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레슨 인 케미스트리
송고시간2022-06-17 11:10
노랜드·눈, 물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 레슨 인 케미스트리 =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미국과 영국에서 카피라이터로 살아온 작가가 60대에 낸 데뷔작이다.
이야기는 1950∼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화학자 엘리자베스 조트가 여성에 대한 편견에 맞선 삶을 따라간다. 과학자로서 이름과 연구를 지키기 위해 결혼없는 동거를 택한 그는 반려자를 사고로 잃고 비혼모가 된다. 연구소에서 쫓겨난 그는 우연히 TV 요리 프로그램 MC로 발탁되고 화학실험 같기도, 인생수업 같기도 한 진행으로 인기를 끈다.
가정주부의 식사 준비가 허드렛일로 취급받던 1960년대 엘리자베스는 요리야말로 새 에너지를 창조하고 새 세대를 번성시키는 진지한 화학 실험이라고 강조한다.
"요리는 화학입니다. 화학은 생명이지요. 모든 것을 바꾸는 여러분의 능력, 자신을 바꾸는 능력도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소설은 출간 전인 2020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원고 공개 2주 만에 22개국에 번역 판권이 수출됐다. 애플TV+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자이자 '캡틴 마블' 역으로 유명한 배우 브리 라슨 주연의 8부작 드라마로 제작하고 있다.
다산책방. 1권 352쪽. 2권 288쪽. 각 권 1만5천800원.
▲ 노랜드 = 천선란 지음.
문학계에서 주목받는 젊은 작가인 천선란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지난 2년간 청탁받은 단편과 처음 선보이는 작품 등 10편을 엮었다.
해리성 인격장애로 하나의 몸에 서로 다른 둘이 살고('제, 재'), 공동묘지처럼 음산해진 고향 마을에서 만난 앞집 할머니는 좀비가 되어있고('이름 없는 몸'),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걸 먹어 치우는 바키타에게 인간은 길들여지거나 내몰린다.('바키타')
'천개의 파랑'과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나인' 등에서 사이보그, 뱀파이어, 외계인을 그려낸 작가는 이번엔 전복된 세상에서 내몰리고 외로워진 존재들을 들여다봤다. 과학소설(SF)과 좀비물, 추리, 스릴러를 넘나들며 구현한 이름 없는 땅에서 자라난 이야기들이다.
한겨레출판. 420쪽. 1만5천800원.
▲ 눈, 물 = 안녕달 지음
'수박 수영장'과 '당근 유치원' 등 판타지 세계를 그려온 작가가 성인 독자를 위해 낸 그림책이다.
외딴곳에 사는 한 여자는 어느 겨울밤 '눈아이'를 낳는다. 여자는 자신의 온기에 눈아이가 녹아내릴까 봐 품에 안지 못한다. 문틈 새로 풀이 돋아나는 봄이 오자 눈아이는 고통스러워하고, 여자는 아이를 살릴 장치를 구하려고 도시로 나간다. 여자는 우유배달 등 닥치는 대로 일하지만 화려한 도심 속 그림자처럼 존재한다.
사각지대에 '있지만, 없는' 채로 살아가는 이들의 고통을 직면하면서 누구나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간절한 마음이 있음을 얘기한다.
작가는 글이 거의 없이 288쪽의 그림으로 서사를 끌어간다. 간결한 그림체와 대비되는 사실적인 배경 묘사, 카메라를 들이댄 듯한 화면 연출로 마치 움직이는 이야기를 보는 듯하다. 여자가 머무는 공간에 따라 페이지 질감이 바뀌는 작가의 치밀한 작업이 느껴진다.
창비. 288쪽. 2만2천 원.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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