의집 사태는 불교계 이미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게 사실이다.

조계종은 이날 원효대사의 말을 빌려 월주스님의 가르침, 자비행을 요약했다.

歸一心源(귀일심원) 饒益衆生(요익중생)

"일심(한마음)의 근원으로 돌아가서 일체중생을 이롭게 하라"

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스님 열반
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스님 열반

(서울=연합뉴스) 불교의 대사회 운동에 매진했던 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月珠)스님이 22일 열반했다. 법랍 68년, 세수 87세. 조계종에 따르면 월주스님은 이날 오전 9시 45분께 자신이 조실(祖室)로 있는 전북 김제의 금산사에서 입적했다. 사진은 지난 1998년 1월 22일 당시 송월주 조계종 총무원장이 조계사에서 열린 나라사랑 금모으기 특별법회에 참석, IMF한파를 이기기 위한 신도들의 금모으기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모습. 2021.7.22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edd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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