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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조국으로 택한 어머니, 제주 4·3사건 생존자셨죠"

송고시간2021-09-14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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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평양'·'굿바이, 평양' 양영희 감독 신작 '수프와 이데올로기'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26년에 걸쳐서 가족 다큐멘터리 3부작을 만들게 됐네요. 이제야 우리 가족 이야기의 윤곽을 그린 것 같아요."

양영희 감독
양영희 감독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개막작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디어 평양'(2006), '굿바이, 평양'(2009)을 연출한 재일교포 2세 양영희 감독의 세 번째 다큐멘터리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열혈 활동가인 제주도 출신 부모님을 둔 양 감독의 '가족 다큐 3부작'에 마침표를 찍는 작품이다.

'디어 평양'이 북송 사업에 따라 아들 셋을 북한에 보낸 아버지를, '굿바이, 평양'이 북한에서 나고 자란 조카 선화를 따라가며 특별한 가족의 이야기를 전했다면, 이번 영화는 지금껏 입 밖으로 꺼낸 적 없었던 어머니의 과거를 들춰낸다. 어머니는 1948년 제주 4.3사건의 생존자다.

영화제 참석차 한국을 찾은 양 감독은 14일 화상 인터뷰에서 사실 처음에는 가족을 그린 다큐 한 작품만 완성하면 한이 없을 것 같았다고 했다. 하지만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때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점점 많아졌다고 전했다. 첫 다큐 '디어 평양' 이후 북한 입국이 금지되고, 조선총련으로부터 다시는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는 사과 요구를 받았지만, 사과 대신 두 번째 다큐를 만들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남한 출신인데 북한을 조국으로 선택했다. 60·70년대는 그런 사람들이 많긴 했지만, '아들 3명을 모두 북한에 보낼 정도로 충성을 다 해야 하는 걸까', '우리 부모는 현실을 모르는 걸까', '무식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특히 어머니는 이론이 아닌 감정적으로 남한을 거부했다. 아버지는 생전에 제주 노래도 부르곤 했지만, 어머니는 '한국은 잔인해', '한국은 싫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다큐 '수프와 이데올로기'
다큐 '수프와 이데올로기'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양 감독은 그런 어머니에게 아들 셋을 북한으로 보낸 당시 솔직한 심정을 듣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어머니 입에서는 뜻밖의 이야기가 나왔다. 4·3사건 때 제주에 있었다는 것. '디어 평양'을 만들 당시에도 넌지시 물었지만, 모르는 일이라며 묻지 말라던 어머니가 아버지와 평양에 있는 장남이 세상을 떠난 뒤인 10년 전쯤에서야 이야기를 꺼냈다고 전했다.

오사카에서 태어난 어머니는 미군의 폭격을 피해 1945년 제주도로 피란을 갔고, 3년 뒤 4·3사건을 마주했다. 의사였던 약혼자를 비롯해 친척들, 마을 사람들이 잔혹하게 살해되는 것을 목격했고, 남동생과 여동생을 데리고 오사카로 향하는 밀항선에 몸을 실었다. 어머니는 당시 제주 애월 하귀리에 흐르던 냇가가 핏빛으로 변했다고 전했다.

"제주도에서 4·3연구소 분들이 찾아오셨는데, 어머니가 혼자서 3시간가량을 이야기하셨어요. 70년 전 기억이 참 생생해 놀랐죠. 그동안 덮어두고 살던 뚜껑이 열리니 기억들이 쏟아져 나오는 거 같았죠. 어머니는 이야기할수록 해방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그리고 일주일 뒤에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셨고,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을 받으셨죠."

이후 양 감독은 어머니와 남편과 함께 제주도를 찾아 4·3사건 70주년 추모식에 참석했다. 치매를 앓는 어머니는 별다른 말이 없었지만, 양 감독은 그곳에서 "이런 고향을 품고 어떻게 사나 모르겠다. 실은 오빠들을 왜 북한에 다 보냈는지 어머니를 원망했었다. 그런데 4·3사건을 알고 나니 어머니 탓을 못 해서 불편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다큐 '수프와 이데올로기'
다큐 '수프와 이데올로기'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동안 가족과 북한과의 관계 속에서 복잡한 심리를 다뤄왔는데, 이번 영화는 남한과 가족사를 다뤄요. 4·3사건까지 다뤄야 끝을 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디어 평양'의 마지막 페이지 같은 작품인데 이제야 숙제를 다 한 것 같은 기분이에요."

다만 영화는 특별한 가족사를 파헤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번 영화에는 새로운 가족 구성원인 양 감독의 일본인 남편이 등장한다. 어머니는 사위를 처음 보는 날 마늘로 속을 꽉 채운 닭을 4시간 끓여 삼계탕을 대접하고, 사위는 이후 요리법을 배워 어머니께 삼계탕을 대접한다. 많이 다투던 모녀는 남편이 함께하게 되면서 화학반응이 일어나듯 달라졌다고 했다.

양 감독은 "남편이 어머니를 처음 봤을 때 자기를 네 번째 아들이라고 생각해 달라고 했다. 어머니와 남편이 마늘을 까고 수프(삼계탕)를 만드는 장면이 너무 평화로워 보였다"며 "이데올로기가 다르다고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데, 밥을 같이 먹는 '식구'처럼 그렇게 사회가 이뤄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데올로기가 달라도 비난하지 않고 같이 밥을 먹으면 어떨까 싶어요. 작은 단위의 가족이 그걸 하기까지 몇십 년이 걸렸다는 것도 참 아이러니하긴 하죠. 저도 부모님을, 부모님은 저를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어요. 하지만 그것이 공존하기 위한 유일한 길이 아닐까요. 가족 누군가의 밥이 부족하면 내 밥에서 좀 덜어주잖아요. 나라끼리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다큐 '수프와 이데올로기'
다큐 '수프와 이데올로기'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ae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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