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학자가 분석한 천자문 인기 비결…"학습하기 적당한 양"
송고시간2022-04-25 08:40
홍윤표 전 연세대 교수 '한자 학습 문헌자료 연구' 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하늘천 따지'로 시작하는 천자문(千字文)은 오늘날에도 친숙한 한자 교재다. 521년 사망한 중국 양나라 사람 주흥사(周興嗣)가 편찬했다고 하니 적어도 1천500년은 된 책이다.
조선시대 초기 세종이 한글을 만든 뒤에도 지식인들은 한자를 주로 사용했고, 다양한 한자 학습 교재가 만들어졌다.
최세진은 1527년 한자에 한글 음과 뜻을 단 '훈몽자회'(訓蒙字會)를 지었고, 편저자와 편찬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조선시대 서적 '유합'(類合)도 널리 읽혔다. 유합은 한자 약 1천500자를 종류별로 묶어 제시한 교재다.
하지만 천자문만큼 오랫동안 인기를 끈 한자 학습서는 없다고 알려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흥사 천자문과 내용이 다소 다른 천자문이 간행되기도 했다.
국어학자인 홍윤표 전 연세대 교수는 훈민정음 창제부터 1950년대까지 출판된 한자 학습서 350여 건을 분석한 두툼한 학술서 '한자 학습 문헌자료 연구'에서 "시대를 거쳐 오면서 줄곧 한자 학습자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것은 천자문"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많은 사람이 천자문으로 한자 공부를 한 이유를 글자 배열·분류 방식에서 찾지 않는다. 그는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루황'처럼 쉽게 암송할 수 있고, 분량이 많지 않다는 점을 꼽는다.
그는 "1천 자인 천자문은 3천360자인 훈몽자회, 1천500자 내외인 유합, 2천 자인 아학편보다 초보자가 한자를 배우기에 효과적이었다"며 "천자문으로 기본적 한자 학습을 할 수 있다는 무언의 힘이 천자문이 남은 원동력이었다"고 짚는다.
이어 "한자 학습 숫자는 1천∼2천 자 정도가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며 "한자 교육 대상이 주로 아동이어서 학습량이 많으면 감당하기 힘들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한자가 많은 자료는 대체로 직접 사용하기보다는 참고하기 위해 편찬됐다고 할 수 있다"며 "이러한 책은 차츰 한자 사전인 자전(字典)으로 발전했다"고 부연한다.
저자는 또 천자문을 포함한 대부분의 한자 학습서들이 한국 한자를 거의 수록하지 않고, 뜻과 음이 같지만 형태가 다른 이체자를 많이 다루지 않았다고 말한다.
예컨대 별다른 뜻이 없는 '돌'(乭) 같은 글자는 한자 학습서에 싣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자 학습서는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많이 등장했는데, 양반층 증가라는 사회적 변화와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며 "20세기 초반에는 인쇄술 발달과 일반인의 지식 욕구 분출로 천자문 같은 문헌이 많이 간행됐다"고 분석한다.
태학사. 1천80쪽. 5만원.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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