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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zine] 대한민국 구석구석, 영화가 되다 ② 부산 기장 아홉산숲

송고시간2021-09-0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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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숲을 거닐며 속세를 잊다

(부산=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대나무 숲 사이로 청량한 초록 바람이 흐른다. 사각사각 댓잎이 스치는 소리가 상쾌하다.

부산 기장군의 아홉산숲은 사계절 언제 찾아도 싱그러움 가득한 대나무숲으로 유명하다.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이곳의 맹종죽 숲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이 됐다.

아홉산숲. 왼편으로는 각종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이 된 맹종죽 숲이, 오른편으로는 금강소나무 군락지가 보인다. [사진/전수영 기자]

아홉산숲. 왼편으로는 각종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이 된 맹종죽 숲이, 오른편으로는 금강소나무 군락지가 보인다. [사진/전수영 기자]

◇ 9대에 걸쳐 가꾸고 지켜온 숲

기장군 철마면에 있는 아홉산(해발 361m)은 서울 남산보다 조금 높은 산이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아홉 개의 골짜기를 품고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아홉산이 유명해진 것은 이 산자락에 깃든 아홉산숲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00년 전 이곳에 정착한 남평 문씨 가문이 9대에 걸쳐 가꿔온 이 숲 덕분에 전국 각지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됐다.

아홉산숲의 역사는 16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진왜란 이후 철마면 미동마을에 정착한 남평 문씨 일가가 조림과 육림을 통해 뒷산의 숲 52만㎡를 가꾸고 지킨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400년간 묵묵히 숲을 가꿔온 한 가문의 고집과 열정은 금강송과 대나무, 편백, 삼나무 등 수백 종의 식물이 어우러진 명품 숲을 만들어냈다.

아홉산숲 산책로에서 휴식을 취하는 탐방객 [사진/전수영 기자]

아홉산숲 산책로에서 휴식을 취하는 탐방객 [사진/전수영 기자]

사실 아홉산숲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비밀의 숲'이었다.

나무를 가꾸고 지키는 것을 숙명으로 여겼던 문씨 가문은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어 숲이 훼손되는 것을 우려했다.

52만㎡의 숲이 수백 년간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었던 것도 오랫동안 외부 사람들의 손이 타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유치원생을 위한 체험 학습장으로만 간간이 개방됐던 숲이 일반인에게까지 알려진 것은 스크린에 등장하면서부터다.

영화 '군도'의 배경이 된 맹종죽 숲이 입소문을 타면서 일반인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개방해달라는 요구도 많아졌다.

갑작스러운 사람들의 발길에 숲이 훼손되자 9대 종손인 문백섭 대표는 제대로 개방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하에 2015년부터 숲을 정식으로 공개하기 시작했다.

숲을 따라 난 탐방로는 총 3.2㎞. 탐방로를 따라 천천히 산책하며 둘러보는 데에는 1시간 30분가량 걸린다.

아홉산숲 초입의 금강소나무 군락지. 수령 400년이 넘는 금강송이 '누운 주목'들과 어우러져 있다. [사진/전수영 기자]

아홉산숲 초입의 금강소나무 군락지. 수령 400년이 넘는 금강송이 '누운 주목'들과 어우러져 있다. [사진/전수영 기자]

매표소를 지나 조금만 걸어가니 금강소나무 군락지가 먼저 반긴다.

하늘을 뚫을듯한 기세로 솟아있는 금강송들이 낮게 뻗은 '누운 주목'들과 어우러져 그야말로 장관이다.

영남지방에서 보기 힘든 이 금강송 군락지의 소나무들은 수령이 400년을 넘는다고 한다. 모두 기장군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전쟁 물자로 쓰기 위해 송진을 채취했던 흔적이 전혀 없는 것도 이곳 소나무들의 특징이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치르느라 수탈이 극에 달했던 시기 종택이 집안의 놋그릇을 다 내어주면서 나무는 끝까지 지켜냈다고 한다.

남평 문씨 가문의 나무 사랑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이 간다.

◇ 무협영화가 떠오르는 맹종죽 숲

금강송 군락지를 지나니 오른쪽에 아홉산숲을 상징하는 맹종죽 숲이 펼쳐진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이 된 곳이다.

영화 '군도'에서 하정우가 복수의 칼날을 갈며 무공을 익히던 장면도, 영화 '대호'에서 최민식이 호랑이를 추격하던 장면도 모두 이곳에서 찍었다.

아홉산숲의 첫 번째 맹종죽숲. 드라마 '더 킹:영원의 군주' 촬영 당시 세운 두 개의 돌기둥은 가장 인기 있는 포토존이 됐다. [사진/전수영 기자]

아홉산숲의 첫 번째 맹종죽숲. 드라마 '더 킹:영원의 군주' 촬영 당시 세운 두 개의 돌기둥은 가장 인기 있는 포토존이 됐다. [사진/전수영 기자]

숲에는 두 손으로 움켜쥐기 벅찰 정도로 굵은 대나무들이 빽빽하게 솟아 있다.

맹종죽은 키가 10∼20m, 지름은 20㎝ 정도로 대나무 중 가장 굵다고 한다.

아홉산숲의 맹종죽 숲이 촬영장소로 각광받는 것은 인공 조형물이 거의 없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숲을 둘러싼 울타리조차 없어 탐방객들이 마음껏 대나무 사이를 걸으며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하늘을 가릴 정도로 빽빽하게 우거진 대숲은 신비로움 그 자체다. 대숲 깊숙이 들어가니 온통 초록빛에 둘러싸여 마치 딴 세상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이다.

쭉쭉 뻗은 맹종죽숲 사이로 어린 대나무가 자라고 있다. [사진/전수영 기자]

쭉쭉 뻗은 맹종죽숲 사이로 어린 대나무가 자라고 있다. [사진/전수영 기자]

아홉산숲의 첫 번째 맹종죽 숲인 이곳은 약 200년 전 조성됐다고 한다.

맹종죽 숲을 배경으로 둥그렇게 대나무가 자라지 않는 터가 있어 '굿터 맹종숲'으로도 불린다.

예로부터 마을 사람들이 이 터에 아홉산 산신령의 영험이 있다고 믿고 궂은일이 있을 때 치성을 드리거나 굿을 했다고 한다.

굿터에 솟아있는 두 개의 돌기둥은 드라마 '더 킹:영원의 군주' 촬영 당시 세운 것이다.

드라마 촬영이 끝난 뒤에도 철거하지 않고 남겨놓은 덕분에 아홉산숲에서 가장 인기 있는 포토존이 됐다.

개잎갈나무와 맹종죽이 마주 보며 늘어서 있는 '바람의 길' [사진/전수영 기자]

개잎갈나무와 맹종죽이 마주 보며 늘어서 있는 '바람의 길' [사진/전수영 기자]

굿터를 지나면 개잎갈나무와 맹종죽이 마주 보며 늘어선 '바람의 길'이다. 이 길을 지나면 영화 '대호'를 촬영한 서낭당이 나오고 여기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 길은 편백숲과 삼나무 조림지를 거쳐 두 번째 맹종죽 숲으로 향하는 길이고, 오른쪽 길은 곧바로 두 번째 맹종죽 숲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다.

영화 '대호'를 촬영했던 서낭당 [사진/전수영 기자]

영화 '대호'를 촬영했던 서낭당 [사진/전수영 기자]

두 번째 맹종죽 숲은 만평대숲으로도 불린다. 국내에서 가장 큰 맹종죽 숲으로 규모가 1만 평에 달한다.

해방 전후부터 옛 동래군청 주변의 식당을 돌며 남긴 음식을 차로 실어나르고 부산 시내를 지나는 분뇨차를 불러들여 숲을 가꿨다고 한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대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걷고 있으니 쏴∼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댓잎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파도 소리처럼 청량하다.

초록빛 대숲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 온갖 새소리에 바람 소리까지, 몸과 마음이 절로 치유되는 기분이다.

남평 문씨 일가가 살았던 '관미헌', 고사리조차 귀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사진/전수영 기자]

남평 문씨 일가가 살았던 '관미헌', 고사리조차 귀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사진/전수영 기자]

맹종죽 숲을 한 바퀴 돌고 지름길을 따라 입구 쪽으로 내려오면 100년 된 배롱나무와 연못 너머로 '관미헌'이라는 이름의 전통 가옥이 있다.

관미헌은 '고사리조차 귀하게 여긴다'는 뜻으로 남평 문씨 일가의 철학을 담아 지은 이름이다.

문씨 일가가 살았던 이 집은 현재 직원들의 숙소로 쓰이고 있다.

고택 주변에는 거북 등딱지처럼 생긴 대나무인 '구갑죽'이 눈길을 끈다.

1950년대 중국에서 일본을 거쳐 들여온 뿌리를 이식한 것이 작은 정원을 이룰 만큼 번졌다.

중국과 본격적으로 교류하기 전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아홉산 숲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대나무였다고 한다.

줄기가 거북 등딱지처럼 생긴 구갑죽 [사진/전수영 기자]

줄기가 거북 등딱지처럼 생긴 구갑죽 [사진/전수영 기자]

◇ 한 폭의 그림 같은 죽성 성당

기장군에는 아름다운 해안 경관을 배경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촬영한 곳도 많다.

대변항에서 임랑해수욕장까지 해안도로를 따라가며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다 보면 곳곳에서 영화 촬영지를 만날 수 있다.

기장 멸치와 기장 미역으로 유명한 대변항은 영화 '친구'의 배경이 된 곳이다. 주인공 4명이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을 여기서 촬영했다.

기장읍 죽성리 두호마을 갯바위 위에 지어진 죽성 성당. 2009년 방영된 드라마 '드림'을 촬영했던 세트장이다. [사진/전수영 기자]

기장읍 죽성리 두호마을 갯바위 위에 지어진 죽성 성당. 2009년 방영된 드라마 '드림'을 촬영했던 세트장이다. [사진/전수영 기자]

대변항에서 해안도로를 달려 죽성리 두호마을에 다다르면 갯바위에 서 있는 서양식 건물 하나가 눈길을 끈다.

붉은색 첨탑과 지붕이 아름다운 이 건물은 성당처럼 보이지만 실제 성당은 아니다. 2009년 방영된 드라마 '드림'을 촬영했던 세트장이다.

기장군이 드라마 촬영을 위해 3억원을 들여 지었다고 한다.

푸른 바다와 갯바위에 부딪히는 파도, 붉은 지붕의 성당이 어우러진 풍경은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처럼 아름답다. 덕분에 드라마 방영이 10년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사진 명소로 인기를 얻고 있다.

바다가 푸르게 빛나는 한낮의 풍경도 물론 아름답지만, 분홍빛 노을로 하늘이 물드는 해 질 녘 풍경은 묘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하늘이 어둑어둑해질 때쯤이면 성당 외벽 곳곳에 조명이 들어와 사진 찍기에도 좋다.

죽성 성당 야경 [사진/전수영 기자]

죽성 성당 야경 [사진/전수영 기자]

죽성리에서 기장군청 방향으로 나와 일광해수욕장으로 가면 다시 해안도로가 나온다. 굽어지는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영화 '복면달호'(2007)의 촬영지인 동백마을이다.

대변항 바로 옆 연화리에서 임랑해수욕장까지 해안을 따라가며 이색적인 등대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출산율을 높여 보자는 기원을 담아 만든 젖병 등대, '마징가 Z'과 '태권V'를 형상화한 등대, 2002년 월드컵 4강에 오른 것을 기념해 세운 월드컵 등대, 물고기 등대, 갈매기 등대, 야구 등대 등 다채로운 모양의 등대가 관광객을 반긴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9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isun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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