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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불 지르고 투신' 전두환을 향했던 피 맺힌 절규

송고시간2021-11-25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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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사망으로 목숨 바친 수많은 민주열사 재조명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된 이한열 열사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된 이한열 열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그의 독재에 맞서 목숨까지 내던졌던 민주 열사들의 투쟁에 새삼 시선이 쏠리고 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이후 전두환 정권의 철권통치에 지하에서 움직이며 산발적인 시위를 이어가던 학생들은 1980년대 후반 분신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전두환 정권을 향한 피 맺힌 절규를 외쳤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던 표정두 열사는 가정 형편상 호남대를 자퇴한 후로도 야학 교사로 활동하며 민주화운동을 계속했다.

그는 1987년 3월 서울 세종문화회관 인근에서 등유를 몸에 뿌리고 불을 붙인 뒤 '장기집권 음모 분쇄' '광주 사태 책임지라' 등을 외치며 주한 미 대사관 앞으로 30m가량 달려가다 쓰러졌다.

그가 메고 있던 가방 속에는 '내각제 반대' '장기집권 반대'라는 쪽지와 신문 등이 들어있었다.

행인 2명이 옷을 벗어 불을 끄려 했지만 끄지 못하고 교통경찰이 인근에서 가져온 소화기로 불을 껐다.

병원으로 실려 간 표 열사는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목숨을 유지하고 있었다.

공권력을 앞세운 전두환 정권은 분신 사흘째 되는 날 강압적인 분위기와 함께 부모 동의 없이 백부가 입회한 자리에서 그의 산소호흡기를 떼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장된 그의 유해는 당초 고향인 광주에 안치하려 했지만,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아 경찰 버스를 타고 광주로 내려오던 중 유해를 금강에 뿌려야 했다.

그는 시간이 흘러 민주화 열사로 인정받았고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표 열사 등의 정신 계승을 강조하기도 했다.

표정두 열사 기념비 이전 제막식
표정두 열사 기념비 이전 제막식

[연합뉴스 자료사진]

목포대학교 학생으로 대학 수습기자로 일하던 박태영 열사는 '군부 독재 끝장내고 민주정부 수립하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42일간 단독 시위를 벌였다.

그러다 87년 대통령 선거를 며칠 앞둔 12월 9일 "지성인에겐 행동이 요구된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분신했다.

만 20살의 꽃다운 나이였다.

서울대를 다니고 있던 이재호·김세진 열사는 1986년 신림사거리에서 가두 투쟁을 하다 강제진압 하려는 경찰에 맞서 3층 건물 옥상에 올라가 시너를 몸에 뿌리며 경고했다.

그러나 이를 무시한 경찰이 강제진압에 나서자 두 사람은 몸에 불을 붙이는 것으로 항거했다.

민주화를 요구하다 쥐도 새도 모르는 사이 숨진 채 발견된 열사들도 있었다.

1984년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한 기혁 열사는 이념 서클에 가입해 전두환 군부 독재 반대 투쟁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학생 운동을 위축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부당 유급제(낙제 점수를 받으면 재시험의 기회를 주지 않고 무조건 낙제시키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는데 기 열사는 이에 대한 반대 투쟁을 하다 85년 1월 행방불명됐다.

보름 만에 무등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됐지만, 그가 어떻게 사망하게 됐는지는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있다.

조선대를 다니며 반독재 투쟁을 하던 이철규 열사의 사망도 대표적인 의문사 중 하나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가 1987년 가석방된 그는 학교로 복학해 교지에 논문을 게재했다가 다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현상수배 됐다.

1989년 5월 3일 광주 제4수원지 청암교에서 경찰의 검문으로 붙잡힌 것이 목격된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다가 일주일 뒤인 10일 제4수원지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경찰은 이 열사의 사망 원인이 익사로 발표했으나 그를 부검하기 위해 입국하려던 해외 법의학자의 입국을 정보기관이 나서서 방해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철규군 변사사건
이철규군 변사사건

1989년 6월 3일 이철규군 빈소를 찾은 평민당 김대중 총재와 어머니 황정자씨가 흐느끼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 외에도 영화 '1987'에서 다룬 서울대생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 사건, 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이한열 열사의 최루탄 피격 등 세간에 알려진 역사적 사건 역시 모두 전두환 정권에서 자행된 일이었다.

이러한 열사들의 목숨을 건 투쟁이 도화선이 돼 전씨가 물러난 뒤 노태우 정권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분신 정국'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현재 광주 북구 망월동 망월묘역에 안장돼 있다.

당초 망월묘역은 5·18 희생자들을 안장한 곳이었는데 희생자들이 국립묘지로 옮겨가면서 지금은 민족민주열사 묘역으로도 불린다.

열사들이 숨졌을 때 묘마저 쓰지 못하도록 한 전두환 정권의 공작으로 인해 화장된 유해는 강에 뿌려진 경우가 많아 이곳엔 유해 일부나 유품 일부를 안장했다.

묘역을 향하는 길목엔 민주인사들이 깨부순 '전두환 방문 기념 비석'이 묻혀있어 그의 이름을 밟고 지나가도록 했다.

전두환을 규탄하며 쓰러져간 민주열사들을 찾아온 산 자의 울분과 부끄러움이 담겼다.

김순 광주·전남 추모연대 집행위원장은 25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전두환 정권 시절 수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었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진실들이 남아있다"며 "사죄까진 아니더라도 (전씨가 죽기 전) 밝힐 수 있는 진실을 밝히고 죽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씨가 죽었다고 진실이 묻혀서는 안 된다"며 "전두환에게 부역했던 수많은 전두환들이 아직 남아있는 만큼 이들로부터 진실을 어떻게 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또 "개인과 민간에 역사 청산을 맡겨둘 것이 아니라 진상조사위처럼 공적 조사 권한을 가진 기구를 구성해 증언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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