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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12ㆍ12쿠데타 주도 신군부 핵심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망

송고시간2021-10-26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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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전 대통령 사망, 분주한 장례식장 앞
노태우 전 대통령 사망, 분주한 장례식장 앞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노태우 전 대통령이 숨진 26일 오후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입구에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다. 2021.10.26 yatoya@yna.co.kr

(서울=연합뉴스) 12.12쿠데타로 출현한 신군부 정권 시절 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사망했다. 지병으로 오랜 투병 생활을 해온 노 전 대통령은 최근 서울대병원에 입원, 집중 치료를 받아 왔으나 끝내 삶을 마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인생 역정은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빼놓고 설명하긴 어려울 듯하다. 육사 동기(11기)라는 인연은 물론이고 거의 평생 애증이 교차하는 운명적 관계를 맺었다. 유신 정권을 무너뜨린 10.26 사건 직후 벌어진 신군부 쿠데타에서 두 전직 대통령은 주도적 위치에 서 있었다. 5공 2인자로 통하던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 내용을 담은 6.29 선언을 거치며 전 전 대통령의 후계자로 지목돼 권력자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최고 권력자로선 후임자이지만 노 전 대통령이 이승과는 먼저 작별했다. 노 전 대통령이 숨진 26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42주기가 되는 날이다. 같은 날 세상을 뜬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군부 정권 통치의 말미를 보냈다고 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을 이어 탄생한 문민정부의 출범은 군부 통치 시대의 종말을 선언했다.

노 전 대통령은 직선제 선출 당시 '보통 사람'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5공 시절의 공포 정치 이미지를 완화해 군부 통치를 정당화시키고 싶은 취지를 담았다고 볼 수 있다. 재직 시절 88올림픽이 열렸고 북방 외교나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정책 등은 주목받았다.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이나 옛 소련·중국과의 공식 수교 등이 대표적이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2월 취임사에서 이념과 체제가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강조했다. 탈냉전 외교 전략을 통해 과거 정권과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공산권 국가와의 수교는 남북 관계의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당시 세간에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물대통령'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정작 노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 "그 물 한 방울 한 방울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루는 과정을 보면 물의 힘은 참 크지요"라며 별명 참 잘 지어줬다고 생각한다"는 어록을 남기기도 했다.

문민정부 시절 노 전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과 나란히 수감돼 사법적 단죄를 받게 된다. 12.12쿠데타와 5.18 광주 민주화운동, 수천억원 규모의 비자금 조성 등과 관련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전 전 대통령과 함께 수감됐고 법원에서 징역 17년과 추징금 2천600억여원을 선고받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 조치로 풀려났지만, 신군부 통치의 어두운 그림자는 지울 수 없게 됐다. 지금까지 노 전 대통령은 20년 가까이 투병과 요양 생활을 반복해 왔다. 그간 공개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에 대해 사죄하지 않았다. 아들 재헌 씨가 대신해 광주를 여러 차례 방문해 사죄의 뜻을 전한 바 있지만 노 전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인지는 불투명했다. 5.18 관련 단체들이 노 전 대통령의 국립묘지 안장을 반대하는 이유다. 노 전 대통령은 '직선제 개헌'이라는 민심을 수용해 헌정사상 국민의 직접 투표로 당선된 첫 대통령으로서 북방외교 등으로 외교 지평을 넓혔고 국민통합에도 어느 정도 이바지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군사 반란을 일으켜 헌정질서를 무너뜨리고 민간인 학살에 개입한 것은 씻을 수 없는 과오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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