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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전 경주 월성서 나온 인골 20여구 미스터리 풀리나

송고시간2021-09-0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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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벽 인신공양 흔적과 10m 거리…"축조하며 묻은 것은 확실"

"당시 출토 정황·추가 인골 발견 여부가 관건"

경주 월성에서 나온 성인 여성 인골과 토기
경주 월성에서 나온 성인 여성 인골과 토기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지난 2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연 신라 고환경 연구 학술대회에서 하대룡 서울대 교수는 경주 월성(月城) 해자에서 1990년에 발견된 인골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하 교수는 인골 257점을 분석해 20명 이상에 해당하는 인골이 한꺼번에 묻힌 이유로 집단 폭력 혹은 전염병에 의한 사체 처리, 하천 범람으로 주변 무덤이 유실돼 유입된 결과, 색다른 장례 풍습 등 여러 가설을 검토했다.

그는 월성 인골에 대해 "미성년자와 성인이 대략 반반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형태의 장례 결과물이거나 유골에 대한 과거인의 인식이 오늘날과 크게 달랐기 때문에 방치된 결과물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인골들이 쏟아져 나온 장소로부터 약 10m 떨어진 지점에서 인신공희(人身供犧·인신공양) 흔적으로 추정되는 1천600여년 전의 새로운 인골들이 발견되면서 인골 20여 구에 얽힌 미스터리가 풀릴 가능성이 생겼다.

경주 월성 서성벽 인신공희 지점
경주 월성 서성벽 인신공희 지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4년 만에 서성벽서 또 확인된 인골, 인신공양 근거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2014년 12월 조사를 시작한 월성은 신라의 천년 왕성으로, 매년 한 차례 정도 흥미로운 학술 성과가 공개되는 유적이다.

월성은 A∼D지구로 나뉘어 조사가 진행 중인데, 2017년 A지구 서쪽 성벽 문지(門址·문터) 근처에서 가지런히 누운 인골 2구가 나왔다.

당시 연구소는 인골을 살펴본 뒤 몸을 묶거나 저항한 자국이 없어 제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보도자료에도 '제물로 추정되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인신공희로 단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7일 연구소는 월성 서성벽 발굴조사 자료에서 '인신공희의 성인 여성 인골 한 구를 추가로 발굴'이라고 발표했다. 미루어 생각한다는 뜻의 '추정'이라는 단어가 사라진 것이다.

이번에 확인된 인골은 신장이 약 135㎝인 성인 여성. 조사단은 인골에 대해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으나, 막 성장이 끝난 상태로 20대 전후로 보면 틀림없다고 했다. 2017년에 출토된 유골이 50대 남녀이고, 키는 남성 165.9㎝·여성 153.6㎝라는 사실과 비교하면 훨씬 젊고 왜소하다.

연구소는 세 인골과 이에 앞서 2016년 동일한 지점에서 나온 5세 전후 유아 인골이 모두 같은 시기에 희생된 사람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경주 월성 서성벽 축조 과정
경주 월성 서성벽 축조 과정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인신공희가 이뤄졌다는 근거로는 인골이 나온 장소와 축성 과정이 제시됐다.

연구소는 신라가 4세기 중엽 월성 성벽을 쌓을 때 먼저 기초부를 다진 뒤 중심부에 토루(土壘)라는 흙으로 쌓아 올린 시설물을 조성하기 직전에 사람을 제물로 삼아 의례를 거행했다고 봤다.

인골이 발견된 장소는 토루의 가장자리에 해당하며, 함께 매납한 동물 뼈나 토기가 의례의 흔적이라고 짚었다. 시신을 관에 넣는 대신 풀과 나무판으로 덮고, 그 위에 흙을 차곡차곡 쌓은 점도 인신공희 양상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또 신라인이 행한 순장도 문화사적 맥락에서 함께 살펴볼 만한 풍습으로 꼽혔다. 순장은 지배층 인물이 죽었을 때 다른 사람을 함께 묻는 것을 뜻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신라는 위세를 보여주기 위해 대규모 구조물을 지었다"며 "왕성과 무덤은 성격이 다르지만, 두 곳에서 모두 사람을 희생시키는 행위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경주 월성 인골 출토 상황
경주 월성 인골 출토 상황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20여구도 축조 과정서 묻힌 것은 확실…열쇠는 추가 인골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새로운 연구 성과를 공개하면서 1985년과 1990년 월성 조사에서 수습한 인골 20여 구의 성격을 확정하지는 않았지만, 성벽 축조 과정에서 묻힌 것은 확실시된다고 밝혔다.

장기명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인신공희 결과물일 수도 있지만, 공사 중에 사망한 사람을 위로하며 묻어줬을 가능성도 있다"며 "30여 년 전에는 인골에 큰 관심이 없었고, 당시 출토 정황을 정확히 복원하기가 힘들어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신라가 인신공희를 했다는 문헌 기록이 없는 상황에서 기댈 수 있는 것은 결국 발굴조사 성과뿐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다만 이전에 조사가 끝난 동쪽 문지에서는 인골이 나오지 않았다.

월성 조사 상황을 잘 아는 학계 관계자는 "최근에 나온 인골과 1980∼1990년대 수습한 인골은 성벽에서 일직선을 이룬다"며 "인신을 바치는 제의 행위가 월성 전체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곳에서 인골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서성벽에만 사람을 제물로 놓은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공사를 하기 매우 어려운 장소였거나 공사의 시작 혹은 종료 지점이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1985년 경주 월성 인골 조사 모습
1985년 경주 월성 인골 조사 모습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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