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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하찮은 존재 없어요…모든 사물에 생명과 가치 있어"

송고시간2022-04-20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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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50주년, 우화소설집 '산산조각' 펴내

시인 정호승의 우화소설 '산산조각'
시인 정호승의 우화소설 '산산조각'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우화소설집 '산산조각'을 낸 정호승 시인이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4.20 xyz@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정호승 시인이 2000년 석가모니 부처의 탄생지로 전해지는 네팔 룸비니에 갔을 때다. 한 노파가 흙으로 빚은 좌불 순례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못생긴 부처상을 하나 사서 귀국한 시인은 그걸 책상에 두고서 없던 걱정이 생겼다. '방바닥에 떨어져서 깨지면 어떡하나, 산산조각이 난다면….' 걱정은 꼬리를 물고 '내 인생이 산산조각 나면 어떡하나' 하는 데까지 다다랐다. 어느 날, 시적 상상 속 부처는 시인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은 것이고,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가면 되지 무슨 걱정이 그리 많은가.' 이런 깨달음은 시인의 대표시 '산산조각'이 됐다.

최근 종로구 인사동에서 만난 정 시인은 20년 전 기억을 꺼내놓으며 "시 속에도 이렇게 서사가 있다. 그런데 시는 서사적 구조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장르가 아니어서 우화소설로 담아냈다"고 말했다.

그가 최근 펴낸 우화소설집 '산산조각'에는 부처상이 절망의 끝에 선 남성에게 인생의 이치를 깨닫게 해주는 '룸비니 부처님'을 비롯해 17편이 실렸다.

시인은 우화소설에서 소설보다 우화에 방점을 찍었다. '항아리'와 '연인' 등의 어른 동화도 썼던 시인은 우화는 소설보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동식물, 사물도 의인화할 수 있어 인간의 삶의 비밀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인터뷰하는 정호승 시인
인터뷰하는 정호승 시인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우화소설집 '산산조각'을 낸 정호승 시인이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4.20 xyz@yna.co.kr

시인은 테이블 한켠의 노란 프리지어를 가리키며 말했다. "사물은 물론 저 프리지어도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겁니다. 무생물엔 생명이 없느냐, 그건 아니거든요. 돌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죠."

소설집에는 우리가 하찮은 존재라고 지나치기 쉬운 존재들이 화자이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전시장에 방치된 주머니가 달린 수의, 성철 스님 다비에 쓰인 참나무, 해우소에서 똥물을 맞는 받침돌이 된 바윗돌, 낡은 팬티에서 용도가 바뀐 걸레 등이다.

"인간의 가치와 동식물, 사물의 본질적 가치는 같아요. 인간이 스스로 우월한 존재라고 여기고 사물을 평가하는 것이죠. 메뚜기도, 노루도 농작물을 망치면 해를 끼치는 동물이 되죠. 동식물과 사물의 시각을 통해 우리의 가치도 깨달을 수 있어요."

정호승 "하찮은 존재 없어요…모든 사물에 생명과 가치 있어" - 3

이야기 속 존재들은 저마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단편 '숫돌' 속 칼갈이 숫돌은 군데군데 패이고 홀쭉해진 자신의 몸을 보고 더는 칼 갈기를 거부하고, '걸레'의 팬티는 걸레 신세가 되자 참담해 한다. 하지만 숫돌과 걸레는 세월을 견딘 벼루와 행주의 조언에 마음을 고쳐 먹는다.

'참나무 이야기'의 참나무와 '선암사 해우소'의 바윗돌도 자신들의 꿈과 달리 각각 장작, 해우소 기둥의 받침돌이 되지만 묵묵히 견뎌내며 존재의 가치를 찾아간다. 관통하는 주제는 인내와 희생이다.

시인은 "인간 삶의 덕목 중 가장 소중한 가치는 사랑"이라며 "사랑이란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선 그 고통을 참고 견뎌야 한다. 인내의 힘이 없으면 사랑의 가치를 구현할 수 없다. 사랑의 본질엔 희생이 있다"고 강조했다.

1972년 작품 활동을 시작해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은 시인은 "삶의 본질이 생로병사를 견디는 것이듯, 창작하는 지난 시간도 견딤"이라고 돌아봤다.

지금껏 13권의 시집을 내고 약 1천 편의 시를 발표한 그는 "가장 위안이 되는 시는 '산산조각'"이라며 "그런 마음으로 사는 것이 힘이 된다"고 했다. 50주년 시집은 가을에 선보인다.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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