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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들이 왕 앞에서 옥신각신?…'승정원일기' 보면 불가능"

송고시간2021-11-16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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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일기 번역 평가 맡은 오재환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세계기록유산 등재 20주년인데 번역률은 30%…"예산 줄면 번역도 차질"

오재환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오재환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오재환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이 9일 은평구 번역원 청사에 꽂힌 승정원일기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사극을 보면 임금 앞에서 신하들이 옥신각신하는 장면이 가끔 나옵니다. 조선시대 기록인 승정원일기를 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신하는 자신과 관련되지 않은 업무를 논의할 때는 임금이 발언권을 주지 않으면 말하지 못했습니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승정원일기 번역 평가와 자문 업무를 하는 오재환 책임연구원은 지난 9일 서울 은평구 번역원 청사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당시 불문율이었던 '부재기위 불모기정'(不在其位不謀其政)이라는 논어 문구를 언급하며 이같이 말했다.

부재기위 불모기정은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를 논하지 않는다"로 옮길 수 있는 말로, 자신의 소임이 아니면 주제넘게 참견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오 연구원은 "병조에 관한 사안은 원칙적으로 이조나 형조가 논하지 않았다"며 "일을 열심히 하는 임금이면 여러 신하에게 의견을 묻기도 했으나, 그렇지 않은 왕은 보고를 받으면 그냥 '그리하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하들은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상태여서 평소 왕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며 "임금이 허락하면 그제야 허리를 들어 용안을 살폈는데, 박문수는 왕의 얼굴을 자주 봤다는 이유로 시말서를 쓰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조선시대 국왕 비서기관인 승정원이 작성한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는 세계기록유산 등재 20주년을 맞은 중요한 기록물이자 국보다. 세종 연간부터 제작됐으나 임진왜란 등을 거치면서 조선 전기 문헌은 소실됐고, 지금은 인조 1년인 1623년 3월부터 1910년 8월까지 기록만 남았다.

승정원일기와 함께 자주 거론되는 기록유산이 조선왕조실록이다. 실록이 왕을 중심으로 편집한 기록이라면, 승정원일기는 회의에서 오간 대화를 비롯해 각 부서에서 왕에게 올린 문서와 개인이 쓴 상소 등을 모두 적은 자료다. 사관의 평가가 있어 임금이 열람하지 못한 실록과 달리 승정원일기는 왕과 신하가 보는 데 지장이 없었다. 두 기록은 작성 주체도 달랐다.

분량은 실록이 정족산사고본 기준으로 1천187책이고, 승정원일기는 현존 자료만 3천243책으로 실록보다 훨씬 많다. 실록은 이미 1993년에 번역이 완료됐으나, 이듬해 번역을 시작한 승정원일기는 번역률이 지난해 기준으로 30%에 약간 미치지 못했다.

승정원일기는 순종 시기 6책, 고종 시기 210책이 먼저 번역됐다. 이후 인조 시기 76책 번역을 마친 뒤 지금은 50년 넘게 재위한 왕인 영조 연간 기록을 현대 한국어로 옮기고 있다. 작년까지 영조 시기 807책 중 421책이 번역됐다.

승정원일기
승정원일기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오 연구원은 "많은 사람이 승정원일기가 임금의 일거수일투족을 적은 기록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오해"라며 "승정원일기는 기본적으로 왕에 관한 기록이 아니었고, 임금이 사적인 자리에 있을 때 일어난 일은 기록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승정원일기가 그다지 흥미 있는 기록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왕과 신하가 어떤 전략으로 국정에 임했는지, 과거와 현재 생활이 어떻게 다른지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역설했다.

"옛사람들이 밥을 많이 먹었다고 하잖아요. 실제로 그랬습니다. 임금이 오래 사는 노인을 초대해 만나볼 때가 있는데, 건강이 어떤지 알기 위해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 '요새 어느 정도 먹느냐'입니다. 정조 때 어느 노인은 '5홉 먹습니다'라고 대답했는데, 이는 요새 성인이 하루 먹는 쌀의 양과 비슷합니다."

또 오 연구원은 승정원일기에 적힌 사람의 말과 글, 행동을 통해 인물의 성격을 다각도로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일례가 정조의 어린 시절이다.

그는 "정조는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고 굉장히 똑똑했다"며 "정조는 '인사성이 밝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는데, 이는 사회적으로 처신을 잘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승정원일기 번역은 고전번역원 승정원일기번역팀 연구원 10명과 외부 번역위원 67명이 하고 있다. 오 연구원과 같은 연구원은 직접 번역을 하거나 번역의 일관성과 통일성을 담보하기 위해 지침을 마련한다. 평가와 자문도 담당한다. 외부 번역위원의 한 해 평균 번역량은 책 한 권을 만드는 분량인 원고지 1천500매 안팎이다.

하지만 내년 정부 예산안에서 승정원일기 번역 사업비는 올해보다 약 20% 감소했다. 정부안이 확정되면 번역량은 61책에서 50책으로 줄어들게 된다.

승정원일기 완역 시점은 2048년으로 예상되는데,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번역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학계 안팎에서 나온다.

오 연구원은 번역을 거듭할수록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이 많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승정원일기에 나오는 '령왈'(令曰)은 처음에 '임금이 명령을 내리다'라고 해석했으나, 문헌을 계속 접하다 보니 '왕세자가 말하기를'이라는 뜻으로 바로잡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조선 사람들은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정책을 결정했어요. 그 과정에서 전례를 굉장히 따졌죠. 그래서 기록을 어마어마하게 중시했어요. 그런 점에서 승정원일기는 기록의 보고라고 할 수 있어요. 현실 문제와 연결해 새롭게 조명할 만한 사건도 있지 않을까요."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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