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조현병을 숨길 수밖에 없는 사회…영화 'F20'
송고시간2021-10-02 08:01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저 집 아들이 조현병이래.", "왜 하필 여기로 이사 온 거야. 집값 떨어지면 어떡해."
우리 사회에는 성별, 세대, 지역 등을 둘러싼 다양한 편견과 차별이 존재하는데, 이 가운데 정신질환에 대한 삐뚤어진 프레임은 유난히 견고하다. 특히 조현병은 '위험하다'는 오해를 많이 받는 질병이다.
영화 'F20'은 좁게는 조현병, 넓게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제목 F20은 조현병의 질병분류코드를 뜻한다.
영화는 서울대생 아들 도훈(김강민 분)이 조현병 진단을 받게 되자, 아무에게도 이를 들키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는 엄마 애란(장영남)의 심리를 따라간다.
애란은 도훈과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아들을 둔 엄마 경화(김정영)에게 위로받지만, 막상 경화가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로 이사 오게 되자 도훈의 비밀이 탄로 날까 봐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도훈의 질병을 모르는 아파트 주민들은 서울대생 아들을 둔 애란에게 우호적이다. 자녀의 과외를 부탁하고자 선물을 주며 살갑게 굴기도 한다. 하지만 아들이 조현병이란 사실이 알려진 경화에게는 한없이 싸늘하다. 주민들은 아파트에 누군가 죽인 고양이 사체가 발견되자, 경화의 아들을 의심하며 모진 말들을 뱉어낸다.
궁지에 몰린 경화를 보면서 애란은 도훈의 병을 숨기는 데 더욱 필사적이 된다. 도훈이 약을 제때 챙겨 먹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휴지통을 뒤져 빈 약봉지를 찾아내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려 든다. 주민들에게 공격받는 경화를 외면해버리고, 급기야 경화가 도훈의 비밀을 폭로하는 망상에 이른다.
애란의 극심한 불안감은 광기로 변해버리고, 결국 모두에게 비극을 불러온다. 이는 애란이 연약해서 빚어진 일이 아니다. 사실 애란은 보험 영업을 하며 홀로 아들을 키워온 강인한 엄마다. 도훈이 조현병 진단을 받은 이후 좌절하기도 했지만, 경화의 도움으로 이겨냈다. 하지만 아파트 주민들의 혐오에 가까운 잔혹한 시선은 애란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하다.
애란이 참석한 조현병 강연에서는 "무엇보다 주위 사람들의 격려와 지지가 치료의 첫걸음"이라는 언급이 나오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아파트 주민들은 조현병이란 질환을 방화, 살인사건 등의 사회문제와 결부시켜 '아주 무서운 병'이라고 규정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아들의 병을 숨기기로 한 애란의 선택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영화는 조현병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배척이 빚어낸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들춰낸다. 조현병 환자의 70%는 약물치료로 증상 호전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이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바라보는 시선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조현병 환자는 물론 이들을 돌보는 가족들은 이런 시선이 가하는 고통을 견뎌내야 한다.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영화는 두 중년 여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으로 흡입력 있게 이야기를 끌고 간다. 애란 역의 장영남은 주변의 차가운 시선을 두려워하며 점차 무너져 내려가는 내면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한다. 힘든 상황을 꿋꿋하게 버텨내는 경화를 연기한 김정영 역시 내면의 단단함을 진정성 있게 전한다.
오는 6일 개봉. 상영시간 104분. 15세 이상 관람가.
ae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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