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자살론, 서양과 달라…살인 결과로 인식하기도"
송고시간2021-08-29 07:10
오승관 씨, 구한말 위력에 의한 자살 분석…"여성 비율 높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시대에는 일부 자살을 서양처럼 개인 문제로 치부하거나 죄악시하지 않았고, 공동체 차원에서 가해자가 존재하는 살인의 결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29일 학계에 따르면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오승관 씨는 한국역사연구회가 펴내는 학술지 '역사와 현실' 최신호에서 구한말 위력에 의한 자살 사건을 연구해 이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오씨는 중국 명나라 법전인 '대명률'(大明律)을 조선 초기에 해석한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에는 위세로 핍박하거나 겁박해 죽음에 이르게 하면 처벌하도록 한 규정이 있다고 소개했다. 이 같은 죽음은 '위핍인치사'(威逼人致死)라고 했다.
그는 "위핍인치사가 법적으로 살인의 한 유형이었으나, 현실에서는 자살을 동반했다"며 "위핍인치사를 통한 처벌은 가해자의 협박과 피해자의 자살이 중요한 조건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위핍인치사라는 법률 때문에 조선시대 사람들이 자살의 책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고, 때로는 유족이 협박한 사람의 책임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오씨는 "위핍인치사에 의한 자살, 즉 '위핍자살'은 서양에서 자살을 죄악시한 관점과 궤를 달리한다"며 "자살이라는 문제를 사회 구성원이 함께 해결하려 한 조선의 전통을 확인할 수 있는 요소"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있는 검안(檢案) 자료를 통해 1885년부터 1906년까지 위핍자살로 목숨을 잃은 88명의 실태를 분석했다. 검안은 '검시문안'(檢屍文案)의 준말로, 일종의 살인 사건 조사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오씨는 "위핍자살로 인한 사망자 88명 중 여성이 54%, 남성이 46%였다"며 "19세기 후반 유럽과 현재 한국에서 여성 자살률은 남성보다 낮지만, 당시에는 남녀 비율이 비슷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특기할 만한 점은 20대 이하 자살자 19명은 모두 여성이고, 여성 자살자 중에서도 20대가 가장 많다는 사실"이라며 "남성 자살자는 50대가 가장 많은 것과 대조적인데, 자살자 평균 연령은 여성이 36.1세이고 남성은 52.4세였다"고 짚었다.
위핍자살 원인은 일반적 분쟁, 성 문제, 가정 문제, 경제 문제, 관과의 대립 순으로 많았다고 분석했다.
오씨는 또 누명·협박·무고와 경제적 분쟁·압박과 같은 위핍자살에서 여성 피고는 전혀 없었다는 점을 근거로 성별에 따른 차이는 자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에게서도 확인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당시 사람들은 위핍자살 사건이 발생하면 시신을 피고로 추정되는 인물의 집에 가져다 놓았다"며 "피고를 지목하는 행위 양식을 통해 위핍자살이 최후의 저항 수단 내지는 복수의 의미를 지닐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최상반'이라는 인물은 꼴을 베러 간다고 한 뒤 야산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 가족들은 시신을 수습해 최상반을 구타한 사람의 집에 두었다.
오씨는 결론에서 "위핍자살은 조선에 독특한 자살 담론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이러한 담론이 어떻게 생성·유지되고 소멸했는지 살피고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는 것은 추후 과제"라고 말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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