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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빈의 플랫폼S] 탈원전 훼방꾼이었던 메르켈, 자의로 변했을까

송고시간2021-09-1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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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 집권 후 기존 탈원전 정책 바꿔 원전 수명 연장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지방선거 잇단 참패…녹색당 급부상

연정 소수파 사민당도 탈원전 압박…수십만명 탈원전 시위

[※ 편집자주: 지속가능한(sustainable) 사회를 위한 이야기들을 담아낸 플랫폼S입니다. 지속가능을 위한 테크의 역할, 녹색 정치, 기후변화 대응, 이 과정에서의 갈등 조정 문제 등에 대한 국내외 이야기로 찾아갑니다. 여덟 번째 이야기.]

2010년 9월 독일 베를린에서 탈원전 지지 시위대가 원전 가동을 연장한 메르켈 총리의 가면(왼쪽)을 쓰고 풍자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2010년 9월 독일 베를린에서 탈원전 지지 시위대가 원전 가동을 연장한 메르켈 총리의 가면(왼쪽)을 쓰고 풍자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이광빈 기자 = 퇴임을 앞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찬사를 받는 주요 업적 중 하나는 '탈원전' 등 에너지 전환이다.

국내에선 메르켈 총리가 '탈원전'을 수용한 결단력 있는 지도자로 조명돼왔다.

과연 그럴까.

결과론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탈원전을 둘러싼 독일 정치권 움직임의 표피만 이해한 말일 수도 있다.

당시 독일에는 탈원전으로 향하는 일련의 강력한 흐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정치적으로는 실질적인 다당제와 연립정부 체제가 뿌리를 내리고, 녹색당이 제도 정치권에서 영향력을 행사해온 요소가 배경이 됐다.

또, 비용과 고통을 분담하더라도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재생에너지로 전환을 이뤄야 한다는 다수 여론이 뒷받침돼 있다.

탈원전과 친환경 에너지 정책을 놓고 10여년 간 치열하게 벌어진 갈등도 대내외적인 환경 변화 속에서 거친 대화를 통해서라도 조정이 이뤄지는 단계였다.

메르켈 총리 [AFP=연합뉴스]
메르켈 총리 [AFP=연합뉴스]

메르켈 총리가 결단했다기보다 이런 흐름을 거부하지 못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거부했다면 정치적인 타격이 상당히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메르켈 총리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여파로 탈원전 결정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탈원전을 지연시킨 '훼방꾼' 역할을 하기도 했다.

애초 독일의 원전 폐쇄 결정이 이뤄진 시점은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이끄는 사회민주당-녹색당 연정은 핵폐기물 이송에 반대하는 시위가 최고조에 이른 상황에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

슈뢰더 총리는 2000년 6월 향후 20년간 원전 19개 전부를 단계적으로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연정 소수파로 탈원전을 꾸준히 밀어 붙여온 녹색당이 연정 탈퇴까지 경고한 상황에서 다수파인 사민당이 수용한 모양새였다.

이미 양당은 1999년 연정 합의 당시 융통성을 전제로 원전 폐쇄 정책을 도입하기로 했으나 시기 문제로 갈등을 빚었었다.

2001년엔 독일 의회가 20년 안에 19개 원전을 폐쇄하는 내용의 법안을 승인하며 내각의 정책을 법제화했다.

그러나 2005년 총선에서 메르켈을 총리 후보를 내세운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이 승리해 연정 다수파가 되고 사민당이 소수파로 합류한 뒤 원전 폐쇄 정책에 제동이 걸렸다.

메르켈 정부는 2020년으로 예정된 원전 폐쇄 시한을 연기하기로 했다.

메르켈 총리는 2007년 직접 나서서 "원전 폐쇄 이후의 결과에 관해 숙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듬해 6월 기민-기사당 연합은 원전 폐쇄 정책의 포기를 선언하고 원전 가동 시한을 평균 12년 연장했다.

이에 따라 잠복해있던 탈원전의 불씨를 다시 사회적으로 지핀 것은 노후 원전들에서 발생한 잇따른 사고였다.

이어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뒤 주의회 선거에서는 집권 기민당이 잇따라 패했고 녹색당이 급부상했다.

전국 주요 도시들에서는 수십만명의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원전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열었다. 환경단체뿐만 아니라 가톨릭과 개신교, 노동단체 등이 앞장섰다.

2011년 3월 독일 넥카르베슈타임 원전 모습 [EPA=연합뉴스]

2011년 3월 독일 넥카르베슈타임 원전 모습 [EPA=연합뉴스]

이미 연정 소수파인 사민당이 집권한 5개 주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한 달 전에 원전 가동 시한을 연장한 법을 위헌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연정 내에서도 원전 폐쇄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시점이었던 셈이다.

원전 수명을 늘린 메르켈 총리는 궁지에 몰렸다.

이에 메르켈 총리는 5월 말 주의회 선거 패배의 원인을 원전 폐쇄를 둘러싼 논란으로 지목하면서 변화를 예고했다.

독일 정부가 만든 원전 점검 특별안전위원회와 함께 학자와 성직자 등 각계 지도자들로 구성된 특별 윤리위원회도 정부에 원전 포기를 권고했다.

이어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 내각은 2022년까지 전체 원전 가동을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이로 인해 메르켈 총리와 집권 세력은 급한 불을 끌 수 있게 됐다.

기민·기사당 연합의 이런 실용주의 노선은 대중의 인정을 받았고, 2013년 총선 승리로 이어졌다. 메르켈 총리의 자리도 굳건했다.

메르켈 총리와 집권 세력이 변하지 않으면 표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유권자들이 경고의 수위를 높여간 가운데, 기민·기사당 연합이 치열한 논의 과정을 거쳐 탈원전을 수용한 것이다. #플랫폼S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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